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피걸 Aug 05. 2024

인간은 저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딸은 작별인사(Farewell)인사를 하기 위해 제주도로 떠났다.

딸이 제주도로 떠난 지 벌써 2주가 다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친구들과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다며 간곡히 부탁하는 딸의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딸은 4살 때부터 제주 영어교육도시에서 자랐으며, 국제학교를 다녔다. 그곳은 딸의 고향이자 친구들이 있는 곳이다. 비행기 값이 무려 3백이 넘었다. 13년 전에는 겨우 반값이었다. 왜 이렇게 비싸냐고 물었더니,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탓이란다. 

걸핏하면 코로나19탓을 한다.     


물론 딸의 요청에 대해 선뜻 “그래”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부모 탓이다. 그동안 소명이라는 이름아래 경제적인“부”에 관하여 너무 하찮게 생각했다.

마치 과거 곧 죽어도 선비의 채면 때문에 굶어죽어도 방안에 앉아서 글만 읽었던 선비 같은 마인드 이었다고나 할까?      


제주도에 도착한 딸은 한국 음식을 아빠와 신나게 먹으며 사진을 보내왔다. 딸이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다. 먹지 않았던 갈치구이까지 도전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딸과 달리 영국에서의 나의 삶은 팍팍하다. 한국에서의 사회복지사 자격증과 대학원졸업을 이곳에선 무용지물이다. 만일 자격증을 인정받으려면 캠브리지에서 실시하는 공인영어능력서를 제출하라나. 뭐라나ㅠㅠ. 나이든 외국인, 특히 동양인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거의 없다.

마트에서 캐셔같은 일을 구하려 했지만, 셀프 계산대가 대세가 된지 오래다. 영국은 점점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한 나라가 되어 가고 있다. 제기랄!!!     


저녁 7시, 아이샤가 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손에는 노란 쿠시쿠시가 들려 있었다.

방금 만든 쿠시쿠시(별로 안좋아함)니까 바로 먹어보라며 건넸다.

나중에 먹겠다는 나에게 극구 맛을 보라고 하였다.

그녀가 정성스럽게 만든 노란색의 쿠시쿠시를 입안에 넣자, 딱딱해졌던 마음 밭이 조금 녹았다. 먹고 있는 나를 보며 그녀가 물었다.

“외롭지 않아? 딸이 없어서?”

“첫날은 조금 이상했어. 그런데, 지금은 괜찮아. 그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집을 정리해야하니까” “우리 집은 더 엉망이야”라며 활짝 웃는 그녀가 나는 참 좋다.      


1년이 지나면서 제주 영어교육도시에서의 상류층 생활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뉴스에서 강남의 상류층 의사가 사업 실패후  강남 아파트를 팔고 강북으로 이사 가면 통장에 현금 2억이 있는 괜찮은 경제상황에서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여 가족들을 살해하고 자살했었다는 뉴스가 기억난다. 나는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다.     


사람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에게는 아마도 강남아파트이고 삶이 아니었을까? 자신이 익숙했었던 삶을 떠나 다운그레이드된 삶은 결코 상상할 수도 겪어낼 자신도 없지 않았을까? 누군가에게는 강남아파트이고, 벤츠이고, 친구들과의 작별인사(Farewell)이고 누군가에게는 안드렉스 화장실 휴지일수도 있다. 

나는 오늘 내가 좋아하는 안드렉스 화장지를 포기하고 4파운드를 아끼기 위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독일화장실 휴지를 구매했다. 그 제품을 구매할 때, 한참동안 망설였다.

역시 수준에 맞는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참 어렵다. 특히 자신이 가장 좋아하거나, 절대로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일수록…….          

작가의 이전글 생존인사드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