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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영어교육도시의 교육과 미국 여행 사이의 부조화

제주영어교육도시국제학교교육과 여행에서 마주한 가치관과 경험의 차이

by 해피걸

타이틀:제주영어교육도시의 교육과 미국여행 사이의 부조화

부제:제주영어교육도시국제학교교육과 미국여행에서 마주한 가치관과 경험의 차이


딸이 저녁을 먹으며 말을 꺼낸다.

"엄마, 00가 프랑스에 온대."

"왜?"

"몰라."

"여행 오는 거구나."

"그런가 봐."

"춥겠네. 그런데 왜? 파리로 오지? 대부분 프랑스에 오면 파리부터 구경하잖아. 미국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로 가는 게 더 나을 텐데."

"몰라."

딸은 대화가 길어지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왜?"라는 질문은 질색이다.

딸은 남편과 참 닮았다. 얼굴이며 체형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꼭 빼닮았다. 자존심 강하고 고집 센 성격마저 그대로다. 딸을 보고 있으면 남편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나는 남편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여기서 딸을 돌보고, 내가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게 제일 합리적인데, 솔직히 너무 힘들어."

그럴 때마다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대답도, 위로도 없다.

제기랄, 또다시 신세한탄을 하고 말았다.


제주 영어교육도시에 있는 대부분의 국제학교는 12월에 2~3주 정도 겨울방학을 한다. 이 시기에 학부모들, 특히 어린 자녀를 둔 가족들은 주로 따뜻한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다. 미국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가 단골 여행지다. 물론, 가는 김에 유명 대학을 한두 곳 방문해 건물이라도 둘러본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조금 여유가 없는 부모들은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지역도 따뜻하고 국제학교가 많아, 교육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연령대의 아이들은 대부분 학업에 집중한다.

제주 국제학교 중 IB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들은 내신 성적 관리가 매우 까다롭다. 학기 중에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기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긴 겨울방학을 이용해 서울로 올라가 학기 중 온라인으로 받던 교육을 보완하며, 면대면으로 인텐시브 코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실제로 내 지인의 사례에서 나온 이야기니 의심하지 않길 바란다.


그들을 자세히 보면 부모에게서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영특하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부모는 아낌없는 지원을 한다. 더 나아가 알고 보니, 이런 지원을 하는 부모들 역시 그 윗세대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경우가 많았다. 받은 만큼 자녀에게 돌려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것이다. 흥미롭게도, 내 주변엔 "나는 그런 교육을 받아서 자녀에게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던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제주 영어교육도시에 들어오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똑같이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경향은 한국인만의 특징이 아니다. 내가 지내본 영국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타난다.

반면, 나의 남편은 자신이 부모의 도움 없이도 기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며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딸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자녀에게 꼭 무언가를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오히려 과도한 지원은 독립심을 저해할 수 있다며 경계한다. 이런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딸이 또다시 바닥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종교를 기반으로 선택했기에 이런 차이를 받아들여야 하지만, 쉽지 않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자기 방식대로만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다.

나와 성격도, 성장 배경도, 재정 상태도 정반대인 일명 금수저출신의 한 지인은 나에게 말했다.


"그럼 너는 뭐 했니? 너라도 했었어야지. 왜 남편 탓만 하니? 왜 불평만 하니?"

그 말에 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건 다 너를 합리화하려는 거야"라고 일축했다.

출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딸을 낳고 키우면서, 딸이 아프고 여러 일이 겹치며 나도 모르게 달라졌다. 전업주부라는 타이틀을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어느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며 스스로를 용납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태에서 비난까지 받으면, 활활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가끔씩 남편은 나에게 "너는 분명히 흙수저인데, 너의 취향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사업머리는 전혀 없는 친정아버지 때문이야. 사업이 잘될 때는 사장딸, 무너지면 빚쟁이들이 득달같이 몰려오는 신분이었다고. 그래서 나와 친정엄마의 꿈은 직장 다니면서 꼬박꼬박 월급 가져다주는 월급쟁이 아버지와 남편이었어." 그러나 남편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출신인 나에게 제주 영어교육도시에서의 삶은 정말 힘들었다.

마치 수준에 맞지 않는 곳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

물론 남편처럼 천성적으로 세끼 밥만 먹고, 음악만 있어도 만족하는 사람에게는 상관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사업가의 딸로 태어나 직접 옆에서 보고, 겪었던 영향 때문인지 이런 환경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내가 느낀 것은 아마도 '주변과 나의 차이를 느끼며 드는 부조화'였다.


우리 가족은 알뜰하게 저축하고 운이 따라주어 평생에 한 번 가볼 수 있는 미국 여행을 떠났다.

2018년 12월 방학이 시작된 후, 꿈만 같은 10일간의 미국 여행을 경험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해 해안을 따라 산타바바라와 LA까지의 여정은 캘리포니아의 진정한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와 알카트라즈 섬을 방문하며 도시의 상징적인 풍경을 즐겼고, 나사(NASA) 건물과 애플 스티븐스 동네, 스탠퍼드 대학 등을 탐방하며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체험했다. Pacific Coast Highway를 타고 해안을 따라 산타크루즈와 산타바바라로 이어지는 절경을 만끽했다.

산타바바라는 와인 농장과 아늑한 해변이 있는 매력적인 마을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LA에서는 게티 센터와 할리우드의 화려한 분위기를 경험하며 도시의 다양한 매력을 느꼈다.


이 여정은 캘리포니아의 자연과 문화를 만끽한 소중한 추억이었으며, 해안을 따라 펼쳐진 모든 순간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나의 신앙과는 별개로 돈이라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느꼈다. 추위를 너무나 많이 타는 내가 같은 시간대에 다른 나라로 가면서 따뜻한 곳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남편이 미울 때마다 미국 여행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를 이끌고, 직접 운전해 Pacific Coast Highway를 따라 해안을 따라 산타크루즈와 산타바바라로 이어지는 절경을 만끽하며, 깊고 넓게 펼쳐진 태평양의 바다를 보며 느꼈던 감동과 감사함을 떠올린다. 그때 겨울방학 동안 학부모와 자녀들이 어떤 경험을 하는지 조금이나마 직접 겪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TMI:

스탠퍼드 대학교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 티셔츠 3개를 구입했다. 하나는 지인의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한 티셔츠, 또 하나는 수영을 좋아하는 딸을 위한 티셔츠였고, 나머지 하나는 나를 위한 여행 기념 티셔츠였다.

여행을 하면서 나와 같은 가족들이 많았고, 국적도 다양했다. 딸은 스탠퍼드 대학교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방학이라 건물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들어갈 수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공사 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대신 딸은 알카트라즈 섬에 하루를 보내는 일정에 더욱 흥미를 보였고,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당시 딸이 겨우 6학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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