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도에 12년 동안 살게 된 이유
[첫방문]
내가 처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한 것은 나의 나이 23살 때였다.
나의 고등학교 동창과 2박3일 동안 여행을 했는데, 운이 억세게 없었던지, 2박3일 내내 비가
주구장창 내렸었다. 더욱이 날씨도 안 좋은데, 나와 친구는 사소한 것으로 인하여 싸움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7년간의 우정을 마감하게 되었다.
[두번째방문]
10년 후, 2002년 4월, 나는 결혼을 하였고, 신혼여행으로 제주도를 두 번째 방문하였다.
서귀포의 따뜻한 햇살 아래 넘실거리는 제주의 푸른바다를 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나의 첫 번째 제주도의 여행의 언짢았던 기억은 행복했던 신혼여행의 기억으로 덮어 씌워졌다. 제주도라는 지명을 듣게 되면, 이중섭화가의 “서귀포의 환상”이라는 그림이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었다.
나는 남편과의 결혼 후,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한 아기의 엄마와 아내로서 직장을 다니며 치열하게 살았다. 남편은 뼛속까지 영국 사람이었고, 나는 한국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한국 사람이었다.
나와 남편은 자원봉사자의 신분으로 한 봉사기관에서 함께 봉사했었다. 나의 인생계획에는 외국인과의 결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는데, 사람의 인생은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나는 언어, 문화, 성격까지 전부 반대인 남자를 배우자로 선택했다. 그 대가로 남편은 나와의 결혼을 하기 위하여 외국에서 나를 기다려야만 했다. (내가 자원봉사 활동을 끝낸 후 한국으로 돌아왔기 때문)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시는 친정아버지를 끝내 설득시키지 못해서 축복조차 받지 못한 슬픈 결혼이었다. 요즈음에는 외국인과의 결혼이 평범할 정도였지만, 과거 나의 시간에는 조금은 특별한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특히 나이 40에 첫아기를 낳고 난 후 심하게 산후우울증을 겪었다. 그때,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남편을 설득했지만, 남편은 완강히 3번 정도 거절했었다.
남편의 입장에서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뼛속까지 Made in England인 남편은 영국에서 말하는 소위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9년차 배태랑 경력교사였기 때문이다.
TMI:남편은 나에게 늘 이야기 했었다. 당신은 굳이 노후 연금이 없어도 될 것 같다고, 왜냐하면, 자신이 정년퇴직하면, 자신의 연금으로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이 될 것이리고...
물론, 지금은 물 건너간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말로 하면, 임용교사인 남편은(정년이 보장된 연금이 빵빵하게 나오는)그런 직업을 버리고 한국에서 신분 보장이 되지 않는 계약직을 굳이 할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에서 가족들과 살아 보고 싶다는 꿈을 완전히 포기했을 때, 갑자기 남편이 한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냐고 남편에게 이야기 했었다. 내가 그토록 가고 싶다고 할 때에는 귓전으로 듣더니, 이제와서 무슨 소리냐고 했더니,
남편의 말인 즉, 제주도라는 곳에 NLCS의 분교가 설립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NLCS라는 학교는 영국에서도 신문에 실릴 정도의 명문사립학교이기에 교사들 사이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었던 학교였다.
그런 학교의 분교가 한국에 세워질 것이라며, 학교선생으로서 명석한 두뇌와 열정적인 태도를 갖춘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의미 있는 일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1.09.06.7PM~현재까지 ]
그렇게 나는 9년 후, 4살 된 딸과 한국에 관한 지식이 거의 없는 남편을 따라서
2011년 9월6일 저녁7시, 세 번째로 제주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