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속았다ㅠㅠ/거기가 어디에요?/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앗! 속았다ㅠ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곳은 제주 캐슬렉스 골프장에 있는 콘도미니엄이었다. 이유인즉, 우리가 살게 될 아파트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2틀을 지낸 후, 3일째 되는 날 거주할 집으로 향했다. 학교 측에서 마련해준 50인승 대형 관광차를 타고 잔뜩 부푼 마음으로 제주영어교육도시에 도착했다.
대형버스가 NLCS학교로 들어오는 좁은 도로는 온통 비포장 도로였다.
인부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도로를 포장하고 계셨고, 굴착기 기사들은 열심히 땅을 파고 계시던 공사장의 모습이었다.
우리가 탄 버스가 지나갈 때는, 흙바닥으로 인하여 먼지가 풀풀 날리고 있었으며,
허허벌판과 같은 곳에 학교건물과 아파트 몇 동만 덩그러니 버티고 있었다.
그때든 생각은 “앗! 속았다”였다.
사실,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며, 뭐지? 하는 표정들이었다.
사실, 이곳에 오게 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선생님들과 가족들은 학교에서 보내준 학교홍보영상 때문에, 아름다운 제주도의 모습과, 그림 같은 집, 그리고 학교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들이 마주한 현실은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도로야 그렇다고 치고, 사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우리가 살게 된 아파트는 아직 통신시설이 연결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집에서 외부로 전화통화를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주위에는 생수 한 병조차 구입할 수 있는 작은 가게조차 없었다.
당연히 대중교통 버스가 다니지 않는 산간벽지 지역이었다.
우리들처럼 외국에서 온 사람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심지어, 서울에서 오신 선생님들과 가족들까지도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셨다.
나의 뇌리에 고이 간직했던 환상의 섬 제주는 그곳에 없었다.
우리들보다 몇 개월 일찍 이곳에 도착하여 학교설립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려던 학교관계자분들 중에는 이곳의 삶에 도저히 적응할 자신이 없으시다 며, 이곳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후에 제주도 토박이 지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 보니, 외부 생활환경의 불편함 보다는 어쩌면, 마치 현대사회로부터 단절된 듯한 심리적인 소외감과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혹시라도 우리들처럼 기대했었던 모습과 너무나 다른 모습에 배신감이 들어 떠나셨나? 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다.^^.
[거기가 어디예요?]
버스가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렌터카를 대여하거나, 제주영어교육도시와 가장 가까운 대정읍 모슬포(자동차로 15분~20분정도 걸림)에서 콜택시를 이용하는 방법이외에는 없었다.
다행스럽게, 우리가 도착한 후 10일정도 지난 후, 통신시설이 설치되어, 집에서 외부로 전화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을 구입하려면, 종종 콜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콜택시를 부르기 위하여 전화를 걸면, 늘 듣던 말은 “거기가 어디에요?”라는 소리였다. 또한 콜택시를 부른 후 택시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면, 택시는 도착하지 않고, 택시기사님께서 근처에는 왔는데 입구를 찾지 못해서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되묻는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혹자는 "내비게이션을 켜면 되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비게이션을 켜도 주소가 나오지 않았으며, 길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온통 푸른 초원만 펼쳐졌기 때문이다ㅠㅠ.
푸른 초원 위를 둥둥 떠다니는 자동차 모습이라…….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나의 삶에 있어서 주소에 “산1-00”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주소가 말해주듯이 우리가 살게 된 곳은 행정구역상으로도 도서산간벽지 지역이었다.
[과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번은 렌터카를 대여한 후, 우리 가족은 대정읍 모슬포를 구경하러 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해서 같은 곳을 뱅글 뱅글 1시간 넘게 돌았다.
대정읍에서 구억리까지는 잘 왔는데, 구억리에서 학교까지 오는 길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결국 길가에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주민을 만나서 길을 물었더니,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이 “뉴스에서 영어마을이 생길 것 이라는 소리는 들었는데(국제학교도 아니고, 영어마을이라고 하셨음^^)그곳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몰라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후 약 20일이 지난, 2011년 9월26일에 학교가 정식으로 개교를 했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구억리에서 학교로 들어오는 길은 지역주민들조차도 잘 모르는 1차선의 아주 좁은 도로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욱이 제주영어교육도시가 세워진 곳은 몇십년 동안 사람들이 살지 않았던 곶자왈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한 시간 이상을 헤매고 다니면서, 나의 머릿속에든 생각은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라는 생각뿐이었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영국의 버밍햄에 위치한 지옥의 스파게티 정션(Spaghetti Junction)고속도로에 있다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그곳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었다.
[P.S.]
제주 영어교육도시에 버스가 생긴 것은 우리가 이곳에 거주한지, 9개월이 지난 시점에 운행되기 시작했다. 1시간에 1대씩 운행하던 버스였지만, 9개월 동안 버스가 없었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버스서비스가 운행될 수 있도록 나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분들의 수고와 협조가 있었음)
그러한 경험으로 인하여, 요즘처럼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내릴 때, 나는 버스기사님들께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
만일 내가 9개월동안의 버스조차 없었던 삶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런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간혹 대중교통의 천국인 서울이 본가인 분들 중에는 이곳의 대중교통 시설이 너무 취약하다는 분들도 계시다. 나 역시 평생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분들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충분히 이해를 하면서도, “라떼는 말이에요~”라며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