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이별의 길 위에 서서
몇 주 동안 이삿짐을 싸는 일로 많이 아팠다.
나이 50대 중반에 국내도 아닌 해외로 이사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적은 예산으로)
이삿짐 업무(내가 하기 싫어하는 일에는“업무”라는 이름을 붙여줌)가 끝난 후,
만신창이가 된 신체를 이끌고 2주 동안 또다시 병원순례를 다녔다.
그동안 진단받은 병과 약 복용에 필요한 영문진단서와 의사 소견서를 받기 위함이었다.
다른 이들은 집 3채는 기본으로 구매해서 살고 있거나, 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들과 비교하여 (비교병 발동)
무려 5개나 되는 영문진단서를 가지고 외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니ㅠㅠ.
재정적으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이래서 옛날이야기에 구두쇠 집안의 며느리를 선발할 때, 나같은 사람을 뽑지 않은 거였구나! 남편이 선비면, 나라도 정신 차렸어야 했는데ㅠㅠ. 아무튼, 부창부수다.
나는 또다시 상대적인 부의 박탈감과 이곳의 부자들을 부러워하는 일명 시기질투병이 도졌다.
이병은 활활 타는 불과 같아서 나를 활활 불태우고 재로 만들 수 있는 아주 무서운 병이다.
제주 영어교육 도시에 살면 멀쩡한 사람들(상위20%)도 시기 질투의 화신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아주 무서운 곳이기도 하다. 단, 이쪽으로 명석한 두뇌를 가진 사람은 더 많은 부와 명예를 거머쥘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실제로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 아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쪽으로 성공했다.)
TIM:
어떤 부모 중에는 자녀들의 인맥을 위하여 제주국제학교를 선택한 사람들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역시 부자 부모들은 다르다. 자녀들을 위하여 인맥이라는 비빌 언덕을 확실하게 다져주고 있다.
병원에서 백혈구 수치가 여전히 낮아 있으므로 절대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했건만,
그게 말대로 되기는 쉽지 않을 일이다.
12년 동안의 삶의 터전을 떠나는 준비와 동시에 중3의 딸과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남편과의 일상생활은 여전히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꿈꾸지 않았던 외국인과의 결혼과 외국 생활, 제주 생활, 또다시 외국 생활을 나이가 들다 보니 만만치가 않다.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나는 병원에 가서 수면유도제를 처방받았다.
약의 힘으로 하룻밤을 푹 잔 후,
나는 그녀들과의 점심을 먹기 위한 식당에 대기예약을 하기 위하여 딸이 학교에 가자마자, 곧바로 사계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