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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자녀교육법Ⅰ

나중에 1억을 주는 것보다 지금 1억을 지원하는 게 더 낫다

by 해피걸

타이틀:부자들의 자녀교육법Ⅰ

부제: 나중에 1억을 주는 것보다 지금 1억을 지원하는 게 더 낫다

2021년 11월 3일부터 11월 10일까지, 나는 일주일 동안 서울로 여행을 떠났다.

딸이 학교 행사로 외국에 가 있는 동안, 남편이 모처럼 내게 말했다.

"이번 기회에 서울에 다녀오는 건 어때?"

"뭔 일이래!" 평생 '남의 편'이었던 남편이 연애할 때처럼 이런 배려를 하다니.

경사 났네, 경사 났어.


고향인 서울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고, 여행 일정을 짜는 것도 명품백보다 더 설레는 걸 보면, 나는 어쩌면 방랑병, 아니 여행광일지도 모른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가도, 누군가 옆에서 "여행 간다"는 말만 꺼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시 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그렇게 나는 2021년, 서울의 아름다운 가을 단풍이 물든 11월 초, 총 10일간의 서울 여행을 떠났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쌍문동 고등학교 친구들을 덕수궁 안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나의 쌍문동 고등학교 친구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우리는 반에서 '9 공주'라고 불리며, 아홉 명이 똘똘 뭉쳐 공부하고, 먹고, 놀고, 서로의 집을 돌며 함께 밤을 보내곤 했다. 언제나 한 가족처럼 붙어 다녔던, 자매 같은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그중 세 명과는 연락이 닿지 않게 되었고, 남은 여섯 명은 여전히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다. 내가 서울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그 시절, 순수했던 고등학교 친구들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 그랬다."그 도시가 좋은 이유는, 그곳이 가진 매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곳에 그리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내게 서울이 그런 곳이다.


가장 먼저, 따스한 가을빛이 내리쬐고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덕수궁 안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살아온 길은 저마다 달라졌지만,
누군가는 건물주가 되었고, 누군가는 상가 주인이 되었으며,
전문직에 종사하는 친구도, 전업주부가 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했다.
순수했던 고등학생 시절의 마음가짐은 비록 세월 속에서 조금 바래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 안에 남아 있었다.


둘째 날, 나는 강남에 있는 최인아책방을 찾았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규모가 워낙 작았고, 당시만 해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책방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담했지만, 나름대로 아늑하고 분위기 있는 공간이었다.


셋째 날, 나는 제주 영어교육도시에서 알고 지냈던 학부모를 만났다.

그녀는 제주 영어교육도시에서 5년간 생활했다. 딸이 국제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그녀의 딸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녀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특히 큰딸이 무척 영특했다. 해외 유학 경험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학교 입학시험에 단번에 합격해 내 딸의 친구가 되었다.

당시 국제학교에 입학하려고 재수까지 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정원(T/O)이 없어 경쟁이 치열했던 시기였지만, 그녀의 딸은 한 번에 합격했다.


역시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호사 아버지의 지적 능력과, 이화여대 출신 어머니의 음악적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그런 똑똑한 아이는 제주국제학교에서 기본기를 다지고, 자기주도학습을 탑재한 후 제주영어교육도시를 떠나 서울로 올라갔다.


그렇게 제주 영어교육도시를 떠난 후, 가끔 연락을 주고받다가 마침내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가장 먼저 교보문고에서 만났다.

서울에서 사람을 만나기에 가장 좋은 장소는 광화문 교보문고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내가 강북 출신이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외지인은 물론 외국인까지도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만난 후 함께 점심을 먹고, 천천히 창덕궁으로 향했다.

11월 3일의 창덕궁은 가을빛으로 아름답게 물들고 있었다.


창덕궁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익숙하게 드나들던 곳이었다.

창덕궁 옆에는 과거 ‘과학관’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한국에 처음으로 개인용 퍼스널 컴퓨터 약 20대를 들여놓고, 서울의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방학 동안 약 3주간 도스(DOS) 프로그램 교육을 진행했는데, 나도 그곳에 있었다. 또한, 서울의 많은 학교들이 이곳으로 소풍을 왔고, 사생대회가 열리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덕수궁보다도 더욱 특별하고 애정이 가는 장소다.


3년 만에 그녀를 반갑게 만나, 우리는 교보문고 근처, 과거 신문사였던 건물에 자리한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뒤, 부지런히 창덕궁으로 향했다.

창덕궁 안은 가을빛에 흠뻑 젖어 있었고, 형형색색 단풍이 물든 풍경 속에서 감성이 차오르는 듯했다.


북한산의 웅장한 단풍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현대적인 도시 한가운데 자리한 고풍스러운 궁궐에서 즐기는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창덕궁 곳곳을 걸으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기념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또다시 만날 기약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내가 곧 영국으로 떠날 예정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무엇보다, 순간을 기억에 남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사진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우리는 다시 걸어서 인사동으로 향했다. 그녀는 겨우 3년 동안 덕수궁 근처 오피스텔에 살았는데, 정작 서울 출신인 나보다 새로운 곳을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이끈 곳은 바로 쌈지길이었다.


인사동 중심부에 위치한 이곳은 독특한 구조의 건물로, 빙글빙글 돌아가며 올라가는 형태가 꽤 인상적이었다. 내부에는 소품, 핸드메이드 제품, 전통 한국 소품들이 가득한 가게들이 모여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옷감을 사서 딸에게 직접 만들어 주거나 (그녀는 재봉틀을 잘 다뤘다), 학교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여기서 만들어 간다고 했다.

그렇게 구경을 마친 후, 우리는 시원한 팥빙수를 먹기 위해 (많이 걷고 떠들고 웃다 보니 목이 말랐다) 마침내 카페에 앉았다.


나: 고마워요. 인사동에 데려와줘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서울이 많이 변했네요.

그녀: 아니에요. 그동안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00 엄마도 저를 많이 챙겨주셨잖아요.

그녀는 사투리가 섞인 말투로, 그녀의 넓은 마음처럼 푸근하게 말씀하셨다.


처음에 그들이 제주영어교육도시로 입성했을 때는, 그곳이 조성된 지 몇 년 되지 않아서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았고, 정보도 찾기 힘든 시기였다. 나는 그때, 그런 그녀에게 내가 알고 있는 한의 제주국제학교의 IB교육과 자기주도학습에 관하여 알려주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보다 세상에 대한 생각이 훨씬 열려 있었고, 가치관도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나와도 잘 맞았다. 그녀는 그곳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부자들과는 달랐다. 그녀는 빠르게 적응해 나갔고, 두 딸도 학교생활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는 워낙 영특한 아이들이었고, 엄마는 인스턴트 음식 대신 손수 모든 음식을 만들어 딸들에게 먹이고 입히셨다. 그분을 보면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는 못 할 거라고 항상 느꼈던 것 같다.


아이들은 워낙 영특했으며, 엄마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인스턴트 음식 대신 모든 음식을 손수 만들어 먹였다. 그분을 보면서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렇게 할 수 없겠다고 항상 느꼈다. 또한, 그녀는 이대 출신답게 똑똑하고 지혜로우셨으며, 피아노를 전공한 수재였다. 본고향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시던 원장님으로서, 오랫동안 학원을 이끌어가신 경험이 있었다. 그녀를 통해, 나는 드라마에서 흔히 비꼬는 '이대 출신'이라는 이미지가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그녀: 아주 바빴어요.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는 사교육을 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서울에 와서는 광화문에서 아침과 저녁마다 학교와 대치동 학원을 오가며 열심히 다녔죠.

나: 대치동 학원 입학이 제주국제학교 입학보다 더 어렵다고 하던데요?

그녀: 네, 처음에는 학원에서 선생님이 그러더군요. 제주국제학교 학생들은 영어는 어느 정도 잘하는데, 학업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고요. 아무래도 한국의 입시 교육은 대치동 학원이 최고잖아요.


나: 어떻게 적응했어요?

그녀: 00는 모든 과목을 다 할 필요는 없었어요. 수학, 영어, 과학 3과목만 했죠. 처음에는 레벨 테스트를 했는데, 선생님이 "실력이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서 많이 떨어진다"라고 하시면서 최고레벨반에는 넣을 수 없다는 거예요.

나: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그녀: 00 엄마 말처럼 우리 딸은 제주국제학교에서 이미 자기주도학습을 잘해놔서 기본은 잘 갖추고 있다. 그냥 선행 학습을 안 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조금 시간을 주고 지켜보면, 반드시 치고 올라갈 아이라고요.


나: 맞아요. 00은 자신이 모르면 아는 척하지 않고, 수업이 끝난 후에 선생님께 찾아가서 배우는 스타일이었죠. 학원에 가서 기술을 배워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고,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질문하고 답을 찾았죠. 그렇게 자신의 힘으로 기본실력을 탄탄하게 갖춘 아이였죠.

그녀: 맞아요. 00 엄마가 알려주신 대로 했죠.

나: 사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걸 조언해 줬는데, 00처럼 실제로 한 아이는 거의 없어요.

그녀: 정말 좋은 조언을 해주셨어요.


나: 그래도 서울 대치동 아이들의 선행 학습과 비교하면, 00는 서울에 와서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했을 거예요, 그렇죠?

그녀: 맞아요. 처음에는 딸도 저도 당황했죠. 그러나 저는 확신했죠. 몇 개월만 지나 봐라 내 딸이 치고 올라갈 것이다. 학원선생님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며 부정적이셨는데, 나는 그분께도 똑같이 말했었죠. "선생님 두고 보세요.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 증명할 거예요. 우리 딸은"

나: 당연히 해냈죠?


그녀: 네, 어려웠지만 해냈어요. 6개월 후에 학원 선생님이 "어머님 말씀대로 맞으셨어요"라고 하더군요.

제 딸은 제가 제일 잘 알죠. 얼마 전에 토플 시험을 봤는데, 거의 최상급이 나왔어요. 딸도 좋아하고, 학원 선생님도 놀라고, 남편과 저도 뿌듯했어요.

그녀의 얼굴에는 자신들의 교육 철학이 맞다는 것을 입증받은 듯한 만족감이 가득 차올랐다.


나: 고등학교는 어때요?

그녀: 아이가 기숙학교에 다니니까, 이불 같은 필요한 것들을 싸다 주어야 하더라고요. 강원도까지 물건을 실어 날라야 해서 좀 번거로워요. 그리고 그곳은 정말 똑똑한 아이들이 많아서, 딸이 힘들다고 이야기해요.


나: 00는 몰입도와 끈기도 강하고 공부도 좋아하니까, 잘 견디고 잘할 거예요.

그녀: 그래도 힘든가 봐요. 기숙사 생활이 불편하고, 학비와 기숙사비도 비싸서요.

그녀의 딸은 강원도 민족사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 많이 비싸요?

그녀: 제주영어교육도시보다는 비싸진 않아요. 딸아이만 보내면 되니까요.

그런데 이제 둘째 아이를 지원해야 해서요. 둘째는 컴퓨터공학 쪽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서, 어쩌면 다시 제주국제학교로 돌아갈지도 몰라요. 아직은 결정하지 않았어요.

나: 아이고, 아직 끝난 게 끝난 게 아니군요.

교육비가 정말 많이 들어가겠네요.

그녀: 그렇죠. 그런데 우리 부부는 이미 예전에 결정을 내렸어요. '나중에 1억을 주는 것보다 지금 1억을 지원하는 게 더 낫다'라고 생각했거든요.


말을 듣는 순간, '엇! 이들은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자녀교육에 대한 생각 자체가 다르구나.

그들이 가진 마인드는 지금 확실하게 투자를 하고, 그 투자를 바탕으로 자녀들이 최고의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자녀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고 자신만의 길을 찾도록 돕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와 다시 만날 기회를 약속하며 안녕을 고했다.


그녀와 헤어진 후, 부자들의 자녀교육법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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