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영국 창가까지, 다육이를 통해 나만의 온도를 찾다.
타이틀:나에게 맞는 삶의 온도
부제: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영국 창가까지, 다육이를 통해 나만의 온도를 찾다.
오늘은 날씨가 따뜻하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딸은 부활절 방학이라 친구들과 해변에 놀러 갔다. 비록 영국의 누런빛 바다일지라도, 제주도의 푸른 바다를 늘 보며 자란 딸은 친구들과 놀러 간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지, 기분 좋게 집을 나섰다. 저녁에 딸과 친구들이 돌아올 때, 김밥이라도 싸서 저녁으로 먹이려고 야채를 사러 근처 테스코로 향했다. 짙은 녹색의 싱싱한 브로콜리를 약 1,500원에 구입한 후, 불현듯 제주 영어교육도시의 오리진 가게에서 팔던 약만 원짜리 브로콜리가 떠올랐다.
영국에서는 테스코 슈퍼마켓에서 아무렇지 않게 장을 보던 나에게, 그곳에서는 약 1만 원짜리 브로콜리 하나를 사기 위해 한참을 망설여야 했다(2022년도였으니까, 지금은 조금 저렴해졌으려나?). 외벌이 전업주부였던 나에게 그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매일을 살아가는 무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가격은, 서울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에게도 결코 가벼운 숫자가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서울은 모든 것이 집중되는 곳이라 경쟁이 치열하다. 그 덕분에 생산자보다는 소비자가 더 저렴하게 식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살면서, '왜 제주도에는 맛있는 회가 없을까?'라고 했더니, 제주도 토박이들은 맛있는 회는 다 서울로 가기 때문에, 제주도에서는 맛보기 어렵다고 했다. 정말 그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제주도는 1차 산업과 관광업에 의존하는 곳이기도 하고, 물론 제주영어교육도시가 조성되면서 땅값이 10배 정도 뛰어 벼락부자들이 많이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제주도 토박이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 외지인들이 땅을 마구잡이로 사들이면서, 땅값과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 토박이들 중엔 땅값 상승 덕분에 자녀들을 서울로 유학 보내는 데 밑천으로 삼은 분들도 있었다. 실제로 제주 영어교육도시에서 1분 거리쯤에 있던 귤밭이 떠오른다. 귤농사와 함께 다육이도 키우며 장사하시던 어르신이 계셨는데, 내가 그곳에서 귤을 사 먹을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본인 땅을 팔아 결혼한 두 딸에게 집 한 채씩 마련해 주셨다고. 그 말씀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평생 서울에서 살면서,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고, 종로나 명동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고 영화를 보며 살아왔던 나에게,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웃음소리가 가득한 공간, 그리고 익숙한 관계가 주는 안정감 속에서 살았던 나에게 제주도는, 그리고 제주도 내에서도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리던 영어교육도시는 너무나 조용하고 고단했다. 그만큼 외로웠다.
그곳은 교육이 중심인 도시였다. 부모들은 자녀의 학년에 맞춰 이사를 하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학원, 사교육, 커리큘럼… 모든 것이 자녀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 치열한 구조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나 자신이 작아지는 기분을 느꼈다. 식자재 하나를 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던 그곳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피하려면 결국 자기 수준에 맞는 주거지에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아이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식이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부모로서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물론, 부자라고 다 편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부모들 중에는 자녀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정서적, 물질적으로 묵묵히 뒷받침하는 이들도 있었다. 반면, 자녀의 대학 전공을 정해주고, 그 길이 아니면 지원을 끊겠다고 말하는 부모들도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희생했는데, 너는 왜 그 길을 가지 않니?” 그 말들은 아이들의 삶에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다면,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과 비슷한 환경 속에서 소박하게 만족하며 살아도 충분히 괜찮은 삶일 수 있다. 하지만 자녀에게는 내가 겪었던 어려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면, 부모로서의 희생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 희생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부모로서의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그 희생이 아이에게 반드시 올바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종종 그 희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부부는 서로에게는 끝까지 희생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의 핏줄인 자녀에게는 '천륜'이라는 이름 아래 기꺼이 그 희생을 감당한다. 그것이 부모의 사랑이라는 걸, 나도 아이를 키우며 점차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결코 평탄하지는 않았다. 외지인으로서 제주에서 직업을 가지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출퇴근만 왕복 두 시간이었고, 아이를 돌봐줄 사람도, 시간도, 인프라도 부족했다. 돌봄 서비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인력을 찾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육아(유독 섬세한 딸)가 세상에서 가장 힘들었던 나의 하루하루는 정서적, 문화적, 지역적 고립과 싸우는 시간이었고, 그 모든 무게를 감내하는 내 마음은 점점 지쳐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티며 제주영어교육도시를 떠나 이곳에 도착해 다시 정착하려 애쓰고 있다. 그나마 내가 사는 곳이 영국의 공공임대주택단지라서, 상대적으로 경제적 박탈감은 덜 느껴진다.
오늘 마침내, 창가에 두었던 작은 다육이가 꽃을 피우려는 몽우리를 맺었다. 아주 조금만 더 기다리면 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나는 화초를 잘 키우지 못한다. 아니, 아예 사지 않는데, 사람들이 선물로 주면 그 화초들은 다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런데 이 다육이는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창가에 두었더니, 스스로 피어나려고 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깨달았다. 내가 식물을 키우지 못한 게 아니라, 그동안 내게 맞지 않는 화초들만 곁에 두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나는 정성껏 매일 물을 주고 돌봐야 하는 화초보다는 햇살만으로 자라나는 다육이가 더 잘 맞는 사람이 아닐까?
TMI: 남편은 꽤 감성적인 사람인데, 그는 모든 화초를 꽃피우고 열매를 맺게 만든다. 역시 남편과 나는 기운부터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나마 딸은 남편을 거의 70% 닮았고, 나를 30% 닮은 덕분에, 우리 부부보다는 조금 더 균형 잡힌 성격을 가진 것 같다.
뼛속까지 Make in Korea인 나는 평생 꿈꾸지 않았던 외국 생활을 하며, 그때마다 하나씩 깨달았다. 사람에게는 각자 맞는 삶의 온도와 환경이 있다는 것을.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활기찬 도시에서 빛나고, 내향적이고 사색을 즐기는 사람은 고요한 나라, 예를 들면 영국과 같은 환경에서 더 자신답게 살아간다.
결국, 삶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에게 맞는 곳이, 누군가에게는 숨 막히는 곳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치열한 경쟁과 비교 속에서 살아가는 그 도시에서 조금은 낯선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나는 제주영어교육도시라는 환경에는 맞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버티고 나아가 지금은 여기 영국에 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뿌듯하게 만드는 것은, 한국어로 딸과 한국어로 마음 편하게 일상의 이야기를 막힘없이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의 영어와 IB 교육 덕분에 이곳 영국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지만, 엄마에게 딸은 그 어떤 존재보다 특별하다. 그런 딸과 함께 모국어인 한국어로 생각과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아주 작은 꽃 하나를 피워가고 있는 셈이다.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엄마가 외국으로 교육을 위해 나가는 것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해외유학을 고민하는 이들이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제발 가지 마세요.' 아버지는 한국에서 외로움에 시달리며 힘들어하고, 엄마는 외국 문화권에서 아이를 돌보느라 한국보다 2~3배 더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가며, 무엇보다 아이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흔들릴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영어는 잘하지만 한국어가 부족해 부모와 자식 간의 문화적인 한국어 대화가 불가능한 경우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진심을 담아 조심스럽게 이렇게 조언한다. 차라리 제주 영어교육도시에서 교육을 받게 하거나, 자녀가 다 자란 후에 보내는 것이 어떨까. 이것은 그저 내 경험에서 나온,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니 지나가는 사람의 말처럼 대충 듣고 지나가시길 바란다. 혹시 이 말이 누군가의 가족에게 닿아, 또 다른 삶의 꽃을 피우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P.S.
영국의 이스터 홀리데이가 시작된 후, 오늘 처음으로 기온이 19~21도까지 올랐다. 사랑스러운 봄 햇살과 살랑거리는 바람 덕분에, 직장에 나가지 않는 엄마들과 방학을 맞은 아이들이 하나둘 근처 바닷가로 향한다. 모두가 이 따사로운 봄볕을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기온이 내려간다고 하니, 오늘의 이 햇살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다시 이런 날이 오기까지는 몇 주가 더 걸릴지도 모르니까.
문득, 제주도의 봄이 떠오른다. 3월 초만 되어도 이미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창밖으로는 봄빛이 번지던 그곳. 봄이 조금 일찍 찾아오는 제주가, 괜히 그리워지는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