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과 졸업, 이사와 방학 속에서 맞이하는 변화와 성장의 계절
타이틀:제주영어교육도시, 5월과 6월의 긴장과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부제:시험과 졸업, 이사와 방학 속에서 맞이하는 변화와 성장의 계절
제주영어교육도시에 오래 머물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정한 패턴이 보인다. 나는 그동안 이곳을 찾아왔다가 떠나는 많은 가족들을 지켜봐 왔다. 나는 여전히 제주영어교육도시에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그런 ‘이동’이 특히 활발해지는 시기가 있다. 바로 5월과 6월이다. 이때는 시험과 졸업, 방학과 이사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일 년 중 가장 분주하고 북적이는 때다.
포장이사 차량, 지게차, 청소업체… 6월의 풍경
6월 초중순이면 아파트 단지는 활기를 띠며 바빠진다. 포장이사 차량과 지게차가 오가고, 청소업체 직원들도 여러 집을 바쁘게 오르내린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이들의 모습은 일상의 일부처럼 반복되지만, 그 속엔 각 가정마다의 사연과 감정이 쌓여 있다.
이러한 분주함의 중심에는 IB 시험과 졸업, 방학이 있다. 특히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4월 말부터 5월 중순까지 약 3주간 이어지는 IB 디플로마(DP) 시험을 치르며, 한 해의 가장 치열한 시기를 보내게 된다.
학생뿐 아니라 부모 역시 이 시기에는 아이의 컨디션과 감정 상태에 극도로 예민해진다.
수능은 폭풍처럼, IBDP는 장기전처럼
한국의 수능은 하루 만에 모든 과목 시험을 치러내는 단기전이다. 그 하루를 위해 몇 년을 준비하고, 그 하루에 온 가족의 긴장이 집중된다. 짧고 강렬하다.
반면,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시험은 완전히 다른 구조다. 3주 동안 여러 과목 시험이 분산되어 진행되며, 각 시험마다 유형이 다르고, 심지어 시험 장소와 시간도 매번 달라 아이들은 철저한 일정 관리와 체력 조절이 필수다.
IBDP는 '장기전'이다. 학생은 물론 학부모에게도 매일이 전쟁이다. 식단, 수면, 컨디션을 철저히 관리하며 지속적인 집중과 체력 분배가 요구된다. 하루의 집중으로 끝내는 수능과 달리, 이 긴장은 3주간 '잔잔하게, 그러나 무겁게' 이어진다.
요약하자면,
“IBDP가 3주간 잔잔하게 지속되는 무거운 긴장이라면, 수능은 하루에 몰아치는 폭풍 같은 전투다.”
하나는 인내의 싸움, 다른 하나는 순간의 폭발적인 몰입을 요하는 싸움이다.
A-Level, IBDP와 또 다른 리듬
또 하나의 국제 학력으로 인정받는 A-Level 시험은 IBDP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반적으로 5월 중순부터 6월 말까지 약 6주간 진행되지만, 올해는 일정이 앞당겨져 5월 초순부터 6월 20일까지 치러진다.
A-Level은 시험 과목 수가 IBDP보다 적은 편이지만, 시험 기간이 길다 보니 긴장감을 꾸준히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중간에 약 일주일 정도의 방학이 포함되어 있어 시험 리듬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만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주어진다는 장점도 있다.
과목별로 시험 일정이 다르게 구성된다는 점도 A-Level의 특징이다. 아트, 미술, 경제, 경영 과목은 대체로 일찍 시작해 비교적 빠르게 마무리되는 반면, 수학, 영어, 과학처럼 대학 전공에 필수로 여겨지는 과목들은 시험 간격이 넓어져 일정 관리와 긴장감 유지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특히 딸의 경우처럼 중간 방학이 포함된 경우에는 리듬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졸업, 드레스, 그리고 들뜬 감정
시험이 끝나면 곧 졸업 시즌이 다가온다. 보통 5월 말 또는 6월 초,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4성급 이상 호텔에서 졸업파티를 연다.
단순한 송별 모임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한 친구들과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정식 행사’이다.
특히 졸업파티 의상을 고르기 위해 학생들과 부모는 함께 백화점이나 온라인 쇼핑몰을 뒤진다. 딸을 위해 드레스를 맞추고, 아들을 위해 턱시도를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부모와 아이 모두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을 나누게 된다.
이 역시 영어교육도시 특유의 문화다.
방학, 이동, 사교육 그리고 '보이지 않는 비용'
졸업식이 끝나면 본격적인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보통 6주에서 8주 정도로 길며, 대부분의 가정은 제주를 떠나 육지로 향한다.
재학생들 중 일부는 기말고사를 마친 후, 부족한 과목을 보완하기 위해 본가로 돌아가 학원가의 삶을 시작한다.
저학년들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지의 여름 캠프에 참여하거나, 체험학습과 외국어 노출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경우도 많다.
어떤 가족들은 여행을 겸해 해외여행을 가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발생한다. 항공료, 캠프비, 학원비, 숙박비, 생활비까지…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살아가는 데는 단순한 교육비를 넘어서는 생활비 구조가 존재한다. 이는 종종 재정적 박탈감으로 이어진다.
물론 이 감정은 제주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육지의 작은 사립학교에서도 느껴지지만, 이곳은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빈집, 한 달 살기, 그리고 또 다른 입주자
여름방학 동안 집을 비우게 되면, 일부 가정은 그 집을 '한 달 살기'용 임대로 내놓는다.
제주 여행객이나 예비학부모들이 이 집을 단기 임대로 사용하면서 이 지역의 교육환경과 주거환경을 체험해 본다. 특히 여름철엔 수요가 많아진다.
반면, 여유 있는 몇몇 집들은 그냥 집을 비워두고 가족이 떠난다. 금수저로 불리는 이들 가정은 집을 이용해 부가 수익을 내기보다는 정서적 여유와 사생활 보호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이사와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
이렇듯 6월 초중순부터는 본격적인 이사철이다. 많은 가정이 제주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도시, 혹은 새로운 나라로 떠난다.
포장이사 차량, 지게차, 청소업체의 손길 속에 또 한 번 아파트 단지는 사람들의 흔적을 지우고 새 얼굴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들이 제주에서의 시간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의 5월과 6월은 이별과 설렘, 긴장과 여유가 교차하는 시간이라는 점이다.
끝나지 않은 장, 계속되는 순환
짧지만 강렬했던 한 해의 장면은 그렇게 끝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위한 페이지가 펼쳐진다.
시험, 졸업, 방학, 이사. 이 모든 것이 겹쳐지는 이 시기는 단순한 학사일정을 넘어 삶의 전환점이다.
이 도시의 5월과 6월은 단지 바쁜 시간이 아니라, 가족들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그들의 뒷모습은 언제나, 다음을 향한 새로운 시작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