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니들슈퍼마켓 다녀온 날/인종차별받던 날
오늘은 딸과 처음으로 집 근처에 있는 니들슈퍼마켓으로 과일을 사러 나갔다.
니들슈퍼마켓이 있다는 의미는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워킹클래스이며, 한국말로 기초생활수급 가정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이민자 가정들이 많다. 그래서 집값이 다른 곳에 비하여 저렴한 편이다.
이곳은 2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아주 작은 창고형 슈퍼마켓이었다.
나는 이곳을 잘 이용하지 않았었다.
물론 내가 일을 하고 있었고, 차량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일을 하려면 아무리 돈이 없어도 적어도 10년 이상된 중고차를 운전해야만 한다.
단. 한국에서 석박사를 공부를 하러 온 금수저급 학생과 그의 가족들, 심지어 자녀들을 영국 사립학교 교육을 시키기 위해 온 금수저급의 한국인 가족들은 친정이나 시댁에서 올 때부터 영국에 집을 사주고, 손자손녀 사립학교 학비는 물론이고, 집에서 일하는 사람도 붙여주셨다. 20년 전에도...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노년에 역이민을 한 후 현실과 마주하는 나의 마음상태처럼 시커멓다.
딸은 영국에 도착한 후, 남편이 있는 동안 시티에 1~2번 함께 다녀온 후로는 집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자신이 레몬케이크와 쿠키를 만들려면 재료를 사야 하니까(나보고 사 오라고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입해오지 않을 것이 뻔하므로) 처음으로 따라 나왔다.
딸은 이곳에서 태어난 후 3년 동안 살았다.
그래서 이곳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결국, 딸에게는 처음으로 영국이라는 나라로 이민을 온 셈이다.
입구에는 신선하게 구워진 빵집이 있다.
나는 니들이라는 슈퍼마켓에 이런 현대식 베이커리와 매장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다.
물론 이곳은 영국의 중산층과 상류층이 이용하는 세인즈브리, 테스코, 모리슨, 웨이트리스 슈퍼마켓처럼 물건이 다 구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층민과 이민자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슈퍼마켓이다.
변화하지 않는 영국도 20년이 지나자 조금씩 변해있었다.
12년 동안 영국을 떠나와 있었는데, 나의 두뇌에는 예전의 영국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는지, 조금의 변화된 모습에도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다.
마치, 1970년대 한국으로 선교를 하러 오셨던 연로하신 선교사님의 기억에는 여전히 못 사는 한국의 인상이 각인된 것처럼.
이곳은 과일과 야채가 20년에도 가장 싼 곳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지인에 의하면 알디슈퍼마켓이 조금 더 싸다고 함)
TMI:
이곳 말고도 근처에 한 군데 더 있었는데, 그곳은 집을 짓고 있다고 하였다. 영국도 집이 모자라기 때문에 빈 땅은 전부 집이 빌라가 지어지고 있다.
이곳에서는 FLAT(한국말로 연립주택)이 지어지고 있다.
광고하는 디자인을 보면, 한국의 아파트를 연상시킨다.
가격이 굉장히 비싸다. 아무래도 현대식으로 지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젊은 사람들은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평범한 사람이 집을 구매하는 것은 한국처럼 하늘의 별따기인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신선한 블루베리가 우리나라돈으로 약 2,500원 정도여서(환율로 따지면 그렇고, 실제 물가로 따지면 1:1로 계산하면 약 1,600원 정도였다.)
엄청난 세금과 전기, 가스, 수도세의 민영화 그리고 카운슬택스로 영국인들의 삶은 피폐하다.
마치 1980년대, 선진국 일본은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민영화가 되지 않은 한국은 현재 시점으로 비교하면 훨씬 더 살기 좋은 곳이다.
물론 지금까지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생강, 마늘, 고추도 있다. 나중에 김치를 담글 때 이곳에서 구입하면 될 듯싶다.
한국에서는 김치를 조금만 먹었던 딸이 이곳에 와서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다든지, 김치를 많이 먹는 것을 보면, 역시 향수병이 시작된 것이리라.
딸은 아기 이유식부터 한식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한식을 더 좋아한다.
이러한 증상은 한국의 인천공항에 딱 도착하면 싹 사라진다.
원래, 병원에서 약 먹느라고 술 먹지 마세요 하면 갑자기 못 먹는 술도 마시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증상이라고나 할까?
먹을 수 있는 선택권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그것에 관한 욕구가 달라진다.
평생 김치를 담아먹지 않았는데, 이곳에서는 담아야 할 것 같다.
그냥 먹는 것은 사다 먹으면 되는데, 김치볶음밥을 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보통 2~3배의 가격을 주고 김치를 사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유값이 과자 한 봉지 가격과 비슷하거나 더 싸다.
그나마 싼 것이 있어서 좋다.
영국에 입국한 후 무슨 극기훈련을 하듯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몸에서 마구마구 고기가 필요하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삼겹살을 구입했다.
참기름이 없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해외이삿짐에 참기름을 구입해 왔으면 좋았을 것을...
삼겹살에는 역시 참기름에 소금 넣고 찍어먹는 것이 제맛이지 않은가!
바구니가 한가득이 되었다.
쿠키와 케이크를 만들려면 밀가루와 우유까지 구입하다 보니, 무게가 10킬로그램 정도 되었다.
7년 전인가 한국 학생들 중에 끌고 다니는 캐리어가 학생가방으로 유행했을 때, 딸이 쓰던 것이었다.
샘소나이트제품이라서 튼튼할 것 같아서 가지고 왔는데 다행히 장바구니용으로 사용할 수 있겠다 싶다.
물론 차를 구매하면 이런 가방은 필요 없겠지만, 차량 한 대 구입하여 관리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4~5배의 비용이 발생하므로 처음부터 마음을 접었다.
물론, 내가 다시 직장을 갖게 된다면 구입해야 할 것이다.
내가 가방에 넣는 것을 본 딸은 가만히 두면 안될 것 같은지, 자신이 하겠다면 비키라고 한다.
역시 젊은것이 경쟁력이다. 머리회전도 빠르고, 물론 딸이 남편의 성격을 물려받은 것도 영향이 있겠지만,
각도를 재듯이 물건을 차곡차곡 넣었다.
이럴 때는 남편을 닮은 것이 쪼금 마음에 든다.
깔끔하게 정리된 가방은 내가 끌고, 장바구니는 딸이 들고서 다시 걸어서 집으로 기분 좋게 걸어오고 있었다.
혼자 걷는 길보다 16살 된 딸과 함께 걷다 보니, 초라한 나의 모습이 조금은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분 좋게 걸어오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차량에서 창문을 열고 초등학교 6학년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우리들에게 소리를 질러댄다.
굳이 글로 쓰면 기분이 더러워질까 봐서 쓰지 않겠다.
미친것들!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 부모의 그 자식이리라...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기에... 정상적인 부모는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앞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백인영국어르신께서 고개를 절래 절래(몹쓸 것들이라는 말과 당하는 우리들을 안쓰럽게 보는 눈빛을 보내셨다.
딸은 조용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처음 당하는 것이라서 내심 놀랐을 것이다.
물론, 나는 한국을 떠날 때,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미리 여러 번 말은 해두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걱정하지 마 엄마로 대꾸했지만,
막상 당하면, 어른도 상처를 받는데, 아직 어린 사람이 평생 길 가다가 들어본 적이 없는 욕은 그것도 아무런 이유도 없는 듣는다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기 때문에...
왜 아는 것과 당하는 것은 다르다.
이런 것을 두고 바로 Welcome to the Real World라고 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리오에게 했던 말처럼...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민들과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삶과는 거리가 멀 기 때문이다.
나의 얼굴빛이 변하고, 비속어가 튀어나오자, 옆에 있는 딸이 "엄마 그냥 무시해. 그리고 아프리카에 있는 것은 아니잖아"라며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확 더 올라왔다.
내가 사는 동네는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 도로를 지나간다는 의미는 사회적으로 하층민에 속하는 확률이 높다.
물론 부자동네에서도 발생하지만, 확률이 덜하다.
갑자기 확! 한국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에이씨, 40대부터라도 돈을 삶의 목적으로 하면서 살았었야 했는데, 무슨 놈의 사회복지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시간을 낭비했는지... 그때 자본주의자로 살았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나는 일이 벌어지면, 남을 탓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자책한다.
내가 잘났다면,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50대가 되고 신체와 몸 건강까지 탈탈 털리면서 생각이 그쪽으로 왕창 쏠려있다.
제기랄, 자책도 교만의 일종이라고 했는데,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건가?
돼지비계와 껍데기를 떼어내다 보니, 얼마 되지 않지만, 둘이 먹기에는 충분했다.
딸이 요즈음 고기를 잘 먹는다.
아무래도 마음이 허해서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와 헤어지고 외국에서 힘들게 살게 되었기 때문인가?
이미 예비 성인이 된 딸은 모든 것을 시시콜콜 이야기하지 않고, 가슴에 묻어둔다.
그래서 나는 사실 더 걱정이 된다.
고기를 열심히 먹으며, "엄마 영국의 삼겹살도 맛있다^^"라고 하며"엄마, 세상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아. 그래도 우리는 집이 있고, 먹을 것을 구입해서 먹을 수 있으니까 감사해야 돼"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말을 한다.
역시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에는 아시안슈퍼마켓에서 참기름을 사다가 소금에 찍어 먹자고 다짐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TMI: 딸은 심성이 착하다.
초창기 제주영어교육도시가 설립되고, 국제학교가 개교되었을 때,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나, 영어를 하지 못하는 친구들, 외톨이로 지내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먼저 다가가 친구가 되어 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친구 중에 뉴질랜드출신의 중국인 아이가 있었는데, 그들이 몇 년 후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갈 때 그녀의 엄마가 나의 두 손을 잡으며, 너무 고마웠다고 감사를 표현했었던 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제, 이곳 영국에서 우리 딸은 외국인으로서 지내게 될 것이다.
일반사회에서와 학교에서도 인종차별적인 언어와 취급을 당할 것이다.
그때, 축구선수 손흥민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당당하게 대처하고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그때 나의 딸에게 다가와 따듯한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는 친구가 많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