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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걸 Aug 19. 2023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

고등학교친구들로부터의 위로/Diverted Traffic 우회도로이용

지랄 맞았던 1달을 보낸 후, 나는 또다시 가슴 벌렁거리는 1달을 또다시 보냈다.

젠장, 산 넘어 산이다. 너무 많아서 몇 가지인지 셀 수도 없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일이 꼬여도 이렇게 사사건건 꼬이지?

더욱이 심장판막증 1단계인 노년단계에 접어든 나에게? 

하늘에 계신 지극히 높으신 그분은 나에게 왜 그러시지???

숨쉴틈도 없이 쉬지 않고, 문제가 발생했다. 


일단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후, 급한 대로 나의 안부를 걱정하는 지인들을 위하여 나의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물론 브런치에는 글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여전히 이곳은 작가님들의 글을 너무 잘 쓰셔서 편하게 글을 못쓰고 있음.)

또다시 친절한 브런치씨에게서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떠냐는 속삭임 같은 메일이 도착했다.

그래도 못썼고, 안 썼다. 

여기저기서 빵빵 터지는 일들로 나의 정신과 몸이 탈탈 털리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이삿짐을 받고 딱 한번 밥을 해 먹었는데, 그다음에 나의 귀중한 쿠쿠밥솥은 고장이 나버렸다. 

당연히 전압을 변환시키는 좋은 콘센트를 구매하여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ㅠㅠ 그럼 나는 왜 힘들게 해외이삿짐으로 가지고 왔을까??? 미국과 베트남등에는 서비스센터가 있었다. 친절하게 쿠쿠챗봇과 연락을 했지만, 결국은 서비스센터에 가야 한다는 안내서를 받았다.


올 때 내솥과 스테인리스판과 고무패킹까지 전부 바꾸었다. 족히 20만 원이나 돈 주고 싹 다 갈아서 가지고 왔는데, 쿠쿠밥솥이 없으면 여기서 풀풀 날아다니는 베트남쌀을 사가지고 어떻게 밥을 해 먹을 것이란 말인가?

결국 20년 전에 결혼선물로 받은 일명 코끼리밥솥을 꺼내서 해 먹고 있다. 

그리고 가장 나를 열받게 했던 것은 처음으로 당근마켓에서 중고로 구입한, 무려 25만 원이나 주고 구입한 삼성노트북이 오자마자 고장 나 버린 것이었다(컴퓨터에 박식한 나의 남편과 지인의남편까지 나섰지만 결국은 폐기해야 함.)


나는 원래 중고마켓에서 가전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물건을 한번 사면 귀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보통 10년 이상은 거뜬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중고로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다.

지인께서는 자주 이용하시는데, 구입해서 쓰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저렴하시다면서 강추하셨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그분의 경우와는 달랐다.


재수 없게도 이상한 물건을 구입했는지, 제주도에서 딱 1 달반을 사용한 후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고장 났다. 

원래 물건을 구입하러 갔던 날, 약간 이상했었던 점이 있었다. 

내가 먼저 그곳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만나는 장소를 내가 잘 몰라서 일부러 일찍 출발하다 보니,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근처 편의점에 가서 초콜릿을 구입해서 왔고, 곧이어 판매자가 나타났다.


판매자가 와서 나와 대화를 하는데,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싶었는데, 그분이 떠난 후 남편이 말했다. 판매자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물건을 파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고장 난 물건들을 약간 수리해서 되파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들었다. 


그런데, 어찌하랴 이미 돈 주고 물건을 받았는데... 아무튼 그 찝찝함은 이곳에서 큰 문제를 일으켰다. 특히 금전적으로 큰 손실을 안긴 것이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했어야 하는 해외이삿짐 승인번호 신청이 늦어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편은 늘 가지고 왔던 자신의 노트북을 이번에는 가지고 오지 않았다. 

한국처럼 PC방이 아무 데나 있는 곳도 아니고ㅠㅠ. 시차적응도 못한 상태에서 아무튼 기억하기도 싫다.

옆에 있는 남의 편인 남편은 "그래서 내가 중고로 물건 사지 말라고 했는데..."라고 쓸데없는 말을 했다. 

"에이씨, 내가 돈이 많았거나, 당신이 돈이 많았다면, 내가 굳이 중고로 샀겠니!!!"


TMI:핸드폰해킹이라는 엄청난 일을 당해서 거의 멘붕이었고, 핸드폰에 있었던 모든 사진, 영상, 전화번호가 전부 날아가버렸음. 이곳 먼 곳까지 와서 별의별 일들을 다 당하고 있음.


그나마 가장 나를 못 견디게 했던 벌레 먹은 피아노를 업체를 통하여 1차로 해결한 후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던 찰나, 나의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하여 나의 생존여부를 확인하는 문자가 왔다.

나를 어떻게 찾아냈지?


TMI: 나는 나의 친구들에게 나의 이메일 주소를 전부 알려주었다. 그리고 심지어 나의 블로그를 알려주었다.(평소에 나는 나의 친한 친구들에게는 내가 블로그주소를 알려주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임) 아마도 친구들은 이메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모든 일을 카톡으로 해결하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인스타그램은 한국을 떠나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님을 응원하기 위하여 그냥 하나 만든 거였는데, 그래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나의 친구는 어떻게 나를 찾아낸 거지? 아주 신기할 따름이다.  

그 후 나를 찾아낸 친구는 나머지 6명의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알린 후 단톡방에 초대하고 그렇게 다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다시 세상과 다시 연결된 기분이 들었고, 몸은 먼 곳에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한국에 있는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갑자기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부정적인 기운에 절어 있었던 허약한 몸에 피가 돌았다. 

역시 사람은 사람이 살린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그동안 2달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어서 걱정했다고 하면서(속으로 블로그 보라고 했는데, 거기에다가 이미 안내했는데...??? )하려다가 그냥 넘겼다^^. 웃고 떠들다 보니, 정신이 맑아졌다. 


나를 위해 누군가가 나의 안부가 궁금해진다는 것은 나는 그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나도 그들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야 할 텐데...

젊었을 때부터 세계를 다니고, 여행을 하고 거주하면서 친정부모님께는 늘 염려하게 만들었고, 친구들에게도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나는 어쩌면 마음이 많이 쓰이는 친구일 수도 있겠다 싶다.

친구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고 난 후, 마치 가슴이 꽉 막혔던 무엇인가가 쑥 내려갔고, 웃음이 피식피식 나왔다. 그런 얼굴로 나는 저녁거리를 구입하기 위하여 근처 슈퍼에 갔다. 간단한 저녁거리를 구입해서 나오는 길에 버스정류장에 어르신(할머니)한 분이 앉아계시는 것이 보였다.


어르신께서 앉아계신 버스정류장은 신호등 설치로 인하여 임시로 폐쇄되어 있는 곳이다. 이미 4주가 지나서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이곳에는 버스가 정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가끔씩 연로하신 분들께서는 버스를 타기 위하여 이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다리가 아프셔서 잠시 쉬어가시는 분들도 계시기 때문에 조금 지켜보았다.  


어르신이 계속해서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도착시간을 연신 고개를 캬우뚱거리시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이곳이 임시 폐쇄된 것을 모르시는 것 같아서 다가가 말씀드렸다. 

9월 1일까지 신호등설치로 인하여 임시 휴업 중이라고...(직업병은 어디서나 발동함)

어르신(할머니)께 옆에 붙어 있는 임시폐쇄안내문을 보여드리자, 박장대소를 하셨다. 사실, 영국의 연로하신 분들은 전통적으로 박장대소를 하지 않으시는 경향이 있는데, 이분은 달랐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따라 웃었다.


보통 연로하신 분은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읽지 않으셨을 수도 있지만, 연로하시면 시력이 점점 나빠져서 작은 글씨는 잘 안 보이는 특징이 있으시다. 

나 역시 백내장 20%로 잘 안 보이는데, 하물며 70세가 조금 넘어 보이시는 어르신은 못 보는 것이 어쩌면 더 당연하리라.

어르신께서는 걸어서 약 100미터가 조금 안 되는 근처의 다른 정류장으로 향하셨고, 그런 그분의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했다. 


나는 오늘 친구들로부터 위로와 사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나의 눈과 마음이 정화되었고, 그로 인하여 다른 이들의 필요함이 더욱 잘 보였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상처도 받지만, 동시에 더 큰 위로도 받을 수 있다. 

한자의 사림인자가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서 있는 것이라 뜻이 있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사랑과 위로를 건네고 싶다. 아마도 6개월 정도 지나면 이곳에 잘 정착해 있을까? 

앞의 교차로는 "Diverted traffic"으로 인하여 교통체증이 평소보다 심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않는다. 담담하게 우회도로를 이용하며 달리고 있다.

우리는 인생에서 가끔씩 피치 못할 이유로 삶에 있어서 우회도로를 이용해야 할 때가 있다. 

결국 돌아서 가야 한다. 그러면 시간낭비, 돈낭비가 어마무시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왜 나만 당해야 하느냐고 화내고, 소리쳐도 할 수 없다. 

오로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곳에서 도망치거나 안달하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서 최선의 선택과 행동을 하면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 외에는...

그렇게 묵묵히 하다 보면, 조금은 성숙한 인간의 모습으로 본래의 인생의 도로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싶다.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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