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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걸 Aug 27. 2023

친구의 손 편지는 주저앉으려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이곳에서 도망가고 싶다/24년 만에 찾은 친구의 손 편지

나는 이곳에서 도망가고 싶다.

새벽 5시에 깼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또렷하다.

오늘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보니까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카톡으로 문자가 와 있었다.

논문과 관련하여 자료를 보내주셨는데,

스마트폰으로 열리지 않았다.

결국 1층 거실의 PC로 열어보기 위하여 내려왔다.

우리 집은 복층구조의 낡은 집이다.


tmi: 영국의 복층구조의 낣은 우리 집은 요즘 나의 늙어가는 무릎을 혹사시키고 있다.

갱년기로 기억력도 감퇴되다 보니, 어떨 때는 몇 번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나이가 젊으면 운동하는 셈 치지만, 나이 들면 고통이다.

그래서 영국은 나이 드신 분들은 한국처럼 일반 단층주택집에 살기를 선호하신다.

일명 방갈로(bungalow)라고 불리는데, 수요보다 공급이 적어서 보통 복층집의 가격과 비교하여 최소 1.5배에서 2배까지 비싼 경향이 있다.


역시나 안 열린다.

결국, 이메일로 보내주십사 요청드린 후,

연구에 필요한 작업을 하던 중,

갑자기 떠오른 생각은 "도망가고 싶다"였다.


과거 석사논문을 쓸 때에도 똑같은 생각이 들었었다.

논문이고 뭐고 간에 도망가고 싶다ㅠㅠ.

그런데, 일단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죽으라고 버티고 버텨서 석사논문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다짐했었다.

논문을 쓰는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라고.

절대로 다시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아무튼간에 인생에서 절대로!라는 말은 잘 지켜지는 않는다.

제주도 대정 추사기념관 내에 있는 기념품가계에서 구입한 기념품: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지금 현재, 영국에 역이민을 와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이곳이 나에게는 마치 추사 김정희가 머물던 대정의 유배지처럼 느껴진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내가 계획했던 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마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내 신세가 처량했다.


아마도 오늘 기분이 이렇게 다운이 된 이유는 목욕탕세면대 수리비 견적서를 어젯밤에 받았는데,

예상대로 너무 비싸서 낙심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배관교체와 인건비로만 약 120만 원이 나왔다.

그리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세면대와 기둥이 혹시라도 파손될 수도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책임을 지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잘못하면 목욕탕 세면대와 배수관 교체로 최소 3백은 필요할 것 같았다.

제기랄~ 벌써 일주일 동안이나 세면대를 사용하지 못했는데ㅠㅠ


제주도에 있을 때에는 화장실이 2개이다 보니, 한쪽이 고장 나면 다른 쪽을 사용하면 되는데, 이곳은 화장실이 한 개라서 정말 불편하다. 그리고 우리 집은 침실과 목욕탕이 2층에 있기 때문에 누수가 되면 정말 큰일이다.


이 나이 먹도록 도대체 돈도 안 모으고 뭐 했나? 싶은 가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내일 알려야 하는 것도 불편했다.

특히 속전속결을 좋아하는 서울사람으로서 지금의 상황은 내 몸과 정신을 옴짝달싹 못하게 옭아맨 느낌이랄까? 마치 유배지에 와 있는 느낌이다.

뉴질랜드 테카포호수옆의 전망대기념품 가계에서 구입한 지구본 스트레스볼

일단, 2019년 12월에 뉴질랜드와 호주여행 시 구입했었던 스트레스볼을 만지며,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했다.

딸을 위한 선물이었는데, 딸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요즈음 내가 사용하고 있다.

마음을 여유롭게 하려고 했지만, 오히려 새처럼 날아가고 싶은 욕망만 커져갔다.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 이중섭 씨의 1954년 작품


"복사꽃 가지에 앉은 새"처럼 날아가고 싶다.

아주 멀리~ 현재를 떠나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복사꽃이란 말이 뭐지? 사전을 찾아보니 복숭아꽃이란다.

도시에서 자랐기 때문에 복숭아꽃을 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나는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벚꽃을 떠올렸다^^.원래 본인들이 보고 자란 것을 연관시키는 뇌기억 때문인가???


그냥 여기 있는 것 다 버리고, 현재에서 탈출해서 젊었던 시절의 나로 되돌아가고 싶다.

누가 타임머신 안 만들어주나?

너무 현실에 집중해서 살다 보니, 미래를 계획하지 못했고, 오만을 떨었으며, 실수를 저질렀다.

뉴질랜드 크라이스처치의 기념품집에서 구입한 냉장고용 마그네틱

냉장고에 붙여진 기념품들을 보며, 잠시 2019년 12월에 여행했었던 뉴질랜드 및 호주여행이 떠올랐다.

참 힘들었지만, 행복했었다.

그 수많은 여행지에서 마지막으로 그것도 나 혼자서만 오롯이(너무 아름다워서, 남편과 딸에게도 보여주고 싶었음) 떠났던 뉴질랜드의 테카포 호수와 전망대의 별 보기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른다.


tmi: 자연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강추합니다. 반드시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특히 테카포의 호수의 바로 앞에 있는 유명한 호스텔(단 1년 전에 예약해야 함.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에)에서 강과 별 보기까지 천천히 일주일정도 시간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평생 가슴에 두고, 힘들 때마다 떠올리면 행복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만일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한 달 정도 뉴질랜드의 남섬에 머물고 싶다.

뉴질랜드처럼 한국의 제주도도 환경이 잘 보전되기를 바라지만, 아마도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속상하다.

선물 받은 중요한 카드들은 상자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딸이 태어난 후, 많은 지인들께서 딸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카드보관함은 훗날 딸이 컸을 때, 많은 사람들이 너의 태어남을 축하해 주었음을 알게 해 주려고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일일이 꺼내서 읽으며, 기뻐했다.  

그러다가, "엄마, 이것은 카드가 아닌 것 같은데, " 하면서 나에게 노란색편지를 건넸다.

24년 친구로 받은 손 편지를 집정리하다가 발견했다.

그 편지는 바로 나의 고등학교 친구가 손글씨로 쓴 편지였다.

내가 외국으로 봉사를 떠난 후 3년이 지나고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었다.

그 후 6개월 정도 지낸 후, 나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나의 친구는 내가 한국을 떠난 후, 제대로 보내주지 못한 안타까움을 손글씨에 담아 우편으로 보내왔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4년 전이었다.

그때는 요즘처럼 SNS가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친구는 내가 떠난 후,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서 이곳 영국으로 보내왔었다.

아마도 그때 나의 친구의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서, 딸의 태어남을 축하하는 카드와 함께 고이 간직하고 있었는가 보다.(이 짐은 내가 한국 제주도로 갔을 때, 나의 소중한 것들은 영국에 계시는 시어머님댁에 보관하고 있었다. 이번에 내가 역이민을 와서 그 짐을 나에게 돌려주셨다. 그랬기에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을 것이리라.)


그 친구는 편지에 썼던 것처럼, 내가 두 달 전에 한국의 제주도를 떠나 다시 영국으로 역이민을 올 때, 맛있는 것 사 먹고 떠나라며, 거금을 통장으로 입금해 주었다.

그 친구는 결코 자신이 한 말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밥사먹는데 왜 이렇게 많은 돈을 보냈느냐고 생뚱맞은 소리를 했었다^^.


그녀의 마음이 가득 담긴 손 편지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한순간에 잠재웠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잡생각 하지 말고, Just Do It"을 외치게 만들었다.

그래 내가 지금 돈이 없지,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특히 사는 환경이 다르고, 수준이 달라도, 여전히 변치 않고, 서로를 생각하고 있는 나의 친구들이 있으니까,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외친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나를 일으켜 세워서 다시 만난 날까지 힘을 내고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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