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유방암 검사

영국 대학병원으로 유방암 검사받으러 가는 날

by 해피걸

2024년 2월 23일 금요일 새벽.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제 딸과 나는 시어머님댁에 기차를 타고 다녀왔다.

시어머님댁은 그리 급한 것이 아니기에, 취소를 하려고 했는데, 굳이 기다리시겠다는 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다녀왔다.


시어머님은 점점 늙어가시고, 딸은 여전히 나의 손길이 필요하다.

역시, 자식을 낳으려면, 반드시 일찍 낳아야 한다.

노쇠한 몸이 되어 버린 나는 두세 대 사이에서 버겁다.


어제 피곤했으니까, 분명히 잠을 자야 하는데, 정신은 더 말똥 말똥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에 잠시 기도를 드렸다.

이럴 때 남편이 옆에 있으면 정신적으로 조금 도움이 되련만, 하아ㅠㅠ. 쓸모가 없다.


앗! 다시 말을 바꾸어야지, 그나마 있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약 30분이 지났을 때,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서 위로를 하셨다.

길길이 날뛰던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병원에서 온 편지.jpg

아침 8시 20분, 집 밖에는 콜택시가 와 있었다.

우리 집에서 대학병원까지는 약 20분 내외 걸린다.

딸아이의 유방암 검사 예약시간은 아침 9시 15분이었다.


병원에서 온 편지에 의하면, 예약시간보다 15분 전에 도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편지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예약사항을 지켜야 한다. 만일 혹시라도 피치 못할 상황이 있다면 미리 알려야 한다. 편지에는 왜 예약시간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만일 2번 어긴다면 추후 병원예약함에 있어 제약이 있을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tmi: 노인이 될수록 도시에 살아야 하고, 대학병원 근처에 사는 것은 큰 이점이 된다. 이는 한국이나 영국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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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는 우리에게 반갑게 아침인사를 건넸다.

그의 Good Morning인사에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화답했다.

그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그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면, 대화는 그것으로 끝나고 병원 내내 침묵하며 갈 텐데, 그는 달랐다.


밝은 얼굴과 생동감 있는 목소리에서 좋은 기운이 품어져 나왔다.

동시에 그가 타고 있는 차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 뚜벅이로 8개월을 살면서 차가 절실히 필요해지기 시작하자, 나의 두뇌와 눈은 자동차에 꽂혔다.


이미 3군데 정도 메이저급의 중고차 딜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새 차가 아니라 중고차를 사야 하므로 실제로 타본 사람들의 경험담이 듣고 싶었던 차에 그의 차에 눈길이 머물렀다.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그 나라의 보통사람들의 삶과 경제를 알고 싶을 때는 택시를 타고, 택시기사들과 이야기를 한다. 나는 싱가포르와 터어키, 그리고 샌프란시크코에서도 택시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 나라의 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택시기사는 루마니아에서 온 27살의 Danut라는 이름의 청년이었다. 차량은 현대차의 오토 하이브리드 IONIQ5. or? 6.이고 엔진은 1.5 1.6?라고 말했다. 운전 중이라서 명확하지는 못했지만, 차의 장점을 전부 알려주었다.


나는 차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었고, 그는 차량의 장점으로 시작으로 구입장소(아스다슈퍼마켓 근처에 있는 중고차 판매상인 Car Shop Norwich)와 구매액(2년 이내의 적은 마일리지 16,000파운드), 심지어 할부금액까지 아주 자세히 알려주었다.

내가 알기로는 영국은 저탄소를 추구하고, 높은 부가가치세로 인하여 차량가격이 한국과 비교하여 월등히 비싸다. 그런 그에게 나는 감사인사를 전하며, 너는 지혜로워서 너의 미래는 잘될 것이라는 덕담을 해주자,

그의 건강한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딸과 나를 병원 앞에 내려다 주며, 루마니아에서 온 Danut은 파란 하늘처럼 영국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러 달리기 시작했고, 나는 그에게 또다시 만나자며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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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20년 만에 찾아온 대학병원은 여전히 깨끗했다.

이병원은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근래에 지어진 대학병원이다.

원래의 병원은 시티 중심가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더 이상 환자를 감당할 수 없어서 새롭게 지어진 곳이다.


물론 지금도 옛날 병원에서는 여전히 환자를 치료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첨단기술과 능력 있는 의사들은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남편은 옛날병원에서 태어났고, 딸은 새롭게 지어진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

둘 다 이곳 출신이고, 나만 Made In Korea다.

병원을 방문한가족들.jpg
병원을 방문한가족들.jpg

대학병원이다 보니, 우리가 가야 하는 Department of General Surgery는 여러 개의 진료과와 복도를 지나가야 했다. 어떤 진료실 앞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고, 어떤 곳은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굉장히 넓었고, 따듯한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넓은 대기실은 한쪽벽면이 창밖으로 나 있어서 파란 하늘과 햇살이 비추다 보니, 사람들의 기분을 UP 시킬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우리가 안내데스크에 도착하자, 그곳에 앉아계시는 분께서는 우리에게 환자의 이름부터 개인정보를 확인하셨고, 병원에서 온 편지를 보여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문진표를 주시면서, 기존에 복용하는 약이나 건강상태를 체크한 후, 다시 본인에게 돌려달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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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나는 조용히 앉아 작성했다.

딸은 잔뜩 긴장했는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우수캐 소리를 하자, 딸은 신경이 거슬리는지, 나에게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대기실에는 우리 말고도 약 10명 정도가 이미 와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으며, 우리가 문진표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환자들이 들어오고 계셨다.

나이는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했으며, 심지어 휠체어를 타고 오신 60대의 남자분도 계셨다. 그중에서 우리 딸이 가장 어렸다.


시간이 되어 간호사가 나와서 나와 딸은 일반외과(General Surger) 전문의가 있는 방으로 들여보내졌다.

간호사가 딸에게 윗옷을 벗고, 수건을 두른 후, 기다리게 했고, 잠시 후, 전문의가 들어와서 문진을 하기 시작했다. 전문의는 40대 말의 성숙하신 여성이셨으며, 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 웃으며 이야기를 하시면서 문진을 하셨다.


그렇게 문진이 끝난 후, 그녀는 딸에게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아니다. 환자인 딸에게 이야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이미 만 16세가 넘었기 때문이다.

이곳의 주인은 딸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옆에서 의사와 딸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tmi: 17년 전 시아버님의 말기 췌장암 선고를 받을 때에도 의사는 환자에게 직접 이야기했다.

그때, 우리 가족들은 모두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녀는 Cyst(Cystactic:낭포성) 또는 Breath Tissuer(가슴조직)가 될 수도 있는데, 만일 Cyst라면 그에 따른 추후 진행과정이 있을 것이고, 이에 대해 설명하셨다.

역시 동네 GP처럼 자신의 손이 엑스레이가 아니므로, 유방초음파술(Breast Ultrasonograpy)을 진행할 것이므로,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라고 말한 뒤, 다음 환자를 보기 위하여 다른 방으로 들어가셨다.


감사하다.

오늘 즉시 유방초음파를 받을 수 있다니!

기대를 별로 하지 않았었다.

대부분 초음파를 받으려면, 또다시 예약을 하고 기다려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간호사의 안내로 또 다른 곳으로 안내되었다.

우리를 다른 부서로 인계하신 후, 간호사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초음파를 한 후, 또다시 의사를 보기 위하여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와야 할 수도 있고, 집에 가도 된다는 소리를 듣게 될 수도 있다. 만일 이곳에서 집에 가도 된다고 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와서 집에 가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곳의 대기실에는 앞서 진료를 받았던 분들이 있었고, 우리 뒤에 있었던 분들이 다른 간호사들과 들어오고 계셨다.

그중에는 다시 그녀를 만나고 계신 분들도 계셨다.

그분들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분들은 슬픈 소식을 듣고 계실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딸의 이름이 불려졌다.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자신을 Radiologist(방사선사)라고 소개했고, 초음파기계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그녀는 50대 후반의 연배로 얼굴에는 온화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그리고 방에 들어서자, 검사를 하기 위해 탈의를 설명하시면서 딸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어느 학교 다니느냐, 대학정공은 무엇을 할 것이냐면 질문하기 시작하셨다.


준비가 되자, 나이가 젊으신 흑인의 남자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초음파가 진행되었다.

그분의 나이와 검사를 하는 손놀림으로 미루어 주니어닥터 정도로 보였다.

한국으로 치면 인턴이나 레지던트 정도로 보였다.

(어렸을 적부터 서울의 대학병원 문턱을 닿도록 다닌 경험치로 척 보면 안다는 뭐 그런 감이라는 것이 있다)

옆에 앉아 계셨던 Radiologoists도 일어서서, 의사와 함께 초음파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셨다.


그 후, 다시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여성이 들어오셨다.

그녀는 40대의 여성이셨는데, 우리에게 짧게 자신을 Radiologist라고 소개한 후, 곧바로 초음파 화면을 뚫어지게 보셨다.

그 후 주니어닥터와 몇 마디를 나누신 후,

"It is Breath Tissue"라고 주니어닥터에게 말하신 후, 급히 방을 나가셨고,

주니어닥터는 그 말을 나에게 다시 반복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휴! 다행이다. 그리고 감사하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질문했다.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하느냐고...

그는 말했다.

집에서 정기적으로 자가검진을 하면서 지켜보다가, 혹시라도 모양이 변하거나, 다른 증상들이 생긴다면, 즉시 동네 GP를 찾아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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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끝낸 후, 병원밖으로 나왔다.

꽃샘추위로 밖은 엄청 추웠지만(일주일 내내 춥다. 꽃샘추위로 얼어 죽을 수도 있다는 뭐 그런 말이 있는데, 이번주에는 눈이 온다는 소리가 있음) 파란 하늘과 햇살은 마치 오늘은 축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오늘은 행복한 날이었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 중에는 오늘이 슬픈 날이 될 것이다.

마치 2023년 12월, 토모코가 우리 딸처럼 이곳에 와서 유방초음파검사를 한 후, 유방암 확진을 받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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