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쳤다. 그것도 아주 단단히 미쳤다.

평생 꿈꾸지 않았던 대학원 공부

by 해피걸

2013년 4월 그 어느 날

오늘도 나는 저녁 7시에 시작하는 대학원에 가기 위하여

직장에서 막 돌아온 남편에게 7살 딸을 던져준 후, 오후 5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이 시간에는 제주 평화로는 전쟁터로 변한다.


제주도민들의 60~70%는 제주시에 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제주시에 거주지가 있고, 서귀포시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는 평화로는 전쟁터처럼 치열해진다는 말이다.

퇴근시간에는 누구든지, 마음이 급해지듯, 최고속도 80킬로는 무시한 채, 100킬로의 속도로 달린다.

더욱이 앞차와의 거리는 닿을 정도만큼만 차간거리를 둔 앞서가는 차량들을 보면, 마치 죽음의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2차로임에도 뒤에서 붙어서 빨리 가라고 밀어붙일 때는

빚을 내서라도 중고로 BMW를 확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진다.


실제로, 은수저급의 부모가 있는 한국인 선생님들 중에 부모의 도움으로 중고 BMW 타고 다녔다.

초기의 황무지 같은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도 처한 상황은 똑같은데,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저마다 달랐다. 빈부격차를 확실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하루에도 사고가 나지 않으면, 입안의 가시가 돋치는 평화로는 작은 추돌사고부터 사망사고까지 발생하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로였다.

어떤 날은 대학원까지 가는 길에 평화로는 4번의 접촉사고까지 목격한 날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제주 평화로 구간속도제한 설치라는 고마운 해결책으로 인하여 교통사고가 현저히 줄었다.

그런 도로를 달리면서, 나는 늘 중얼거렸다.

“미쳤어! 아주 단단히 미쳤어!”

“왜! 제주도에는 내가 공부하는 주간 전문대학원이 없는 거야!”

“뭐, 이딴 곳이 있어!”

“지역불균형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이놈의 대학원은 왜! 한라산 중턱에 있는 거야!”

나의 나이 46살에 평생 쓰지 않고 살았던, 비속어가 마구 쏟아져 나온다.


나의 가장 소중한 고등학교 친구들 8명은 내가 대학교를 졸업했을 때,

나에게 물었었다.

“왜? 너는 기를 쓰고 대학교에 갔어?”

“대학교 나오면 뭐가 달라지는데?”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뭐가 달라?”

“네가 대학교를 졸업했다 고해서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아주 뼈 때리는 질문들을 쏟아 냈었다.

그들의 수많은 질문에 나는 대답했었다.

“다른 것 없어! 단지, 세상을 보는 시각이 조금 넓어진 것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어. 예를 들면, 세상을 보는 지식의 눈이 예전에는 60도였다면, 90도 정도로 조금 넓어졌다고나 할까?”

현재, 나의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적인 상태는 친구들 중에서 내가 제일 꼴찌다. 그들은 지혜롭고, 나는 지식적이다. 삶은 지식적으로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살아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그렇게 헐레벌떡한 마음으로 시작된 대학원수업은 밤10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끝났다.

재빨리 책을 들고, 차에 타자마자, 칠흑 같은 한라산 중턱을 내려온다.

그 시간 한라산에는 어둠이 짙어지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동물들이 튀어 나오는 경우가 있어서 놀란 토끼눈을 뜨고, 잔뜩 긴장한 채로 내려와야 한다.

물론 한라산뿐만 아니라 평화로도 마찬가지였다.

내려오면서 수업시간에 들은 수업을 생각하며 뿌듯해 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정말 난감한 적이 많았다.


나는 왜 이런 미친 선택을 했을까?

처음 제주도에 도착한 후, 하늘에서 부여한 소명처럼 무료로 학교 선생님들과 가족들의 생활지원 및 통역을 도와주며 1년을 보냈다.

그들의 생활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지고, 나의 도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다문화가정의 여성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나 역시 외국에서 10년 동안 외국인으로 살다보니, 타국에서 다문화가정의 여성들의 입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선생님들과 학부모님들의 집을 청소해주는 필리핀여성이었다.

오고 가면서, 인사정도만 하고 지냈던 그녀가 웬일로 시간을 죽이고 있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그래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여기에 이렇게 한가롭게 앉아 있느냐고.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1시간이상 계속 되었다.

그녀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결혼이주여성이었다.

그녀의 모습에서 예전 아메리카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갔던 많은 언니, 누나들의 삶이 겹쳐 보였다.

우리들에게는 아메리카드림이고 그녀에게는 코리안 드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녀와의 만남 후 집에 돌아왔는데,

그녀의 말이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한국에 와서 한국남편을 만났고, 아기도 갖고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아기가 싫데요, 나는 낳을 수 있는데, 낳고 싶은데,” 그 소리를 하면서 그녀는 꾹꾹 눌러놓은 눈물을 내 앞에서 쏟아냈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의 대화 후,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사회복지라는 학문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 올라왔다. 다시 대학으로 가기에는 경영학을 공부한 내 생각으로는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고, 결국 평생 꿈조차 꾸지 않았던 대학원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나는 자신에게 질문하고 대답한다.

Q:“내가 만일 제주도에 오자마자, 일을 시작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면?”

A:“집 한 채는 제주도에 마련했겠지!”

Q:“내가 만일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A:“대학원공부는 하지 않았겠지!”

누가 그랬다.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타고난 팔자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반박하고 싶지만, 50대 중반 넘어, 백내장 20%진행과 심장판막증 경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보니, 갱년기 우울감과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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