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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을 아내로 둔 40대 남자의 일기

(남편 시점에서 쓴 워킹맘 아내의 일기입니다.)

워킹맘을 아내로 둔 40대 남자의 일기



● 날짜 : 2020.1.11(토)

● 날씨 : 미세먼지가 여전한 겨울날

● 제목 : 워킹맘을 아내로 둔 40대 남자의 일기




나는 지방 한 소도시에서 11살 딸, 6살 아들 그리고 맞벌이를 하는 아내와 살고 있는 40대 중반의 대한민국의 평범한 가장이다.


내 아내는 나와 결혼하면서 일가 친인척이 전혀~~ 없는 이 소도시로 왔다. 아내도 나도  연고가 아무도 없는 곳이다. 아내의 직장은 인사교류가 가능해서 결혼하면서 내 직장이 있는 도시로 아내도 직장을  옮겼다. 아내가 결혼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두지 않게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 일반 기업체에 다니는 나는 사실 정년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가 맞벌이를 하는 게 물질적, 심리적으로 큰 힘이 된다. 


그렇게 나는 아내와 나 둘 다 아무 연고도 없는 낯선 지방의 소도시에서 아내와 맞벌이를 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


첫째 딸 워니를 낳고 아내는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아내도 나도 아이 키우는 게 그렇게 고단한 일인지 몰랐다. 첫아이를 낳고 아내가 육아 휴직했을 때 난 당연히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육아 휴직한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첫아이를 낳았을 때 난 회사에서 막내를 겨우 벗어난 말단 직원이었으니 야근할 일도 많았고, 칼퇴할라치면 직장 상사 눈치도 많이 보였다. 그래서 아내 육아휴직 중엔 당연히 육아와 가사를 아내 몫이라 생각하고 내 회사 일에만 집중했다.            


1 Round. 


아내의 첫 육아휴직 후 복직.


그러다 아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간 후 아내와 나의 전쟁이 시작됐다.


아내는 아이를 낳은 후 육아에 전념할 때 힘들어하긴 했지만 나한테 난폭하진 않았다. 그런데 육아휴직을 끝내고 다시 직장에 돌아간 후 난 아내 얼굴에서 '헐크'를 봤다. 연애 시절 그렇게도 상냥하던 여자는 온데간데없고 퇴근 후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 시켜서 집에 오면서부터 이미 아내는 나에게 화가 나있는 얼굴이었다. 


아내의 복직 한 달 되던 날 어느 저녁 나는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저녁식사도 하고 야근하다가 퇴근했다. 9시쯤 들어오니 아내는 아이 저녁 먹인 후 저녁 먹은 그릇을 설거지 중이었고 아이는 설거지 중인 아내 다리 아래서 엄마 다리 사이에 붙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엄마 복직 후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퇴근 후 엄마에게서 딱 붙어서 육아휴직 중일 때보다 더 안 떨어졌다. 나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내는 그날 퇴근한 나를 보자마자 화를 내며, "애 씻겨!'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도 화가 났지만  "내가 워니 씻겨줄게."라고 짧게 응수했는데 갑자기 아내가 속사포로 공격했다. "워니 씻기고 재운 후 이야기 좀 해야겠어. 내가 복직하고 한 달 동안 느낀 건데 이제 나도 다시 회사를 다니니 당신이랑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은 똑같은데 당신 왜 내가 육아휴직 중일 때처럼 아침엔 당신 몸 만 쏙 빠져나가고 퇴근도 여전히 늦고 퇴근 후에도 어쩜 육아나 가사를 알아서 하는 게 없어? 육아와 가사가 내 몫이야? 당신은 내가 하라는 것만 하면 되는 거야?"


설거지를 마무리하면 줄줄줄 속사포로 공격해대는 아내의 잔소리에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고 퇴근한 나는 극심한 피로감이 밀려와서 버럭 화를 내며 "내가 애 씻겨준다고 했잖아!!!"라고 화를 내며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고... 아내는 나에게 "당신 말 다시 해. 인심 쓰듯 씻겨준다고 말하지 마!!!!! 애 씻기는 게 마치 내 일인데 당신이 도와준다는 것처럼 들려! 당신 똑똑히 알아야 해. 같이 맞벌이하면 버는 금액을 떠나서 똑같이 밖에 나가서 일하는 건데 그럼 퇴근 후 육아와 가사도 똑같이 하는 거지 내 일을 당신이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내 입을 통해서 당신에게 집안일이나 육아에 대해 뭐 하라는 말이 나오는 건 그게 부탁이라면 내 일인데 당신한테 도움 청하는 모양새라 내 기분이 좋을 리 없고, 그게 명령이라면 당신이 내 부하직원도 아닌데 명령받는 느낌이라 당신이 기분 좋을 리가 없으니 이렇든 저렇든 내 입을 통해서 나온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 건 서로 기분 안 좋아. 내가 설거지하고 있으면 당신이 애보고, 애가 잠들었는데 내가 빨래를 돌리면 당신은 애 어린이집 가방 챙기고.. 그렇게 내가 육아와 가사를 하는 동안 당신도 해야 해!!!!" 라며 아주 독이 바짝 오른 얼굴로 나에게 쏘아붙였다.


그날을 시작으로 우리는 한 6개월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육아 휴직 중 당연히 가사와 육아를 다 도맡아 하던 아내가 복직 후 그렇게 돌변할 줄 몰랐다.


물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서 적응하는 고단함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하루 종일 일하고 와서 지쳐있고 아이가 엄마만 찾는 상황에서 내가 육아를 도울 수 있는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집안일의 경우 아내가 설거지하라면 난 설거지를 했고, 빨래 널라면 빨래 널고... 부탁하는 일은 다 해주었다. 그런데 불 같이 화내는 아내를 보내 그나마 하던 집안 일도 하기 싫어졌다.


그래서 회사에서 야근하다 더 늦게 퇴근하는 날도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회사에 돌아간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아내가 아프기 시작했다. 아내가  기침을 오래 하는가 보다 했는데 병원에서 폐검사를 해보라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빈혈 수치도 아주 안 좋게 나왔다고 하는데 슬슬 겁이 났다.


체력도 약한 아내가 복직 후 많이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업무 시간에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고 일찍 퇴근해서 아이 어린이집 하원도 내가 시키고 저녁도 내가 챙기고, 아이도 내가 씻기며 내가 육아와 가사를 챙기며 퇴근한 아내를 좀 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얼마 후 폐 CT 검사를 해보니 다행히 아내는 큰 병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면역력이 떨어져서 단순 감기가 연이어서 걸린 거라고 했다. 안도감이 밀려왔고, 내가 육아와 가사를 도맡았던 열흘 남짓 사이 아내가 상당히 온유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내가 나와 결혼하면서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와서 아이를 낳고 키우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서 아등바등거리는 게 왠지 미안스러웠다.


체력도 약한 아내가 아등바등거리는데 나는 아이 키우는 거랑 살림하는걸 당연히 여자 몫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닌가 싶었다. 직장생활도 하는 아내에게 내가 너무 많은 짐을 지워졌다는 생각을 하니 아내의 얼굴 보기도 미안


결혼 - 지역 이동 - 출산 - 육아휴직 - 복직 - 적응 


이 일련의 과정을 아내가 겪으면서 얼마나 많은 희생을 했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육아와 가사에 대한 책임이 느껴졌다.


여보~! 내가 잘할게.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살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니 우리 가정엔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우린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들이 처음 겪는 진통을 이겨내고 잘 지냈다.


그러다 둘째가 생겼고

아내는 둘째를 출산할 때까지 무거운 몸을 이끌고 회사에 다녔다.


난 그때 다른 어느 때보다 퇴근 후 아내가 안정하며 푹 쉴 수 있도록 아내를 배려했다. 저녁 차리기와 설거지도 내가 했고 이제 말이 제법 통하는 첫째랑도 내가 시간을 보내며 아내를 쉬게 해 주었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났고,

아내는 둘째 출산 후 3년간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2 Round. 


아내의 두 번째 육아휴직 후 복직.


아내가 3년 육아휴직을 한 동안 난 해외 장기출장이 잦아서 집을 비울 때가 많았다.  그 사이 첫째 워니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둘째 쭈니는 세돌 될 때까지 아내 품 안에서 튼튼하게 잘 자라주었다. 그렇게 3년을 아내가 아이들을 품 안에 데리고 있으니 경제적으로는 조금 팍팍했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회사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다 아내의 복직 일자가 다가왔다.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미  아내가 첫째 출산 후 육아 휴직하고 복직했을 때 적응기를 겪으며 아내와 전쟁을 치렀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두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가사를 아내가 전담하다가 직장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 어느 정도 우리 가족 모두 진통이 있을 것이라는 게 예상됐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아내는 회사로 돌아간 후 더 예민해졌다. 그리고 사실, 나는 3년간 회사 업무에 집중했으니 아내가 직장으로 돌아간 후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잘 몰랐다. 3년이라는 시간은 육아와 가사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망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보다.


난 아내가 말하면 말하는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아내가 폭발했다.


6년 전 첫아이를 낳고 휴직하고 복직한 후 나에게 쏟아부었던 그 속사포 랩 공격이 또 시작됐다.


" 당신!   명심해. 우리가 다시 맞벌이 부부가 된 이상 육아와 가사에서 내가 주전이고 당신이 서포트이던 건 끝났어. 이제 우리 둘 다 맞벌이를 하나 육아와 가사에서 같이 주전 선수야!!!! 퇴근 후 육아와 가사도 똑같이 하는 거지 내 일을 당신이 도와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내 입을 통해서 당신에게 집안일이나 육아에 대해 뭐 하라는 말이 나오는 건 그게 부탁이라면 내 일인데 당신한테 도움 청하는 모양새라 내 기분이 좋을 리 없고, 그게 명령이라면 당신이 내 부하직원도 아닌데 명령받는 느낌이라 당신이 기분 좋을 리가 없으니 이렇든 저렇든 내 입을 통해서 나온 집안일과 육아를 하는 건 서로 기분 안 좋아. 내가 설거지하고 있으면 당신이 애보고, 애가 잠들었는데 내가 빨래를 돌리면 당신은 애 어린이집 가방 챙기고.. 그렇게 내가 육아와 가사를 하는 동안 당신도 해야 해!!!!" 


아내는 어쩜 6년 전과 톳 씨 하나 안 틀리는 레퍼토리를  똑같이 할 수가 있는 건지...(머리가 좋은 건가?  따로  연습이라도 하는 걸까?)


다만 똑같은 아내의 레퍼토리에 변한 것이 있다면 나의 응대다. 6년 전에는 나도 맞불을 놓으며 어깃장을 부렸다면 이번 복직 후에는 바로. 단박에. 아주 재빨리. 아내의 말에 수긍했다.


아내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이가 불혹을 넘어서 지천명에 가까워지니 빠른 승복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꽤 유익하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기 때문이다.(특히, 아내와의 관계에서는 승복의 속도에 나의 피로도가 반비례한다. 빨리 승복해야 피곤하지 않다.)


사랑하는 내 가족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나와 아내의 관계가 원만해야 하고


맞벌이를 하며 가정경제를 같이 짊어지고 있는 아내와 내가 육아와 가사도 같이 짊어져야 할 는 데는 반론에 여지가 없다.


그리고 회사 업무는 간혹 타인의 대체가 가능하지만, 아이들의 아빠는 나뿐이고 내가 만든 내 가정을 행복하게 이끌어가는 건 나의 삶 그 자체라는 거도 이 나이가 되니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결혼할 때 주례를 서주셨던 인생 선배님의 말씀이 이제야 아주 공감되기도 했다.

"아내랑 싸울 때는 지는 게 이기는 겁니다."라는 그때 그 말씀 백번 이해됩니다. 하하하.



여보!

당신이 날을 세우지 않아도

아무 연고 없는 타지에서 맞벌이하는 

우리 부부가 육아와 가사를 함께 해야 한다는 거 

이제 잘 아니까 가끔 내가 부족해도 날 세우지 말고 살살 말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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