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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하던 보노보노 Jan 06. 2024

새해 다짐도 작심삼일도 모두 칭찬받을 일

생활계획표를 짜 본 것이 언제였더라?

아마 중학생 때부터도 '방학 중 생활계획표' 같은 건 이미 만들지 않았던 것 같다. 초등학생 때에나 만들고, 반절은 실패하고, 혼도 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2024년 1월의 한국에서야 워낙 작년 한 해 mbti가 대유행한 이후라 (적어도 내 또래의 사람들에게만이라도) 'J가 아니라서 계획 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느니 하는 말이 약간의 변명거리는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생활계획표를 수립하고 그것에 잘 따르지 못 한다면 대번에 '착한 어린이' 반열에는 오를 수 없게 되었던 기억이다.


'휘뚜루마뚜루'라는 단어를 볼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은 다소 부정적이다. 어쩌면 내 자신이 종종 그런 평가를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받아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 고치고 싶은 내 특징 중 하나는 통제에 따르는 걸 힘들어한다는 점이다. 타인이 나를 통제하는 것도 그렇지만 스스로를 통제하려고 내가 직접 만든 장치에조차도 통제당하는 것을 좀처럼 못 견뎌한다. 하다 못해 성인 ADHD 검사를 받아 보면 어떨까 고민도 두어 해 전부터 가끔 해왔다. 약을 먹으면 나아진다던데, 하는 말을 듣고 그것에 의존해보고자 하는 나약한(?) 생각 때문에 말이다.

얼떨결에 이뤄내고 하다 보니 꽤 잘 되어 온 것도 좋지만, 계획한대로 착착 이루어지는 기분이란 또 얼마나 좋을까 싶어 때로는 그 미지의 세계가 궁금하고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며칠 전에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생활계획표를 난데없이 짜보았다. (이제 와 생각하니 이마저도 충동적이었다는 점이 웃기다.) 휴일은 제외하고 우선 출근을 하는 날을 기준으로 짰다. 그렇게 24시간을 토막내고 나니, 내가 가진 시간이 너무 적다고 느껴졌다.

필수적으로 씻고 먹고 자고 일해야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가진 시간이 너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위대한(?) 사람들이 잠을 줄이고, 음식 따위는 갈아서 마셔버리고, 옷은 같은 디자인을 여러 벌 사두어 맨날 정해진대로 입고 그러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활계획표를 노트 한 구석에 써 본 뒤, 며칠이 흘렀다.

아직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

이 정도면 실패한 계획이니 다시 짜기라도 해야 맞을 텐데, 얕은 절망감에 몸을 맡긴 채 그저 흘러가고 있다.


그래도 과거 어느 시점엔가의 나는 누군가들처럼 열심과 진심으로 새해 맞이 다짐을 하고, 작심삼일을 몇 번이고 다시 하고, 때로는 몇 주며 몇 달을 지키는 일들도 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어찌저찌 해내고 있으면서도, 땅에 발을 붙이지 못 한 채 허우적거리는 기분.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생존을 위한 영양소의 섭취에 지나지 않을 행위조차 나에게는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고, 함께 먹을 사람의 입맛과 먹성을 생각하고, 구비해야 할 식재료를 골라 사와서 다듬고, 조리방법과 순서에 주의를 기울여 만들고, 딱 적당한 그릇에 예쁘게 담아 따뜻할 때 호호 불어 먹고 식기를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행하는 데에만도 24시간 정도는 그냥 보내버릴 수 있는 인 걸.

심지어 내가 이런이런 사람이라는 점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다가 글로 적고, 그 글을 읽으며 수정하고 다시 또 읽는 데만도 또 12시간은 보낼 수 있는 사람인 걸.


새해가 밝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남부끄럽지 않은 '갓생 살기'는 힘들지 모르지만 이런 나를 나만은 너무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어 본다.

혹여 부끄러움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다면, 그러면 그때엔 조금은 달라지겠지.

그러기 전까지는 모냥 빠진 내 모습도 그냥 '나'라고 받아들여주기로 하자.


게으르고 실수투성이고 울적하고 의욕 없는 '나'야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살자! 웃자! 기록하고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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