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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하던 보노보노 Feb 03. 2024

2024년의 초입에서, 어쩌다 보니 생애 첫 데스크탑

기계치에게도 경험치는 쌓인다.

나의 첫 노트북은 약 10년 전, 아빠가 엄마의 핀잔을 무릅쓰고 사주셨던 LG 그램이었다.

IT제품에 워낙 무지한 편인 나에게도 당시 그램은 뭐랄까 센세이셔널한 신문물 느낌이었고, 학교를 다니며 사용하는 내내 아주 만족해 분신처럼 들고 다녔다. 워낙 사용량이 많아 그랬는지 5~6년쯤 사용했을 때에는 이미 작동이 어눌해지는 일이 잦아졌다. 그 즈음 처음으로 큰맘 먹고 첫 퇴직금으로 샀던 아이패드가 그런대로 그 자리를 대신해주기도 했고, 외국엘 나가 지내게 되며 본가에 두고 간 사이 부모님이 이사를 하시면서 책장 한켠에 놓아주신 뒤엔 줄곧 구석에서 먼지만 쌓이게 되었다.

하지만 태블릿은 아무리 블루투스 키보드며 마우스를 연결해 구색을 갖춘대도 어쨌거나 모바일 기반의 장치. 최근 한국어교원자격증 공부를 시작하면서 시험 응시를 위해 노트북이나 데스크탑이 반드시 필요해졌다. 그래서 2월의 둘째날, 따지고 보니 태어나 처음으로, 나만의 데스크탑을 설치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내내 아홉 살 많은 오빠와 함께 사느라 컴퓨터란 오빠의 물건인데 내가 종종 빌려 쓰는 느낌의 가전이었다. 애초에 관심이 없기도 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욱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오빠 물건을 잘못 건드렸다가 고장이라도 내는 날에는 퍽 곤란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막상 문제가 생긴 때에도 어쨌거나 오빠가 알아서 처리하곤 했기 때문이다.


전등을 교체한다거나 선풍기를 조립, 분해한다거나 이케아에서 산 가구를 조립하는 등의 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꽤나 구시대적이었던 가풍이 오빠에게는 소위 '남자가 하는 일', 나에게는 '여자가 하는 일'을 더 익숙하게끔 만들었다. (아홉 살이나 어리지만, 대학생 오빠에게 끼니 때에는 밥상을 차려주는 초등학생 동생 역할을 하는 등 말이다)


성인이 된 이후 이곳저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 여름이 다가오면 선풍기를 분해해 깨끗이 닦아 재조립한다거나, 다 된 전구를 갈아끼우는 등의 일들을 자연스레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 제주의 깡시골에서 혼자 살게 된 때에는 최소한 각종 테레비 케이블과 인터넷 연결, 조립식 가구를 위한 전동 드라이버 정도는 만질 수 있어야 삶의 질이 유지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후 두어차례 이사를 하면서 새 집에 구글 크롬캐스트를 연결하는 정도는 눈 감고도 할 수 있게 되었고 말이다.


어제의 컴퓨터 설치 또한 대견하게도 혼자서 잘 해냈다. 기존에 휴대폰이랑 태블릿과는 잘만 연결해 쓰던 블루투스 키보드를 새 컴퓨터에 인식시키지 못해 한 시간 동안이나 씩씩대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성공적이었다.

기계치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나에게도 경험치는 알게 모르게 쌓여 왔구나 싶어 뿌듯했다.


앞으로 혼자서도 잘 살기를 희망하는 나이기에 익숙해지면 좋을, 습득하면 편리할 스킬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학문적인 탐구도 좋고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것도 좋지만 일상을 잘 흘러가게 도우는 크고 작은 스킬을 습득하는 것 또한 등한시하지 말아야지, 새삼 다시 다짐하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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