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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하던 보노보노 Mar 16. 2024

즉흥성이 동력인 유형의 사람들

사장님과 나의 공통점

 지금 다니는 회사의 사장님과 나 사이에는, 어느 누구나 그렇겠지만,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먼저 차이점부터 들자면 일단 고용인이냐 피고용인이냐가 가장 기본적인 차이겠지만서도, 정말이지 노사관계를 떠나 인간적으로 대해주시는 분이다 보니 그런 것보다도 성격적인 차이를 떠올리게 된다.

 내가 보고 느낀 사장님은 나보다 훨씬 참을성이 많으시기도 하고 한마디로 경거망동 하지 않으신다. 반면에 나는 신이 나면 갑자기 푸다닥대며 내 이야기를 와르르 쏟아내기도 하고 충동적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 곧바로 실행해버리는 일도 꽤 잦다.

 그래서 곁에서 지내며 사장님의 (그야말로)어른스러우신 면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밖에도 차이점이야 많이 있겠지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분은 그 부분이다.


 그럼 공통점은 뭐냐하면, 역설적이게도 차이점으로 든 것과 같은 점이다.

 사장님과 나, 둘만 두고 비교를 하자면 분명 사장님께서 나보다 훨씬 더 진중한 분은 맞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한 데 두고 본다면 사장님과 나는 같은 유형의 사람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때때로 흥분해서 자기가 몰두해 있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른 이의 발언권을 빼앗고 싶을 정도로 업되어 있다. 이는 평소와 매우 다른 기세라서 주변 사람들을 약간 놀라게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오늘 낮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사장님께서 모처럼 신이 나서 눈코입을 다 땡그랗게 키워가며 이야기를 하셨다. 얘기인즉슨, 다소 충동적이지만 우리 숙소 근처에 밥집을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바로 이틀 전부터 번뜩 들었다는 말씀이었다.

 그런데 진짜 놀랍게도 나도 이삼일 전부터 '손님들께 팝업스토어처럼 한시적으로라도 식사를 대접하는 프로모션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라고 사장님께 제안을 드려볼까 생각을 하던 참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사장님이랑 함께 일하는 선배 언니랑, 셋이서 한참을 신이 나서 떠들었다. 한창 체크인으로 바쁜 시간대였기에 그래봤자 30분 정도였지만 사장님께서 이미 생각해두신 밥집의 자리와, 그밖의 러프한 계획, 그러니까 청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꽤나 들뜨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 청사진 속에서 내가 그럴싸한 일꾼을 제안하기도 하고 사장님께서도 언제나처럼 긍정적으로 호응해주시고 하면서 당장 내일이라도 개업식을 할 사람들마냥 흥분했다.


 고작 이틀 된 충동이니, 누군가에게는 망상에 가까운 헛소리라고 여길 수 있을만한 일임을 안다. 하지만 즉흥성이 동력이 되곤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어느 한 시절이, 때를 맞은 운명처럼 시작되기도 한다는 것을.


 마음 맞는 분들과 함께 미래지향적인 이야기를 나눠서일까, 퇴근을 하고서도 기운이 뻗쳐서 그대로 집에 가기가 싫었다. 차에 타서 노래를 크게 틀어두고 정처없이 직진을 거듭하다 이내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떠올랐다. 한참을 벼르다가 내일부터 시작하기로 한 야채스무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전자렌지용 찜기를 주문했었는데 그만 사이즈를 잘못 보고 주문해 너무 작은 용기가 막 배송된 상황이었다.

 물론 반품을 하고 새 상품을 주문해 택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게 일반적인 경우지만 이왕 오늘 컨디션이 이렇게 된 터, 그걸 사러 오프라인 매장을 찾아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긴 신호대기 중에 재빠르게 검색을 했고 예상대로 옆동네 부산 현백에는 해당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는 걸 확인했다. 매장에 전화를 걸어 영업시간과 재고파악까지 마치고 곧바로 핸들을 돌렸다.

 직접 운전해서 부산시내에 들어가는 일이 이제는 몇 번째인지 잘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꽤나 여러차례 있었는데, 그래도 늘 악명높은 곳이라 긴장이 됐다. 그럴수록 노래를 더 크게 틀고 이동식 노래방을 만끽했다.

 그렇게 왕복 3시간을 운전해서 만족스러운 드라이브 겸 쇼핑이 되었다. 심지어 마침 요며칠간 30% 할인기간이라고 해서 찜기는 원래 온라인에서 알아봤던 것보다도 훨씬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나는 유튜브뮤직을 구독하고 있다. 알고리즘이 아주 탁월해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만 쏙쏙 뽑아 랜덤 플레이리스트를 아주 야무지게 구성해주기 때문이다.

 평소처럼 유튜브뮤직 자동재생을 켜두고 운전을 해 오는 길에, 이소라 님의 <신청곡>이 나오는데 딱 맞춰서 난데없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어제 사촌자매님에게서 택배로 전달받은 액션캠을 켜자마자 벌어진 기막힌 동시성이었다. 게다가 노래가 끝나자 곧 거짓말처럼 비는 그쳐버렸다. 마지막 곡으로 친애하는 김동률 님의 <황금가면>을 연달아 두 번 듣구서는 주책맞게 눈물을 훔치며 귀가했다.

 그리고 지금은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시동까지 끈 후에 운전석에 그대로 앉아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집에 들어가서 쓰자면, 내 귀가만 오매불망 기다린 고양이를 외면하고 곧바로 휴대폰이나 컴퓨터만 한동안 붙잡고 있어야 하는 게 너무 미안해지기 때문이다.


 어제는 부모님이 모처럼 서울에서 내려오셨었다. 평소대로라면 당연히 내 작은 방에서 오손도손 셋이 자는 일정인데, 사장님께서 부모님 방문소식을 우연히 전해들으시고 흔쾌히 숙소 한 동을 내어주셨다. 덕분에 고급스러운 우리 숙소에서 부모님과 여유를 만끽했다. 1박을 주무시고는 다른 손님들처럼 조식을 드시고 퇴실시간에 맞추어 올라가셨으니 평소보다 그리 긴 방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 어느 때보다도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잘 지내시다 가신 느낌이다. 어쩌면 그 점도 오늘의 내 날아갈 듯한 컨디션에 한 부분을 차지했는지 모르겠다.

 사장님께서 베풀어주시는 것 이상으로 더욱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눈에도 보이는 귀한 관계이니, 오래도록 소중히 하고 싶다.


 글이 연결도 안 되고 너무 엉망진창이지만 우선 오늘의 일기는 요기까지!

 이제는 들어가서 우리 고양이를 마음껏 사랑해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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