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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에 겨울.

무엇을 사랑한다고 선언하는 일이 부끄러운 순간들.

by 유랑하던 보노보노

추위를 그 누구보다 잘 느끼는데, 추운 날씨를 어쩐지 좋아하는 나.

말인즉슨 날씨와 계절로 인해 행복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기에 긍정적인 부분이라고만 생각해온 때도 있었다.


그러나 견딜 수 없는 추위로 고통받거나 심지어 유명을 달리하는 이 세상 어딘가의 존재들을 떠올리게 될 때면, 쨍한 추위를(어느정도만 견디면 이내 다시 따뜻함을 누릴 수 있을 것을 전제로 하여) 즐거워하는 내 자신이 더없이 이기적이고 야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눈을 사랑해서 삿포로의 한겨울에 세 달간 머물기도 했던 나지만, 때이른 폭설에 어디선가 스러져갔을 생명들과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떠올리면 스스로가 못내 부끄러워진다.



세계 평화를 꿈꾼다면서, 투숙객분들이 요청할 시 제공해드릴 일회용품들을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두는 나.


동거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낼 것처럼 하면서, 새벽잠을 깨우는 애옹애옹 부름에 단숨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못하는 나.


건강을 위해 먹는 것부터 단정히 하겠다면서, 새로 나온 라면을 장바구니에 스윽 담는 나.



누군가를 싫어하는 감정은 곧잘 휘발되곤 하기에 남에게 쉬이 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마음에 새겨 왔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조금 더 조심해야 할 모양이다.


그러니 말 자체를 줄이자.

내겐 정말이지 불가능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노력해 보이겠다!

새해 다짐으로 찜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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