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나도 사실... 힘들었어
인생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합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어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SNS 보면 모든 사람들은 행복한 것 같고 나만 불행한 것 같다는 생각 해 보신 적 있으시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꽃길만 걷고 있는 것 같은 데 왜 나만 가시밭 길인 건지… 그럴 땐 주문을 겁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저의 별명은 캔디입니다. 언제부터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다 보니 그렇게 불리고 있었습니다. 고군분투하고 열심히 살다 보면 결국은 해피앤딩이겠지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행복을 좇기보다는 나의 일상에 있는 파랑새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2021년 봄, 본부장으로 승진하고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처음 의사 선생님께 결과를 들으며 놀라긴 했지만 그보다 남편과 아이들, 폐암 전이로 수술하신 아버지, 직장동료들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가 더 걱정이었습니다.
남편은 친정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유방암 진단 때도, 수술 일정을 잡을 때도 혼자였습니다. 나 때문에 괜한 걱정으로 하고 신경을 쓰는 게 싫었습니다. 2주 후에 수술을 하고, 한 달 후에 항암을 시작하고 그 해 12월 항암치료를 마칠 때쯤 되어서야 주변 사람들에게 암 소식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전혀 아픈지 몰랐다면서 놀라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힘든 내색을 안 하는 성향입니다. 힘들어도, 아파도 참고 불만이 있어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입니다. 내가 좀 참고 이해하면 모두가 편하다고 생각하니까요.
18년간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게 참 쉬워 보인다면서 "국장님 아이는 원래부터 워킹맘 아이로 세팅된 것 같아요." 이렇게 얘길 하더라고요. '힘든 내색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다 쉬워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겉으로 씩씩한 척하지만 장녀로 맏며느리고 본부장이라는 위치라서 혼자서 다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이고 책임감으로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묵묵히 했을 뿐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을 가지고요. 다행히 수술도 잘되고 항암도 잘 마치고 2년 동안 '암생존자' 타이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알면 되지
저는 일도 육아도 열심히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다 보니 팀장, 국장, 수석국장, 본부장 승진할 때 모두 최연소 승진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주위에서는 '아부로 승진한 게 아닌가? 왜 너만 운이 좋은 거야?'라는 얘기로 험담하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3대가 같이 사는 대가족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서 웃어른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에게 배려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자랐습니다. 항상 식당에 가면 수저를 먼저 놓아드렸고 식사를 마치면 물을 떠다 주는 게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상에서의 지연스러운 행동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하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아부로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서글픈 일이었습니다. 백조의 부단한 물밑의 발짓처럼 죽을 힘들 다 해 아이를 데리고 열심히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쉽게 운이 따르는 걸로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일화처럼 남이 알아주는 게 아니라 내가 알면 되니까요.일도 하고 육아도 하는 워킹맘의 힘듦을 누군가가 알아줄 수 있을까요? 어느 누구의 위로보다 내가 스스로 가치를 인정하고 알아주는 마음, 잘하고 있다고 격려하는 마음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튼튼한 뿌리를 가진 나무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잘 견딜 수 있듯이 스스로에게 단단한 '마음의 뿌리'를 내리면 더욱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단단한 뿌리는 없듯이 스스로 위로의 한 가닥, 격려의 한 가닥, 칭찬의 한 가닥씩 뿌리를 늘려나가고 긍정의 마음으로 단단하게 키워 나 갈 수 있습니다.
잘 표현하지 못하는 저의 성격상 ‘지치고 힘들다’라는 말을 가족에게 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저 나만 감내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봅니다. 큰 딸이 항암을 마치고 난 후 ‘엄마가 암이라고 했을 때 너무 놀라고 겁나서 혼자 울었다며 엄마가 더 힘들까 봐 차마 표현하지 못했어요’’라는 편지를 전해줬을 때 같이 끌어안고 펑펑 울기라도 할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나만 힘든 건 아니었구나’ 곁에서 그걸 지켜보는 가족이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가족과 함께 나누고 쉬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꼭 위기와 정면돌파해서 싸워 이기는 것만 정답이 아니라 잠시 비바람이 불 땐 멈춰 서있다가 다시 길을 나서도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