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께서 뇌종양 재발수술 후 퇴원하신날입니다
본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거동이 불평하신 아빠를 퇴원 후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오후 진료예약이라서 아빠를 집에 모시고 점심을 차려드린 후 유방암센터 진료가 있어서 별일은 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진료를 보았습니다.
담당교수님께서 조금은 뜸을 들이면서 말하셨습니다.
"초음파와 조직검사 결과상으로... 유방암으로 의심됩니다."
좀 놀라긴 했지만 담담히 물었습니다.
"아... 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술하시고 상황에 따라 항암치료를 하실 수 도 있습니다."
"아…네…"
머리에서 화면조정 시간처럼 삐...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 암...
눈물이 날 새도 없이 가족들한테 뭐라고 얘기해야 하지? 아이들이 많이 놀랄 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스쳐 지나갔습니다. 남편하고 같이 올 걸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일주일 전에 친정아버지께서 폐암진단을 받고 뇌로 전이되어 세 번째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오전에 퇴원수속을 하고 우리 집으로 모셔서 남편이 아버지를 간호해야 드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나는 오후진료라서 오전 일정을 마치고 병원에 부랴부랴 혼자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수술받고 퇴원하신 당일에 딸이 암 진단이라니... 어이없고 헛웃음이 났습니다.
그것도 잠시, 얼른 정신을 차리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술 상담을 받으러 '암 생존자지정센터'라는 곳에 데리고 가서 이것저것 서류작성을 하였습니다. 서류 작성을 마치고 수술 전 기초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해서 피검사, 엑스레이 검사등 각종 검사를 했습니다. 종합병원에서는 보통 검사시간이 한두 시간은 걸리는데 유방암 수술예정환자라고 암 환자 전담 코디네이터님과 함께 검사를 다녔는데 고속도로에서 엠블란스가 지나가듯이 모든 검사를 대기 없이 일 순위로 진행해 주셨습니다. 내가 암 환자라 우선검사를 해주네 하는 생각이 들며 어이없지만 이번에도 피식 웃음만 났습니다.
이틀 후 CT촬영 2곳, MRI촬영, 뼈검사를 마치고 검사결과가 나온 날 진료를 보았습니다. 그냥 간단히 수술하고 바로 다음 날 퇴원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습니다. 유선에 상피내암으로 범위가 좀 넓어서 오른쪽 가슴 전절제 수술과 재건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약간은 멍한 상태였지만 애써 태연히 상담을 받아 봅니다. 바로 수술일정을 잡고 유방암센터와 성형외과 협진으로 3일 후 수술을 하기로 합니다. 아빠도 폐암에서 뇌종양으로 전이되어 3번의 수술을 하신 상태라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히니 덤덤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괜찮다... 애써 의연한척하지만 문득 글썽이는 눈물은 속일 수없나 봅니다. 아프신 아빠와 놀랄 아이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고 남편과 상의하며 수술일정을 조율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번 기회에 나의 건강 체크도 하고 좀 쉬어가보자. 전절제수술로 여자로서 상실감이 클 테지만... 새로 만들어질 가슴의 기대로 묻어 보려 합니다.
"괜찮다... 괜찮다... 그냥 가슴확대 수술도 하는데 뭐..." 되뇌었습니다.
저는 고2. 중2딸을 키우는 17년 차 워킹맘입니다. 출산 이후 갖게 된 첫 직장에서 지금까지 집. 회사. 집… 이렇게 일하고 아이만 키우며 살았습니다. 워낙 경주마 같은 스타일에 슈퍼맘 콤플렉스처럼 아이도 잘 키우고 일도 잘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라 일도 육아도 한 눈 팔지 않고 참 열심히도 했습니다. 큰아이가 8개월 때 입사해서 둘째 출산휴가 40일을 제외하고는 하루도 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일이 끼익~ 하고 브레이크를 밝은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고로 쿵! 하고 멈춰 서서 자동차가 정비소에서 수리하듯이 얼마간 좀 쉬어 가라는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많이 지치고 힘들었으니 이번기회에 몸과 마음을 새롭게 정비하라는 의미로 생각하기로 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어떠한 역경이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긍정의 힘이 있습니다. 그동안에도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으니까요. 이번에도 암이란 녀석이 나에게 새로운 필모그래피를 만들어주었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 늘 그랬던 것처럼 결국은 내가 이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