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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정 May 24. 2023

다시 쓰는 수술일기

유방암 수술 D-DAY


수술 전날 오후에 미리 입원을 하였습니다. 보호자 상주로 남편은 병원에 같이 있어야 합니다. 일주일 간  딸 둘만 집에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분주했습니다. 일어나서 밥과 여러 밑반찬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다행히 대청소는 어제 한상태라 아이들이 일주일간 먹을 반찬을 준비했습니다. 큰딸이 좋아하는 연근으로 연근조림과 튀김을 하고 둘째가 좋아하는 진미채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병원에서 며칠간 간호하며 고생할 남편을 위해 파김치도 담가 놓았습니다. 퇴원하는 날이 되면 맛있게 익어 있겠지요?


엄마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나보다 둘이 있을 딸들이 더 걱정되는 마음입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수술을 하는지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둘째에게 엄마가 조금 아파서 병원에 일주일간 입원한다고 하니, 얼굴이 금세 어두워지면서 "엄마, 벌써 보고 싶어." 하는 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것저것 하느라 시간이 지체되어 입원시간이 늦을까 언른, 주섬주섬 집을 쌌습니다. 우선, 노트북, 읽을 책 몇 권, 멀티탭, 수건, 세면도구등 병원에 입원하는 건지 여행을 가는 건지 짐만 보면 애매모호하지만 엄마 때부터 다져진 프로 입원러 답게 빠진 것 없이 챙겨 담았습니다.

집안정리까지 마치고 출발하니 조금 늦어져서 병원에서 두 번이나 전화가 왔습니다.

"이현정 환자분 오늘 입원일정 맞으시지요?"  


"네, 가는 길입니다."

입원하는데 이리 여유로운 건 오래도록 아프셨던 엄마와 암수술을 세 번이나 하신 아빠를 모신 경험이겠지요? 병원 도착 후 응급실과 원무과를 드나들며 우여곡절 후에 입원실에 들어왔습니다. 환자복 환복 후 두 번의 외래진료를 보고 나서  내일 수술일정 확인과 수술동의서 작성을 하였습니다. 저녁은 간단히 햄버거로 때우고 12시부터 금식에 들어갔습니다. 오늘밤이 지나면... 정말 내가 아닌 나로 살게 될까 두려움 마음으로 잠을 청해보았습니다.


수술당일, 기다림... 두려움


기다림의 시간... 잠이 오지 않아서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종합병원의 새벽시간이란? 새벽 4시부터 시작되는... 하루가 참 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바쁘게 돌아가는 종합병원의 하루입니다. 새벽부터 잠을 설치고 초초함이 몰려왔습니다. 오전 9시... 10시... 시간이 다가올수록, 이 시간이 지나가 벼렸으면...


초조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향하였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니, 주삿바늘을 잘못 꼽았다며... 다시 링거바늘을 꽂습니다. 따끔합니다. 이 정도쯤이야, 하도 피를 많이 뽑아서 주삿바늘 정도는  아프지도 않습니다. 수술실이 너무 추웠습니다. 하늘색 부직포로 덮어주셨는데도 덜덜덜 떨렸습니다. 이게 추워서 인지 겁이 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시작인가 봅니다. 수술 전 담당교수님께서 조금 일찍 들어오셔서 제 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괜찮을 거예요."

  
하시는데... '손이 참 따뜻하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손을 잡아주시고, 어느샌가 잠이 들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립니다. 너무 춥습니다. 체온이 너무 내려가서 오들오들 떨고 있으니 햇팩을 덮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히터를 틀어주셨습니다. 따뜻한 바람이  몸을 감싸지만 그래도 춥습니다. 어느새 회복실이었습니다. 한참을 핫팩과 히터에 의지해 체온을 올리고 나서야 침대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추위에 많이 떨어서인지 체온이 올라가지 않고 지연되어서 6시간 후에나 병실로 올라왔습니다.


병실에 올라오고 나서야 정신이 혼미하면서 가슴이 끊어질 듯한 통증이 몰려옵니다. 마치 오른쪽 가슴을 칼로 베어 내는듯한 통증과 뜨거운 핏물이 흐르는 듯한 느낌 열감을 함께느낍니니다. 그렇게 큰 통증이 한 번씩 몰려올 때마다 모르핀계열의 무통주사를 한 번씩 눌러 통증을 잠재우며 하루를 보냅니다. 새벽에 누워있는 동안에는 큰 돌덩이를 가슴에 올려놓은 듯한 짓눌리는 통증으로 수술당일 밤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통증이 너무 크다 보니 가슴을 잃은 상실감 따위는 생각할 겨를 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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