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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그날을 추억하며

by 이현정

2021년 여름휴가는 내게 참 특별했다. 항암 치료를 시작하고 맞이한 여름...

첫 항암을 시작하고 3주가 지나면서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기 시작했다. 감당하기 힘든 그 변화를 피하기보다는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삭발을 하고, 가발을 맞추고 예쁜 모자를 골라 썼다. 집에서 가만히 쉬는 것보다, 가족과의 추억여행을 하기로 했다. 한 여름 찜통더위에 가발과 모자를 쓴 채였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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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바쁘더라도 매년 한 번은 꼭 여행을 떠난다. 늘 바쁜 일상 속에서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그 해는 특별히 댕댕이 해피와 보리도 함께 제주로 향했다. 둘은 단순한 반려견이 아니라, 우리 가족 그 자체였다.


우리는 완도에서 반려견 전용 펫존이 있는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했다. 배에 오르는 순간부터 보리는 긴장한 모습이었다. 덩치는 제일 크지만 마음은 유난히 여린 보리는 갑판에 서자마자 아빠 다리에 찰싹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모습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고, 그 순간에도 나는 느꼈다.


이런 게 행복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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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와 보리는 처음 보는 풍경에도 금세 적응했고, 낯선 공간에서도 늘 가족 곁을 맴돌며 따뜻한 에너지를 나눠줬다. 두 아이는 어디를 가든 우리의 중심에 있었다. 숙소도 식당도 모두 애견동반 가능한 곳으로 미리 예약해 두어 여행 내내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걷고, 함께 누워 쉬고, 함께 웃으며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다시 느꼈다. 항상 옆에 있는 그 존재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위로받았다. 제주의 바람은 여전히 부드럽고, 바다는 넉넉히 품을 내어주었다. 바닷가에 서서 나는 조용히 되뇌었다.

‘잘 이겨내 보자... 지금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순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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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디션이 난조일 때는 조금은 힘들었지만, 너무도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무엇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가족과 해피, 보리까지 모두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온몸으로 느낀 시간이었다.


나의 삶 그 중심엔 언제나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그날의 제주를 기억하며, 나는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다짐한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웃고, 함께 걸으며, 함께 살아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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