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가면

나의 내면을 모습을 찾아서

by 이현정

저는 어린 시절에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MBTI에서 극 I에 해당했습니다. 친정은 수원 서쪽 끝에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시골이라 버스에서 내려 30분 정도를 더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택시라도 타고 들어가려면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택시 기사님들은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였습니다.

비포장도로가 시작될 무렵에 “더 들어나가요? 하고 기사님께서 물으면 집 앞까지 가달라고 말하지 못해서 중간에 내려 걸어가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돈을 내고 타는 택시에서 조차 자기 의견 하나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좀 무서워했습니다. 어머니는 매우 엄했고 여장부처럼 호탕한 성격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척척해내고 손도 커서 음식을 많이 해서 나눠 주느라 늘 집에 손님이 북적북적했습니다. 호탕한 어머니의 소심한 딸, 엄마는 뭘 물어보면 저는 늘 땅바닥을 보며 우물쭈물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20살이 될 때까지 말대꾸는 한번 못하고 “네.”라는 말밖에 한 기억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때 “나 오늘 엄마랑 싸웠잖아.” 하고 얘기하는 친구들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소심한 제가 유일하게 처음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미술 공부였습니다. 어머니는 평소에 징징대거나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나도 표현하지 못했던 딸이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며 학원을 보내 달라고 하니 의아해하셨습니다. 어렸을 때 그림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회화를 잘한다기보다 손으로 만드는 걸 잘해서 디자인이나 공예 쪽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워하시고 돈도 많이 들고 힘든데 갑자기 웬 미술 공부냐고 하시면서 반대를 하셨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몇 달 동안 제가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미술 학원에 보내달라고 우겼더니 다행히도 부모님께서도 손을 드시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처음으로 제 뜻을 강하게 주장하고 허락을 받았습니다. 너무 기쁜 마음과 성취감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미술 학원을 다니면서 그림도, 공부도 열심히 해서 미술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굳게 마음먹고 용기를 내었습니다. 이렇게 용기 내어 자신의 마음 표현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소심한 성격에 용기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감춰왔던 속마음을 조금씩 꺼내며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늘 마음에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이 컸던 저에게 여유로움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감정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것이 자신감인 건가?’라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어느덧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가 제 소심한 성격을 닮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속마음 하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부터 자신감을 갖자! 나처럼 소심한 아이가 아니라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얘기하고 표현할 줄 아는 자신감 있는 아이로 키우자!”

사람의 내면에는 페르소나가 존재합니다. 누구나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데 그것을 가면을 쓴 인격인 ‘페르소나’ 또는 ‘콘셉트’라고도 합니다. 늘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저는 아이를 낳고 새로운 페르소나인 ‘엄마의 가면’을 써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엄마가 되고 나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아이를 방패 삼아 눈 딱 감고 ‘밝고 활발한 사람인 척해보자.’라고 결심했습니다.


우선 일하는 자신감 있는 엄마가 되고 싶어서 북 세일즈에 도전하였습니다. 제 성격을 잘하는 주위 분들은 “네가 어떻게 책을 팔아?”라며 안 믿었습니다. 얼마나 버티겠냐며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의 가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점점 자신감 있는 세일즈 우먼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일상 속에서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평소에 아이와 함께 다닐 때는 다른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무조건 먼저 인사를 했더니 딸도 따라서 우리 동네에서 인사를 잘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께서도 인사를 잘한다고 늘 예뻐하셨습니다. 유치원에 부모 참여 수업에 가면 먼저 손들어서 발표를 하였더니 우리 딸이 유치원에서 제일 발표를 잘하는 아이로 컸습니다.


저의 내면에서는 매우 힘든 싸움이었지만 자꾸 그렇게 행동하다 보니 딸은 물론이고 정말 저조차 그렇게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누가 뭐래도 외향적으로 보입니다. 딸에게 “너는 누구 닮아서 이렇게 오지랖이 넓어?”라고 물으면 “누굴 닮았겠어. 친구들이 엄마하고 똑 닮았다고 하던데.”라고 웃습니다. 이 정도면 성공한 것이겠지요?


저는 소심한 성향을 밝은 외향적 성향처럼 보이고 싶어서 엄마의 가면을 썼습니다. 엄마가 되면서 찾은 ‘자신감 있는 엄마의 페르소나’로 밝고 오지랖 넓은 나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지금 필요한 가면이 있나요? 그 가면은 전혀 새로운 가면이 아닙니다. 나를 힘들게 할 가면이어도 안 됩니다. 지금 나에게 필요란 용기의 가면이어야 합니다. 한번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누구라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모습에 아쉬워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이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 내 안의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 가요?’ 내 안에 있는 작은 나를 찾아보세요.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내면의 작은 씨앗을 찾아서 아이와 함께 키운다면 어떠한 힘든 상황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 모습이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바로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