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의 10명 중 5명은 산후우울감을 겪습니다
출산 후 친정에서 한 달간 몸조리하고 신혼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친정은 부모님과 친정 오빠네 가족까지 삼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입니다. 몸조리를 하는 한 달 내내 북적이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하고 아기와 세 식구만 달랑 집에 있으려니 너무 조용하고 적막하기까지 했습니다.
남편은 게임회사에서 다녀서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서는 잠만 잤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12시가 다 되어야 퀭한 눈으로 힘들다고 엄살을 부리며 퇴근했습니다. 친정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끌벅적하게 지내다가 남편이 출근한 텅 빈 집에 아가와 단둘이 있으니 너무 고요한 정적에 가끔은 환청이 들리기도 해서 늘 음악을 틀어놓곤 했습니다.
혼자 있는 게 너무 힘이 들 때면 남편에게 문자를 합니다.
-언제 퇴근해?
-늦어?
-저녁은 먹고 와?
늘 이런 대화였습니다.
하루 내내 먹고 자고 먹고 자는 아기와 종일 남편만 기다렸습니다. 아기 때문에 외출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어느 날은 24시간이 숨이 막혔습니다. 아기가 곤히 잠들어있는 모습을 보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프지만, 철창 없는 감옥에 갇힌 것처럼 혼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나를 보면 갑자기 눈물이 울컥했습니다. 이게 바로 ‘산후우울증’이라는 걸까요?
아이를 낳는 것은 부모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산모에게는 출산의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이 산후우울증(Postpartum depression)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산모의 50.3%가 산후우울감(Postpartum Blues)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그중 산후우울증 위험군은 33.9%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스로 괜찮을 거라고 다짐을 해봐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때는 아기 몰래 눈물을 훔치고는 하였습니다. 집안에 콕 박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남편 퇴근 시간만 바라보고 있는 저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남편에게 일주일에 두 번은 저녁 식사를 같이하자는 뜻으로 저녁 식사 쿠폰도 줘봤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고 쿠폰은 오히려 싸움만 더 일으키는 애물단지가 되었습니다. 그때는 ‘독박육아’라는 말도 없던 때라 혼자 집에서 아기를 보는 게 엄마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기분이 좀 더 다운되었습니다. 늘 혼자 먹는 삼시 세끼인데 비 오는 저녁은 더욱 처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혼자 먹는 밥이 넘어가지 않아서 음악을 틀어놓고 펑펑 울었습니다. 이유 없이 울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났습니다.
아이를 생각하면 그런 마음을 가진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소중한 새 생명 앞에서 우울한 마음이 드는 게 미안했지만, 당시는 내가 너무 처량하고 서러웠습니다. 자상한 남편의 아내이고 예쁜 딸의 엄마라는 생각보다 텅 빈 집에 혼자서 있는 조그마한 내 마음이 비와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비 오는 날의 우울함과 그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처량함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흐린 날에는 남편에게 일찍 퇴근해서 같이 있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신혼 초기에는 여행도 많이 가고 실컷 즐기다가 아이는 천천히 갖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편찮으신 시할머니께 얼른 증손주를 안겨드리고 싶어서 2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첫째를 낳았습니다. 아직 엄마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엄마 노릇을 하려다 보니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강하다’라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세상 모든 엄마가 강하다기보다는 강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비롯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면 강해질 수밖에는 없습니다. 엄마도 마찬가지로 강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기보다 약하면 약한 대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외부요인에 떠밀리지 않고 나에게 맞는 엄마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저의 산후우울감을 극복하는 나름의 방법이 음악과 책이었습니다. 낮에는 늘 음악을 틀어놓고 음악의 선율에 나의 마음을 기울여 놓았습니다. 아기가 놀 때는 동요, 잠들 때는 클래식, 나 혼자만의 시간에는 가요를 들으며 흥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육아서나 나의 마음을 단단하게 다져줄 자기 계발서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책 한 권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화성인들은 혼자 동굴 안으로 들어가 해결책을 찾고 나서야 기분이 좋아진다.”
“금성인들은 누군가가 자기 문제를 솔직히 터놓고 이야기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_존그레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동녘라이프, 2021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늘 바쁘고 종일 아이와 둘만 있다 보니 내 얘기를 할 상대가 없었습니다. 혼자 있다 보니 나만 힘들고 내가 피해자라는 생각에 확신이 더해졌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슬픔은 나 혼자만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의 얘기에 귀 기울여 줄 누군가가 필요했지만, 남편은 늘 야근이었습니다.
남편에게 이런 마음을 얘기하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남편도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도와주려고 노력했습니다. 퇴근하고 나도 육퇴(육아 퇴근) 후에 둘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자주 갖게 되었습니다. 대화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한 발짝씩 다가갔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저는 퇴근 후 남편이 동굴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게 되었습니다. 물론 동굴에서 나오면 적극적으로 육아 동참을 시켰습니다. 서로의 마음과 입장을 내 기준이 아닌 상대방의 기분에서 이해해 주는 방법을 조금은 배웠습니다. 먼저 읽고 추천해 준 남편이 ‘나를 이해해 달라.’가 아닌 ‘나도 너를 이해해.’라는 언어로 들렸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서로의 언어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방에 있으면 이렇게 물었습니다.
“동굴이야?”
"응"
하면 나올 때까지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었습니다.
"아니"
라고 하면 웃으면 방으로 들어가서 나의 용건을 얘기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싸울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우울했던 이유는 몸도 마음도 나 혼자만 변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결혼은 함께 했는데 남편은 예전과 같은 삶을 사는 것처럼 느끼고 나의 일상만 변한 것 같으니 그게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하다 보니 남편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남편은 늦게 왔다고 짜증 내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도 일찍 퇴근하고 싶어! 나는 뭐 야근하고 싶어서 늦게 오는 줄 알아?”
세 식구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무게감 때문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편과의 화성과 금성의 언어로 힘든 상황을 조금을 빨리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긴장과 원망과 불화가 생겨납니다. 아기를 낳고 변한 일상이 누구나 힘든 과정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우울감을 많이 겪기도 합니다. 이럴 때 이런 감정을 누군가 하고 나누는 것만으로 조금은 해소되기도 합니다.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가족들과 함께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내편이 있다는 마음만으로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울한 마음을 가족들과 함께 이야기를 통해 해소하면서 도움을 청하는 시간을 갖는 건 어떨까요?
혹시, 가족과 대화하기 힘든 환경이라면 저처럼 글을 쓰면서 나의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공감을 주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나에게 울림을 줍니다. 누군가의 관심으로 나만 힘들다고 생각되었던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