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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22. 2020

오래전 친구가 생각날 때

 갑자기 보고 싶은 얼굴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친했던 단짝 친구라든가 늘 나를 아껴주던 선배, 인생 진로를 놓고 방황할 때 격려해 주셨던 은사님도요. 물론 사랑했다가 헤어진 연인도 생각날 때가 있죠. 자주 만나는 사이라면 전화해서 차 한잔하자고 해도 부담이 없을 텐데, 오랫동안 연락 한번 하지 않았다면 불쑥 전화하기가 망설여집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출근길 아침. 천천히 걷는 학생들 사이로 교복 치마에 체육복을 입고 짧은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막 뛰어가는 학생 한 명을 봤어요. 무슨 일이 있길래 저리 허겁지겁 뛰어가나 싶었는데 한참 앞에 가던 누군가의 가방을 탁 치더라고요. 그러고는 장난부터 칩니다. 손가락으로 몸을 찌르고 서로 손잡고 몸을 비틀며 깔깔 웃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웃는 얼굴이 참 예뻐 보였습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싶어요. 내가 쟤들만 할 때 뭐 했나 떠올려 봤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무거운 책가방에 도시락 2개를 싸 들고 학교를 갑니다. 오전 오후는 수업의 연속, 저녁 시간에는 자율학습. 하루 종일 앉아 있다가 어둑어둑한 늦은 밤이 되어서야 별을 보며 집으로 돌아왔었죠. 추억할 만한 게 뭐가 있었을까요?



 

  한 반에 60-70명은 기본이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많았던 아이들 중에 지금은 한두 명 기억날까 말까 하지만 그때는 다 같이 교실을 뛰어다니고 장난도 심하게 쳤을 거예요. 좁은 운동장에 수십 명이 몰려나와 공 하나 가지고 놀았죠. 교실 한 칸에 인간 말이 되거나 말뚝이 된 친구 등에 올라타 몸을 마구 흔들어 쓰러뜨렸죠.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이야기도 쉼 없이 했던 것 같아요.


여학생들이 신나게 노는 곳에 몰래 다가가 고무줄 끊고 도망쳤어요. 그러다 덩치 큰 여학생한테 잘못 걸려 얻어맞는 남학생도 있었고요. 숙제를 안 해서 매 맞고, 단체로 벌받았던 일도 빼놓을 수 없죠.

비좁은 교실 안에서 선생님이 태우는 담배연기, 칠판을 닦고 터는 분필가루, 뛰어놀다 생긴 먼지를 들이마셨지만 아직까지 건강하게 살아있어요.


 급식이라는 단어는 없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도시락을 까먹다가 선생님한테 들켜 야단맞기도 했죠. 수업 시간에는 멍 때리던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는 에너자이저가 되어 4층 교실에서 1층 매점까지 쏜살같이 다녀와요. 야자 시간에 몰래 라디오를 듣고 연습장에 공부 대신 낙서로 채우곤 했죠. 도시락을 먹어도 짝꿍을 찾았고, 자취하는 친구 방에서 과자 하나 사놓고 나름 진지한 인생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학년이 올라가 다른 교실로 갈 때, 다른 학교로 배정되어 헤어질 때 우리의 우정만큼은 변치 말자고 다짐을 했어요. 며칠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학교에서 여전히 장난치며 생활합니다.

손을 맞잡고 언제든 만나자고, 너나 먼저 할 것 없이 부르면 달려오자고 약속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추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불현듯 옛 생각이 납니다. 그 친구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선배는 아직도 그 일을 하고 있을까? 퇴직한 은사님은 어찌 지내실까? 못 본 지 오래 지났지만 어떤 날엔 아직도 그 존재가 여전히 내 곁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집니다.

"보고 싶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어색해서 전화기만 만지작거립니다. 사실은 그럴 때일수록 표현을 꼭 하는 것이 좋은 걸 알면서도 망설이기만 합니다. 저절로 우러난 마음을 치장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줘도 순수한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말입니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연락처는커녕 살아있는지 생사조차 모르는 경우가 더 많아 쓴웃음이 납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면 연락처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마저도 주저합니다.

 남는 건 사람뿐이고 인맥관리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런 나는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걸까요?

 망설이는 나는 무심한 걸까요? 수많았던 인연과 지금껏 연락 한번 하지 않은 나는 인정머리도 없나 싶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혹은 사업을 합니다.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키워요. 다들 먹고살기 바쁘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세상은 빠르게, 바쁘게 돌아가잖아요. 오늘도 저마다의 인생을 열심히 살아갑니다. 나와 함께 사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일을 하는 동료가 있고요.

오랜 친구를 잊고 살았다는 건 현재의 사람들과 충실하게 살았다는 반증이기도 해요.


 철부지 꼬마 시절 손가락 걸고 맹세했던 짝꿍, 학창 시절 진지하게 인생을 논했던 친구들은 기억에만 남았습니다. 가슴 뜨겁게 나누었던 우정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그보다 더한 애정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숱하게 스친 인연들이 가볍지 않겠지만 지금 내 옆에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소중하니까요.

 그러니 무관심하다고, 인정머리 없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며 나의 삶을 만들어가느라 조금씩 멀어진 건 그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빠서 잊고 살기도 하지만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할 거예요.

옛 친구가 아련한 추억으로 새겨지는 동안 새로운 관계가 그만큼 채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친구끼리 깔깔 웃는 모습을 보니 인생에서 가장 순수했던 그 시절의 친구들이 떠오릅니다.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한눈에 딱 알아보는 친구,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단번에 알아채는 친구.

간혹 너무 반가워 등 뒤를 딱 치고 어깨를 돌려 얼굴을 본 순간 이런... 내 친구가 아니네요. 그 어색함과 무안함. 그마저도 그리워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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