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의 기술 Oct 19. 2020

기분이 늘 좋다면?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


 서로 기분 좋으라는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기분 좋고 즐거운 날만 보낸다면? 좋죠. 누구나 그러고 싶은데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만나면 "좋은 아침!" 인사로 시작합니다. 기분 좋은 인사는 마치 오늘 고난의 행군을 잘 버티라는 위로같이 들립니다.

학교에서는 언제나 그랬듯이 꾸벅 졸다가 야단을 듣고 성적이 따라주지 않아 실망스러울 때가 많아요. 대학 정문을 들어가고 나면 다음은 더 좁은 취업 문이 턱 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배움은 끝이 없다지만 공부, 늘 어렵기만 합니다.

직장에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실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진상 고객에게 시달리는 날이면 파김치가 되고요. 회사의 밥줄을 쥐고 흔드는 거래처 직원에게는 자존심은 꾹꾹 누르고 아부도 불사합니다.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를 불러요. 근데 별로 즐겁지가 않아요. 코로나인지 뭔지 때문에 어딜 나가지도 못하고 삼시 세끼를 뭘 먹일지 고민은 지겹습니다. 배달 음식도 질리고요. 그래도 고생하는 가족을 위해 든든하게 먹여야지 하다가도 아이 성적, 남편 월급만 보면 화딱지가 납니다.


사람은 기대를 갖고 살아갑니다. 계획한 대로 척척 들어맞았으면 좋겠고, 원하는 대로 문제없이 헤쳐나가면 좋으련만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시나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할 때가 더 많은 게 세상살이죠.

계획대로 되는 일도 없고 술술 풀리는 문제도 드물고 하니 말이나 따나 기분 좋게 살자는 덕담을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빈둥거립니다. 밖에 나가 '산책이라도 해야지'라고 하지만 몸이 따라주질 않아요. 소파에 비딱하게 누워 TV를 켭니다. TV는 소리로 듣고 눈은 스마트폰에서 떼지를 못합니다. 따분할 때는 기삿거리를 검색합니다. 다양한 분야에 수많은 뉴스와 기사가 실시간으로 올라옵니다.

'뭐 재미있는 거 없나?' '스트레스를 확 풀어주는 소식은 없나?' 하며 찾다가 눈에 띄는 제목이 있어요. '언제나 기분 좋게 사는 법' '행복을 늘 유지하는 방법' 같은 것들요.

제목은 거창한데 '뭐 특별할 게 있겠어'하는 마음으로 클릭을 합니다. '건강해라', '많이 웃어라', '운동해라', '감사해라',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라'. 구구절절 옳은 말인데 워낙 흔하게 들어왔었던 터라 썩 와 닿지가 않아요. 근데 기사 내용 밑에 달린 댓글을 보고 빵 터졌습니다.

'언제나 기분 좋은 건, 병 아닌가요?' 촌철살인 같은 댓글이었습니다.

언제나 기분이 좋으면, 그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까요?

늘 행복하다면, 행복이 뭔지를 알까요?


심한 감기에 걸려 며칠 동안 고생을 해요. 눈물 콧물이 앞을 가리고, 삼킬 때마다 목이 타들어갑니다. 머리는 터질 듯이 아프고 만사가 귀찮습니다. 끙끙 앓아 드러눕기라도 하면 그제야 깨닫죠. 평소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요.


알콩달콩 사랑을 합니다. 눈에 콩깍지가 쓰여 돌아서면 보고 싶고 일을 하다가도 얼굴이 떠올라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집중도 안 되고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길어야 3년 남짓이라고 하잖아요. 유효기간이 없다면 뭔가에 홀려 있는 상태가 지속될 테니 뭔가에 늘 취한 것처럼 보일 거예요. 이러면 평범한 일상생활이 가능할까요?  


누구나 아픈 건 싫어합니다. 아프고 싶지 않잖아요. 불에 데면 따갑고, 가시에 찔리면 아프고, 무리했다 싶으면 근육이 쑤시고 온몸이 뻐근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통증을 못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요? 불에 데도 따갑지가 않아요. 못에 찔려도 심지어 칼에 베여도 간지럽지도 않아요. 독한 감기가 걸려도 끄떡없습니다.

결과는요? 오래 살지 못할 거예요. 못에 찔러도 아프지 않아 치료받지 않을 테니 파상풍이나 과다출혈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독한 감기가 심한 폐렴이 될 때까지 고통을 모르니 나중에 손도 못 쓸 정도로 심각해질 수도 있고요. 아프니까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고 쾌유하는 거죠.

 

사랑이 뜨겁기만 하면 무조건 좋을까요? 싸우고 다투다가 화해하고 지지고 볶다 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들며 서로를 맞춰가는 게 사랑이죠. 일방적이면 그게 사랑일까요? 함께 해준 사람이 밉다가도 고마움을 느끼고 아웅다웅하면서도 같은 길을 끝까지 갑니다. 헤어지고 나면 그리움도 알게 되고요. 세월이 지나면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요.

슬프면 싫으니깐, 좌절하면 괴로우니깐, 실망하면 힘드니깐, 아프면 아프니깐 늘 기분 좋은 일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는 거겠죠.  




골이 깊어야 산이 높은 법이라고 했습니다.

쓴맛, 신맛, 짠맛을 맛봤기에 단맛의 달콤함을 잊을 수 없고요.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을 겪어봤기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쁨도 아는 거죠.

수백, 수천 번도 칼로 물을 베어가며 동고동락을 했기에 인생 끝날 때까지 함께 하는 동반자가 됩니다.

언제나 즐거운 삶을 꿈꾸지만 현실은 따라주지 않으니 기분 좋은 인사라도 나누는 것 같아요.


언제나 기분이 좋다면.. 맞아요. 병일 겁니다. 늘 좋을 수만은 없죠.

언제나 기분이 좋다면 부러워할 게 아니라 치료가 필요할지 몰라요.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기분이 늘 좋게 살고 싶다는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꿀꿀하게 살아가자는 말은 아니고요.

저마다의 사연이 구구절절하여 인생길은 꾸불꾸불하다고 합니다. 살면서 쓴맛도 보고 좌절을 겪으면서 성장해가는 거겠죠. 우울한 날도 있기 마련이고요. 그런 날도 다 지나갑니다.

 인생은 기쁨도 슬픔도 모두 삼키고 가는 기나긴 여정이라고 한 광고 카피를 떠올려봅니다.  


기분이 늘 좋은 것도 병이라…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되지 않나요?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