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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17. 2020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어느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


 스무 살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와 20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이 혼례를 올립니다.

 처녀와 총각은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가난은 당연한 운명이었고 해방의 기쁨도 잠시 참혹한 전쟁을 겪었습니다. 피난짐을 싸고 보따리를 짊어진 채 피난을 다녔습니다. 먹을 게 없어 굶주림에 시달렸습니다. 해마다 보릿고개를 넘기며 겨우겨우 연명하다시피 살았습니다.

 나이가 들자 부모님이 정해주는 대로 베필을 맞이합니다. 혼인하라는 어른 말씀을 거역할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가 전부입니다. 시작은 빈 손, 죽어라 일만 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아끼고 또 아꼈습니다. 부유하지 못했지만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고 다섯 자녀를 낳고 키웠습니다.

 고구마 몇 개 생기면 이웃과 나눠 먹는 정으로 살았고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이 인생의 낙이었습니다. 혁명이란 혁명은 죄다 겪었고 새마을 운동을 하며 잘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진저리가 나는 배고픈 서러움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일만 했습니다. 노후라는 말은 있지도 않은 단어였습니다. 세월이 어떻게 흘렸는지도 모른 채 일과 자식을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다 자라고 하나 둘 독립을 했습니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아들, 딸들은 모두 시집, 장가보냈고 손자, 손녀를 맞이했습니다. 남은 거라고는 주름만 깊게 파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뿐입니다. 

둘만 남은 노부부도 이제 작별을 준비합니다.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세월이 언제 지났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집니다.  

 시집을 왔습니다. 부모가 정해준 남자라 운명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고된 시집살이는 며느리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은 먹고살기도 벅차 시집살이가 고된지도 몰랐습니다. 낮에는 논두렁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밀린 집안일을 했습니다. 때가 되면 제사를 올렸고 차례를 지냈습니다. 시끌벅적 다섯 아이들이 떠들고 싸우는 소리에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침 별 보고 나가서 어둑어둑 저녁별을 보며 들어오는 남편 하나만 믿고 살았습니다. 벌어오는 돈 가지고 악착같이 아껴가며 한 푼 두 푼 모았습니다. 시부모가 야단쳐도 남편이 야속해도 올망졸망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며 웃었습니다. 남편한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은 적 없지만 튼튼하게 자라는 아이의 웃음 하나면 그걸로 충분했습니다.

 평생을 같이 산 남편을 바라봅니다. 생전에 따뜻한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습니다. 뭔 놈의 자존심이 그리 중요한지 얼굴은 영감인데 아직 철이 들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흰머리가 나더니 그마저 다 빠지고 머리카락은 몇 올 없는 황량함만 남았습니다. 고래고래 고함지르던 객기도 어디로 갔는지 축 처진 어깨가 안쓰러워 보입니다. 

 '저 영감은 내가 없었다면 제대로 살았을까', '내가 없으면 밥은 먹을 수 있을까' 두고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앳된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짓던 아낙네는 하얀 백발에 쭈글쭈글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벌이가 시원찮아도 군소리 없이 다섯 새끼 키우면서 고생만 했습니다. 남부럽지 않은 호강은 고사하고 제대로 잘해주지도 못했습니다. ‘수고한다’, ‘고맙다’ 말 한마디 해준 적이 없었습니다. 왜 그 말은 입안에서만 맴도는지 모르겠습니다. 호리호리한 아가씨는 아이 다섯을 낳고 기르며 뱃살 접힌 아줌마로 변했습니다. 접힌 뱃살만큼 잔소리도 늘어났습니다. 뱃살 접힌 아줌마가 주름 패인 할머니로 늙어가며 바가지를 마구 긁어댑니다. 그러다 말 것을 알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듣습니다. 애들 다 보내 놓고 손자 손녀 보며 이제 좀 편하게 사냐 싶었습니다.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늘이 무심하신지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뭐가 급하다고 불치병을 주었습니다. 아프다고 해도 평생을 아파하며 살아와서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만은 이상했습니다. 잘 먹지 못하고 계속 아파서 병원을 가보니 손쓰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합니다. 백 살은 거뜬히 살 수 있다고 큰소리치는 최신 의학으로도 치료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급한 대로 수술을 받습니다. 항암치료가 기다립니다. 처음엔 설마 했는데 조금씩 살이 빠지고 갈수록 통증을 호소합니다. 아프다고 밤낮으로 악을 씁니다. 수술받은 뒤 이 병원 저 병원 옮겨가며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파하는 할망구를 보니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습니다. 

 '차라리 내가 먼저 가야 되는데.'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할머니가 병원 생활을 한 지 2년이 다 되어갑니다. 할아버지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할머니 곁을 지킵니다. 최근 들어 할머니의 상태가 눈에 띄게 약해집니다. 두 겹 세 겹 접혔던 뱃살은 온데간데없습니다. 팔과 다리를 비롯한 온몸은 뼈 위에 피부 가죽만 입혀 놓은 것 같습니다. 할머니의 몸매를 보는 순간 할아버지는 왈칵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뒤돌아섭니다. 병마와 힘겹게 투병하는 할머니 옆에서 아무것도 도울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이 한스러워집니다. 할아버지는 직감했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제는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의학적 치료는 이미 손을 뗀 상태였습니다. 며칠 전부터 의식이 혼미해지더니 이제 의식을 잃었습니다. 숨만 쉬고 있을 뿐 눈조차 마주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곁을 한시라도 떠나지 않습니다. 혹시 혼자 놔두었을 때 인사도 없이 갈까 봐 옆을 꼭 지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사로부터 들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자식이 엄마의 마지막을 보러 오면 누가 왔다며 인사를 시킵니다. 손자, 손녀가 할머니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말도 전합니다. 누워만 있는 할머니가 말을 모두 알아듣는 듯합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을 놓지 않습니다. 일생동안 단 한 번도 누리지 못했던 기적을 지금처럼 간절한 적이 없었습니다.

 



 얼마 뒤 할머니의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집니다. 혈압은 점점 떨어집니다. 심장이 뛰는 속도도 느려집니다. 의사는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울먹입니다.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채 “고생했다, 미안하다, 정말 고마웠다” 라며 흐느낍니다. 순간 의식 없는 할머니의 두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그 말이 꼭 듣고 싶었다는 의미의 눈물인지,

괜찮다고, 나도 고마웠다는 감사의 눈물인지,

당신 만나서 그래도 좋았다는 기쁨의 눈물인지

할머니의 눈물에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며 울음을 그칠 줄 모릅니다.

아들, 딸, 손자, 손녀 앞에서 체통이고 뭐고.

”먼저 가 있어라. 내 좀 있다 곧 갈게.”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떠나보내며 한 마지막 인사말이었습니다.


 살이라고는 없는 비쩍 말라비틀어진 몸,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일어서지도 못하는 다리, 아름다움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추한 몰골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 모습을 떠나보내기 싫어 끝까지 옆을 지키고 고마워하는 노부부의 이별이었습니다. 이승의 마지막 눈물을 주고받으며 작별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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