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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23. 2020

문제가 없기를 바라세요?


 가을도 이젠 절정으로 치닫는 10월 하순입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바람이 몸을 움츠리게 합니다.

 가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살은 사람이 더 찌는 것 같아요. 독서하기 좋은 계절, 운동하기 좋은 계절, 놀러 가기 좋은 계절, 맛난 것도 많은 계절, 하늘이 진짜 푸르고 눈부신 계절. 가을을 예찬하는 말은 한두 가지가 아니죠. 가을도 절정을 지나면 계절은 겨울에게 넘겨줄 거고요. 우리는 꽁꽁 언 손발을 호호 녹여가며 지난가을을 그리워하고, 얼른 봄이 오기만을 기다릴 거예요.

가을과 봄을 이어주는 겨울이지만 겨울, 생각만 해도 벌써 추워집니다.


 가을은 사색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고 높은 하늘을 보며 감탄하고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인생이 뭔지 잠시 고뇌하는 철학자가 되어봅니다. '한 해가 벌써 다 갔나?' 쏜살처럼 빠른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합니다. 푸른 실록을 뽐내던 무성한 나무들이 모든 걸 훌훌 털어내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면 허탈함을 느낍니다.

 '지금껏 나는 뭘 했나'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주제로 빠집니다.

 '사는 건 뭘까?' '인생은 대체 무엇일까?'




 이왕 이 땅에 태어났으면 남부럽지 않게 살다 가고 싶습니다. 기왕 태어난 인생, 후세에 길이 남을 업적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름 하나는 남기고 싶고요.

 현실은 하루하루 허덕이며 남들 따라가는 것조차 벅찰 때가 많습니다. 길이 남을 업적은 고사하고 흔적 없이 사라질 인생 같아 허무하기도 하죠.

 적지 않은 나이지만 지금이라도 가슴속에 품어왔던 꿈을 활활 불태우고 싶습니다. 그것도 잠시 이름을 남기지 않아도, 흔적조차 없어도 좋으니 그저 문제없이 별 탈 없이 사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하며 살아갑니다.


 문제없기를 바라지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가 크면 클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살아있다는 증거요, 이겨내면 더 성장하고 성공한다고 격려하지만 실상은 문제 속에 빠져 허우적대기 급급합니다.

 성공은 차차하고 실패하기 싫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종일 누워 뒹굴어도 어떠한 문제든 일어나기 마련이죠. 문제가 있다는 현실을 기뻐하라고 하지만 솔직히 별문제 없이 조용히 살다 갔으면 하는 바람이 들 때도 많습니다.  


 삶은 즐거움을 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고통을 가져다주고요. 삶을 전체적으로 보면 즐거움과 고통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즐거움을 찾으려다 고통에 빠지고, 고통에서 헤어 나오면 즐거움이 기다리고요.

 하루를 돌아봅니다. 이른 아침 집을 나섭니다. 하루 종일 인생을 찾아 헤매고 애쓰다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죠. 날이 밝으면 다시 길을 찾아 나서는 일상이 즐거움과 고통 사이를 방황하는 삶의 축소판 같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길이다!"라며 자신 있게 나서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내 삶은 왜 이리 오리무중일까?"라 하며 고민하는 사람도 있어요. 지금 가는 이 길이 탄탄대로일 거라 자신했건만 미로에 갇혀 오리무중에 빠지기도 합니다. 삶을 돌아보니 오리무중 속에서 우연찮게 길을 발견한 적도 있었을 거예요.

오늘도 여전히 탄탄대로를 찾으려는 즐거움과 오리무중을 피하려는 고통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배고파 죽겠다', '더워 죽겠다', '귀찮아 죽겠다', '힘들어 죽겠다', '속상해 죽었다'.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배고파도 죽을 것 같지 않은데 밥을 먹고, 더워 죽을 정도는 아니어도 에어컨을 켭니다. 힘들어도 귀찮아도 속상해도 죽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죠. 죽겠다고 하루에도 수십 번도 외치면서 쏜살같이 지나친 세월을 보며 아쉬워합니다. 세월이 빨리 지나간 만큼 죽을 날도 성큼 다가와 좋아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말만 그럴 뿐이죠. 삶의 애착은 버릴 수 없습니다.  


 누구나 걱정 없이 문제없이 살아가고 싶죠.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한 게 제일 아닌가요?

분명한 사실은 시련은 언제나 오고, 문제는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좌절하고 실망하고 눈물도 흘리고 가슴도 아플 거고요. 사람은 시련을 통해 단련된다고 하지만 그건 다 지나고 난 뒤의 일이죠.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고 하듯이 이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가 어느 틈에 와 있을 거예요.  


 '인생은 불완전한 한 인간이 완전함을 꿈꾸는 이야기'라는 어느 작가의 글이 생각납니다.

 인간이 불완전하니 신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사는 거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비좁은 지구 위에서 아등바등하며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살아갑니다. 더군다나 인간은 불완전하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인생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니 걱정도 끊임없고 문제가 쉴 틈 없는 거겠죠.


 오늘도 현재라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다들 어제와 내일 사이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오늘이 사라지면 삶도 없어지겠죠. 삶이 없으면 문제도, 삶의 무게 또한 존재하지 않을 거고요.

살아 있으니까 게다가 오래오래 사니까 문제도 많고 수난도 끊이지 않습니다. 사람은요 고통 속에도 밥을 먹고 비슷한 처지끼리 위로도 주고받아요. 즐거움이 찾아와 부러워 보여도 걱정과 아픔도 끼여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들 살아갑니다.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인생은 뭔지, 사는 이유가 뭔지, 삶의 의미, 성공의 기준, 행복의 척도.

 아마 이 생을 다할 때까지 풀지 못할 문제일 거예요. 저마다의 답을 찾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 보지만 끝끝내 정답은 모른 채 종착역을 향해 달려갑니다.

 역사책에 길이 남은 철학자도, 훌륭한 위인들도 풀지 못한 난제를 평범한 우리가 어찌 알겠어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이유도 모르고 대상도 없으니 감정 낭비하지 말라는 거죠. 태풍이 오면 지나갈 때까지 그냥 버티는 것처럼요.

 삶의 무게가 제아무리 버거워도 사람은 살아가기 마련이고 내일의 태양은 찬란하게 솟아올라요. 이 또한 이유를 모르는 사실이에요. 태양이 뿜어대는 온기를 마음껏 누리며 사는 것만으로 감사할 뿐이죠.


 저마다 살아가는 삶이 다 다름에도 다른 사람들이 정해놓은 성공 기준, 행복 척도에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나를 발견합니다. 숱한 문제는 이 때문에 일어났는데 말이에요.

 정녕 속인 건 삶뿐만이 아니라 내 욕심도 꽤 많았겠다 싶습니다.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을 이어주는 가을을 만끽합니다.

어제와 내일을 튼튼하게 이어주는 오늘의 삶을 살아갑니다.

모든 걸 훌훌 털어내는 절정의 가을, 내 욕심도 훌훌 털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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