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의 기술 Oct 26. 2020

인생의 주인공인 날, 결혼식

 결혼하는 젊은이들이 해마다 줄어든다고 걱정들이 많지만 예년까지만 해도 이맘때쯤 '우리 결혼합니다'라고 이쁘게 만든 청첩장을 여러 장 받곤 했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문에 예정된 결혼식도 줄줄이 연기하거나 취소되었습니다. 식을 거행하더라도 가족들끼리 조용히 하거나 이른바 사이버 결혼식이라 해서 온라인상으로 참석하고 축하하는 풍경도 생겨났습니다.


 오랜만에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들어 결혼식장에는 처음 들어가 봤습니다. 조카 결혼식이었는데요.

 한 달 전 조카로부터 청첩장이 날아왔습니다.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어 직접 갖다 주지는 않고요, 카톡으로 받았습니다. 편리한 세상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직 코로나가 유행인데 결혼식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무튼 축하한다고 답장을 보냈습니다.

 연애도 결혼도 기피하는 요즘, 출산율도 세계 최하위로 떨어지는 시국에 결혼하는 이들을 감히 애국자라고 표현하고 싶어 졌습니다.


 다행히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제한 인원은 50명. 이른바 '스몰 웨딩'이라 하더군요.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당연히 아니었죠. 하객들은 가족과 친지, 친구와 지인 중에 엄선된 정예 멤버라 할까요. 열화와 같은 함성 대신 조용하게 울리는 박수 소리로 차분하게 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전교 1등은 말할 것도 없고 반에서 1등만 해도 주목을 받죠. 그 학교의 주인공, 그 반의 대표 주자들이니까요. 공부만 잘하면 품행이 방정하다는 칭찬이 새겨진 우등상을 받았습니다. 그 외 학생은 성적도 품행도 그저 그런 조연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운동 경기에도 팀마다 에이스가 있습니다. 물론 에이스가 혼자 북 치고 장구 쳐도 이길 수 없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사 기질로 팀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언론의 화려한 조명과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그 외 선수는 에이스를 위한 어시스트들이죠.

 

 영화나 드라마에도 주인공이 있습니다. 남녀 주인공의 연기가 돋보이게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조연들이 있고요, 그보다 훨씬 많은 엑스트라가 한 장면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엔딩 자막에 이름도 없이 말입니다.


 어릴 때는 누구나 주연을 꿈꿉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점점 주인공보다는 주변인으로 살아가죠. 학교 다닐 때도 그랬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죠. 입사를 하면 사수 선배에게는 깍듯하게, 하늘 같은 선배에게는 충성을 맹세하며 죽으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했습니다. 부서장 이상 지위를 가진 높은 분들은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고요. 오너는 이름만 알뿐 내가 만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죠.  




 주변인으로 살다가 주인공이 되는 날이 있습니다. 오늘은 온전히 내가 주인공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만 바라봅니다. 서있기만 해도 만연의 미소를 띠며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내가 걷는 걸음걸이 하나하나를 뿌듯하게 쳐다보며 내가 인사를 할 때마다 뜨거운 함성을 지릅니다. 나에게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언제나 맨 끝에 혹은 사람들 머리와 머리 사이에 간신히 찍혔던 사진 촬영도 오늘만큼은 내가 한가운데에 우뚝 섭니다. 내 앞에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습니다. 하늘 같은 선배도, 존경하는 은사님도, 내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도 오늘을 모두 조연 심지어 엑스트라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든든한 배경이 되어줍니다.

 이날만큼은 철저히 내가 주인공이 되는 날, 결혼식입니다.


 오늘 행복하게 살겠다고 다짐한 한 쌍이 백년해로를 맺습니다. 백세 시대라 몸 관리만 잘하면 백년해로는 문제없을 거예요. 반지를 끼워주며 서로를 향한 이 마음이 변치 않으리라 맹세도 합니다. 한동안 깨가 쏟아질 거고요. 새 생명도 태어나겠죠. 물론 싸우기도 하면서 때론 후회도 할 거고요. 수없이 물을 베며 씩씩거릴 때도 있을 거예요. 숱한 어려움도 있을 테지만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뜨겁게 전합니다.


 결혼식이 끝나갑니다. 예전처럼 다음 커플을 위해 후다닥 끝내고 식장을 비워줘야 하는 분주함이 없어 한결 여유로웠습니다. 식이 끝나고 단체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근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다들 마스크를 껴요. 먼 훗날 이 사진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 코로나 시대에 결혼식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되겠다 싶어요. 평소 만날 기회가 없었던 먼 친척은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마스크를 낀 얼굴로 찍었으니 이다음에 알아볼 수 있을까요?

 50명으로 제한된 인원이라 초대받지 못한 친구나 지인들은 혹시나 서운해하지 않을까 고민 꽤나 했을 것 같습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은 이번 생에는 글렀다고 자조하는 청년들. 집 때문에 식은 올려도 혼인신고는 하지 않는 신혼부부가 적지 않다는 기사가 생각납니다.

 학교 다닐 때도 조연, 회사에서도 조연. 근데 오늘 결혼식 단체 사진에도 조연으로 서 있는 신랑 신부 친구들을 바라봅니다. 축하한다며 웃음을 띠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요?


 스몰 웨딩, 사람이 많지 않아 환호도, 박수소리도 적었지만 마음만은 오늘 부부의 연을 맺는 커플에게 아낌없는 축복을 빌어줍니다.

 오늘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자 주인공이 된 날, 앞으로 힘들어도 오늘 주인공이 된 이 마음으로 이겨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부디부디 행복하기를, 영원히 그 마음 변치 않기를.

 아울러 일상이, 먹고사는 일이 정상적으로,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어 너도나도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걸 포기하지 않기를, 애국하는 청년들이 마구 쏟아지는 날이 오기를 빌어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문제가 없기를 바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