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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29. 2020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우리나라에 태어난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취준생이 구직을 하려고 제출한 자기소개서의 일부입니다.

 "저는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글도 잘 쓰고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에 기술을 접목시키려고 과학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시대이니 영어도 열심히 해서 토익 점수도 높아요. 시간을 쪼개어 봉사활동도 하고 있고요. 4차 산업혁명이 곧 도래할 터라 지금은 코딩도 익히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일자리를 얻고 싶어 편지를 보낸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저는 다리를 설계할 수 있어요. 수레도 만들 수 있고요. 건물도 지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림도 잘 그립니다. 사람 인체에 대한 관심도 많습니다. 생활을 편리하게 해 줄 기계를 발명할 거고요, 그림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싶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당시 밀라노에 있던 권력자인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에게 보낸 편지 내용입니다. 다빈치는 자기가 단순히 화가이기만 한 게 아니라 과학자요, 공학자임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근데 자신만만함보다는 일자리를 위해 자신을 한껏 낮춘 듯한 분위기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수많은 명작을 그렸고, 다양한 기구들도 발명한 인류 최고의 천재로 기억되는 다빈치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일자리를 얻어야 하고 거절당하지 않기 위해 자기를 어필하고 있습니다. 취업이란 관문 앞에선 어쩔 수 없나 봅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청년들은 다빈치보다 더 비좁은 취업문을 절박한 심정으로 도전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돈과 많은 시간을 투자해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쌓아 필사적으로 자기 PR을 해도 취업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습니다. 한두 번 떨어지는 건 애교 수준이라고 하죠. 취업을 위해 휴학도 흔한 일이고요. 이런 노력에도 취직은 하늘의 별 따기이죠. 왜 떨어졌는지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고 대접받지 못한다 한들 찍소리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펄펄 날아다녀야 할 청년들의 어깨를 축 처지게 만듭니다.


 예전에 유행했던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아인슈타인, 퀴리 부인, 에디슨이 한국에 태어난다면?'이라는 유머인데요.

 옥황상제가 방황하는 청년들을 위해 귀감이 될만한 천재 세 사람을 한국에 다시 태어나게 해 줄 결심을 합니다. 누구를 다시 태어나게 할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공계 기피 현상을 고려해 아인슈타인, 에디슨, 퀴리 부인을 한국에 다시 태어나게 해 주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한국이 발전한다는 소식이 없어요. 옥황상제는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기 위해 친히 세 사람을 찾아 나섭니다.

 

 먼저 아인슈타인을 만났더니 그는 대학에도 못 가고 허드렛일만 하고 있어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니

 "저는 수학에 가장 자신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대학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라며 울상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은 옥황상제는 에디슨을 찾아갑니다. 에디슨은 원래 대학을 안 나왔으니 잘 되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겨요. 근데 에디슨은 하라는 발명은 안 하고 골방에서 법전만 보고 있어요. 옥황상제가 이유를 물으니까

 "발명은 했는데 특허를 얻기가 어려워 특허 관계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며 머리를 쥐어짭니다.

 어이가 없는 옥황상제는 퀴리 부인을 찾아갔더니 퀴리 부인은 만나자마자 한숨부터 내쉬어요.

 "여자라고 교육도 잘 시켜주지 않고 잘 써주지도 않아요."

 물론 과장된 면이 없지 않지만 당시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던 사회적 고민을 보여준 거라 할 수 있습니다. 10년 전에 유행한 유머인데 사회는 아직도 별반 차이 없이 그대로인 것 같아요.


 만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그래도 오십 보 백보일 거예요.

 학력이 변변치 않은 데다 인체에 관심이 많았지만 의대 가려면 내신이 상위 1%에 들어야 하니 오르지 못할 나무였을 수도 있고요. 화가나 과학자로 인정받으려면 공모전 입상과 인턴 경력이 있어야 하니 만만치 않았을 거예요. 다빈치는 끈기가 부족한 성격 때문에 일을 끝까지 완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하죠. 그럼 게으르고 책임감 없는 녀석이라고 인턴 자리도 번번이 쫓겨났을 거예요.

 이것저것 재능이 많은 천재이지만 먹고사는 일로 여기저기 알바 자리를 기웃거리다 이름 없이 살다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취업에 목숨을 걸고 청춘을 다 바치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비단 청년들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공자님도 그러셨잖아요. 인(仁)을 행하려면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일자리가 행복의 시작이라고 대통령도 나서서 한 말씀이고요.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 새마을 운동 때처럼 모두 다 힘을 합치고 IMF로 나라가 망했을 때 금을 모았던 열정도 필요하지만 경제 상황이 그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죠. 경제성장률이 2%를 넘기지 못하는 판국이니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세대 간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앞날이 막막하기만 합니다.  


 한창 불타는 열정으로 우리나라를 힘차게 돌려야 할 인재들이 일할 곳을 얻지 못해 한숨으로 세월만 돌리고 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청년들을 위한 대책이 나오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청년뿐만 아니라 모두의 삶이 점점 팍팍해져 갑니다. 청년은 직접 당사자의 문제, 기성세대는 자녀의 문제이니 이 나라를 사는 모든 이들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다느니, 헝그리 정신이 없다느니 하는 말은 그만 했으면 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열정 페이만 강조하지 말고요. 천재 중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별 수 없었을 것 같은 시대입니다. 80년대 젊음을 보낸 기성세대가 지금 청춘이 된다 한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을 거니까요.

 



 시련은 언제나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시련이 사람을 키워놓는다고 하죠. 사람이 어려운 일을 겪으며 단련이 되고 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지금 우리가 겪는 이 시련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더 큰 성장을 이루는 디딤돌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IMF 외환위기, 세계 금융 위기. 그 당시만 해도 무시무시했던 시련들이었지만 잘 이겨냈듯이 말입니다.

 이 시련 또한 우리 모두를 엄청 키워놓고 떠나갈 때까지 슬기롭게 잘 이겨내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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