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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24. 2020

당신의 크리스마스가 행복으로 빛나시길!

 

저마다 성탄절에 대한 추억 하나쯤은 있다. 추억들 대부분은 무슨 선물을 받았는지가 아닐까 싶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를 떠올려본다.  




 코흘리개 시절의 12월, 학교에서 우표처럼 생겼는데 이것만 붙이면 편지는 안 간다고 주의하라고 했다. 이걸 사면 아픈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일을 하는 거란다. 이름이 크리스마스 실? 씰? 몇 장씩 사야 한다며 억지로 나누어 주었다. 실인지 씰인지 무슨 뜻인지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고 강매만 했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대개 방학이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TV와 라디오에서, 가게에서,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똑같은 인사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 강아지 이름이 메리인 것 들어봤는데 왜 크리스마스에 개 이름을 붙여 부르는지 또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 얼굴도 모르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갖다 주러 오신다는 사실이다.

 일설에 의하면 성탄절 전날 밤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내 방에 몰래 들어와 선물을 주고 가신다고 했다. 형제가 5명이라 산타 할아버지가 헷갈리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5명이 자고 있는 방에 종합 선물세트 과자가 놓여 있었다. 당시 나는 마징가 Z를 갖고 싶었는데 애들이 많아 산타 할아버지가 달랑 과자 세트 하나로 퉁친 것 같았다. 실망이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의 성탄절은 별 기억이 없다. 산타 할아버지의 부존재를 이미 터득했고, 그렇다고 부모가 나이 든? 우리에게 선물을 몰래 사놓는 정성도 없었다. 사방이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고, 방송에서 거리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인사 역시 변함이 없건만 선물은 없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입시가 점점 다가오니 선물 대신 수학의 정석, 성문 종합영어를 들고 다녔다.


 대학에 진학했다. 평소 토요일 오후가 되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생긴다. 멋을 내고 데이트하러 가는 친구, 끼리끼리 모여 동아리 모임에 가는 녀석들, 즐거운? 나의 집으로 가버린 친구. 이러다 보니 도서관은 텅 빈다.

 크리스마스이브도 마찬가지다. 집에 가면 엄마 손을 잡고 교회로 끌려갈 것 같아 자취방에 있다가 심심해서 도서관에 갔다. 삭막하다. 그나마 듬성듬성 몇 놈이 있다. 하나같이 애인 없는 놈, 집이 멀다고 일부러 안 간 놈, 할 일 없는 놈. 이런 부류들이 앉아 있으니 공부는 무슨 얼어 죽을. 나도 여기에 속했다니 가혹한 운명이다.

 '명색이 크리스마스이브인데' 하며 시내로 갔다. 크리스마스 캐럴이 이 가게 저 가게에서 울려댄다. 다들 캐럴을 틀다 보니 캐럴이 들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며 구슬픈 종소리는 울렸지만 캐럴에 묻혔다. 거리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걸 기념하는 날이라며 남녀 쌍쌍은 착 달라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교회는 가지 않으면서. 뭔가 꿍꿍이가 수상했다.

 애인 없고 집 멀고 할 일 없는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말이 저녁이지 술이었다. 한산한 식당은 한 군데도 없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도 시내는 여전히 휘황찬란했다. 오늘은 다들 공식 외박하는 날인가 보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한동안 잊고 살다가 이젠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줘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성탄절이 오기 며칠 전,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에서 성탄 선물을 보내라는 공지를 받았다. 너무 비싸도 안되고, 그렇다고 허접해도 안된다며 1-2만 원 선에서 사서 미리 갖다 달라는 내용이었다. 1-2만 원 한도 내에서 같은 동네에서 구입 가능한 선물은 뻔했다. 과자 종합 선물세트. 30년 전과 차이점은 나는 5형제가 동시에 받아 과자 하나 더 먹으려고 처절한 투쟁을 벌였다면, 이 녀석은 독점한다는 사실이다. 저걸 혼자 다 가지다니, 세상 살만해졌다.


 성탄절 당일.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일이 터졌다. 아들이 씩씩거리며 흥분하다 이 세상에 산타는 없다며 비탄에 빠졌다.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처럼. 어제 유치원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셨는데 집에서 뜯어보니 과자 종합 선물세트였다. 오늘 집 앞 마트를 지나가는데 그 마트에 똑같은 선물이 땅바닥에서부터 지 키높이까지 쌓여 있는 걸 봤단다. 그 순간 '산타는 무슨 산타..' 하며 실망과 동시에 산타는 없다고 단언했다. 동심의 세계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옆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너무 바빠서 마트에 맡겨놓은 것 같다고 달랬지만 아들이 결정타를 날렸다.

“다들 돈 주고 사 가던데?”

‘자식, 좀 똑똑한데’ 미소가 지어졌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연말연시면 시내에 발 디딜 틈도 없이 몰려들던 사람들이 줄었다. 크리스마스 실 판매액과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액도 해마다 줄어든다고 한다. 온정의 손길을 기다리는데 갈수록 메말라간다는 기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종소리를 크게 울려서라도 모금함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야 할 텐데 종을 크게 치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세게 치면 안 된단다. 캐럴송은 저작료 문제로 가게에서 마음껏 틀지 못한다고 한다. 연말에 어디서나 듣던 캐럴송이었는데 요즘 뜸해진 이유다. 성탄절 이브에 교회에서 하던 새벽송은 수면을 방해한다는 민원이 제기되고 안전사고 때문에 오래전부터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연인끼리 만나고, 애인이 없으면 없는 놈끼리 모여 술 한잔하던 모습도 많이 사라졌다. 직장, 학교와 관련된 모임도 줄었다. 대신 채팅방에 크리스마스에 친목 모임을 만들어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즐기고 쿨하게 헤어지는 모임으로 대체되었다. 철저한 익명성 보장에 비용은 1/N, 지인과 얽매이지 않아 기존 관계에서 느끼는 피로감과 부담감이 없어 성행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모금액이 줄어들고 자선냄비 설치를 해도 오가는 사람들이 적어 구세군도 스마트 자선냄비를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카드와 신용카드로 결제 가능하게 바꾸었다.

 스티커 형태로 발행하는 크리스마스 실도 머그컵, 키링, 마그네틱 등 굿즈와 이모티콘을 출시하며 판매액을 높이려 애를 쓴다.  

 연인에게, 가족에게 선물을 직접 보고 골라 서로 교환하던 모습도 줄어들었다. 대신 기프티콘으로 주고받는다.

 이래저래 크리스마스 풍경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성탄절을 흥청망청 보낼 때는 나라 경제가 쭉쭉 발전이라도 했지, 지금처럼 경기는 얼어붙었고 다들 허리띠를 졸라매어야 하는 상황이니 예년만 못한 건 당연한 현실이다. 더군다나 올해는 코로나 영향으로 사람들이 모이지도 못하고 식당도 밤 9시 이후면 문을 닫아야 하고 노래방은 영업을 할 수 없게 했다. 다들 조심, 또 조심을 하니 성탄절과 연말연시 특수는 썰렁하다 못해 찬바람만 분다.

 산타 할아버지가 코로나 때문에 자가격리를 해야 해서 못 온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자 일각에선 산타 할아버지가 극적으로 백신을 맞고 면역력이 생겨서 올 수 있다고 반박한다. 웃고 넘기기엔 슬픈 현실을 반영한 유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먼 훗날 2020년 크리스마스를 돌아보면 '살다 살다 그런 크리스마스는 처음이었다'라며 웃어넘기겠지.  




 아이와의 세대 차이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차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오늘도 한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핑계로 생존 확인을 해야겠는데 어떤 식으로 할까 고민한다.

 문자 메시지로 뭐라고 보낼까?

 메리 크리스마스? 심플하게 보내면 심플하게 무시할 거고.

 메리 크리스마스. 새해 어쩌고 저쩌고 하면 잔소리한다고 안 하느니만 못할 것 같다.

 인터넷에서 산타 할아버지가 몸짱으로 변한 이미지가 있어 캡처해서 보냈다.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진이 인상적이다.

 아들이 10살 때라면 좋아했을 캐릭터 형상인데 10년이 더 지난 지금은 마음에 들어하려나?

 보냈는데 답장이 없다. 읽었는데 씹는다. 바쁜가? 크리스마스, 노는 날인데 바쁘긴 뭐가 바쁠까?

 충분히 예상한 무반응에 필살기를 쓴다. 받으면 답장을 할 수밖에 없는 선물을 날렸다.

 나 때나 지금 아들 때나 내 손자? 때도 절대 변하지 않을 누구나 좋아하는 선물..

 용돈을 보냈다.  


 만 원짜리 종합 선물세트 과자를 성탄 선물로 퉁쳤던 때가 좋았다. 선물로 만원 보냈다간 부자지간의 정도 끊어지겠지. 이래저래 세상 참 살기 힘들어졌다.

역시.. 꾸벅 인사를 하는 이모티콘을 보내온다.  


메리 크리스마스, 당신의 크리스마스가 행복으로 빛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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