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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25. 2020

근하신년, 삼가 새로운 한 해를 축하드립니다


 2020년 경자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일 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게 눈 깜짝할 새 지나갔습니다. 엊그제 'happy new year!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나눈 것 같은데 벌써 일 년이 다 가다니…’라고 예년 같으면 스스럼없이 표현했을 텐데, 올해는 다릅니다. 달라도 너무 달라요. 우리가 평소 살았던 세상이 맞나 싶습니다.

 2020년 한 해는 코로나를 빼면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코로나가 처음 발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사스나 메르스 때처럼 2-3달 저러다 말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온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최악의 고비라고 하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일 년 내내 코로나가 물러가기를, 이 어려움이 빨리 해결되기를 고대하며 살다 보니 올해는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는 체감보다 지루함과 지겨움이 더 많았지 않나 싶습니다.

 사람들이 코로나로 모이지 못하고 얼굴엔 항상 마스크를 끼며 거리를 두고 조심, 또 조심하는 일상이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은 늘 흐르는 대로 흘러 2020년도 딱 1주일 남았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로 들뜨기는커녕 썰렁하다 못해 찬바람만 붑니다. 살다 살다 이런 분위기는 처음입니다. 하긴 올해 1년 내도록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을 살았으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이메일로, 스마트폰으로 성탄절과 연말연시 인사를 주고받습니다만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에는 연하장이라 해서 카드를 집으로 직장으로 보내곤 했습니다. 우표처럼 생긴 크리스마스 실을 붙이기도 하고요.

 연하장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쓰린 네 글자가 쓰여져 있습니다. TV에서도 방송 중간중간 화면에 새해 인사로 이 네 글자를 자막으로 대신해 넣었습니다. 바로 ’근. 하. 신. 년’입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가장 많이 주고받았던 새해 인사였습니다.

 근하신년 연하장은 새해 축하, 복을 비는 내용이 담겨있는 편지 또는 카드 형식의 글과 새해 복을 비는 그림이 있습니다. 연하장을 주는 인사는 새해 복을 함께 기원하는 우리나라의 오랜 풍습에서 나온 거라고 합니다.
 근하신년 글자 옆에는 새해를 상징하는 해, 복을 상징하는 복주머니,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학의 그림이 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근하신년(謹賀新年) 한자를 풀이하면요, 삼갈 근(謹) 하례할 하(賀) 새로울 신(新) 해 년(年)입니다.

 새로운 해에 축하를 한다는 뜻은 알겠는데 첫 글자 '근'이 조금은 낯설게 보입니다. 이 ‘근’ 자는 근조(謹弔), 근신(謹身)에서 쓰는 '삼가다'라는 의미로 정중한 마음으로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장례식장을 가면 일렬로 서있는 화환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근’ 자를 근하신년에도 쓰는지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는데 삼갈 근을 왜 썼을까? 묵은해를 보내는 게 영원한 슬픔이란 뜻인가?’하고 말입니다.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한 해의 마지막 날에 모여 카운트다운을 합니다. 10.9.. 3.2.1 happy new year! 인사를 하며 포옹하고 파티를 열어 축하를 하죠. 그들만의 흔한 일상입니다.
 우리나라는 자정 정각을 기해 보신각종 타종을 하며 묵은해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합니다.
 연말이면 크리스마스를 즐기며 연말연시 특수를 위해 분위기를 한껏 띄웁니다. 지난 한 해를 무사히 별말 없이 보낸 것을 감사하고 새해에는 더 좋은 일들만 있기를 기대하며 분위기에 흠뻑 젖습니다. 망년회다, 송년회다, 신년회다.. 모임도 줄줄이 있습니다. 들뜨기 쉬운 연말연시에 흥청망청 보내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입시, 취업 같은 시험에 떨어진 좌절,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슬픔, 일자리를 잃거나 사업 실패로 인한 낙담, 질병으로 받는 고통으로 올해를 힘들게 보낸 이웃이 많습니다. 불우이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이런 아픔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내가, 내 가족이 당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힘들어하는 이웃의 아픔을 헤아려보라는 의미에서 삼갈 근자를 쓰는 거라고 합니다.

 연말연시에 빠지지 않는 온정의 손길 하면 구세군의 종소리가 아닐까 싶어요. TV 뉴스의 마지막 자막에는 불우 이웃 성금을 보내주신 분들을 소개합니다. 구세군의 종소리는 신나는 캐럴 소리에 묻혀 자선냄비 주위에서 맴돌고만 있습니다. 연말연시 화려한 특집 프로그램에 치여 불우이웃 성금 방송은 뒷전으로 밀려 존재감조차 없습니다.

 근하신년, 아픔을 겪는 사람을 보며 이겨내기를 기원하고 주위에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자는 의미이고요. 연말 분위기에 흥청망청 들뜨지 말고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올해는 무척이나 힘겨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어려움 속에 새해를 맞이하려고 합니다. 사는 게 힘들어진 요즘이지만 구세군 종소리를 따라 자선냄비에 따뜻한 마음을 담아 보는 연말연시이기를 바라봅니다.

 2020년 경자년 한 해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가오는 2021년 신축년 새해는 보다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모두들 행복하시고요.

 근하신년. 경건한 마음으로, 삼가 새로운 한 해를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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