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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22. 2020

베토벤 이야기. 검은 구슬과 흰 구슬, 그 이후

 숙제를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 않으려고 내팽개쳤는데 자꾸만 생각이 납니다. 안 한다고 뭐라고 할 사람도 없는데 돌아서면 떠오릅니다. 마치 숙제하라고 말입니다.




 지난 12월 17일이 베토벤의 탄생일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전혀 몰랐죠.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 시간에 내일은 뭘 쓸까? 글감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브런치에 잠시 들어왔습니다. 구독하는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댓글도 달고, 제 글에 달린 댓글에 답글도 달고요. 제가 문외한인 요리, 음식 관련 글은 읽다가 야식 생각을 억누르며 라이킷을 누르고는 유혹에 넘어가기 전에 급히 다음 글로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모 작가님의 글을 봤습니다. 베토벤 탄생 250 주년을 기념하는 ’Oh! Beethoven’이란 글이었습니다. 베토벤에 관한 단상과 함께 오케스트라 연주곡을 올리셨더라고요. 클래식을 들어본 지도 오래된 것 같고, 머리도 식힐 겸 음악을 들었습니다. 길어야 10-20분이겠지 하며 들었는데 눈을 뜨니 1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클래식에 심취해 깜빡 잠이 든 모양입니다. 1시간이 넘는 장대한 음악을 들어서인지(?) 기분도 상쾌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져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았습니다.

 

 근데 작가님의 답글을 보는 순간 ‘어?’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글의 마지막 문장이 '작가님께서 베토벤을 글로 어떻게 풀어내실지 정. 말. 궁금합니다. 읽으러 갈 준비하고 있습니다’였습니다. 댓글을 달았는데 답글로 세상에나 숙제를 내주시다니. 클래식에 그리 조예도 깊지도 않고 베토벤이란 사람은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운 게 전부인데 한마디로 난감했습니다. 그날은 ‘뭘 알아야 쓰지’ 하며 덮었습니다. 며칠 지나면 잊을 줄 알았는데 자꾸만 작가님 글의 본문 마지막 줄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의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내일 뭘 쓸까?' 요즘 저녁때마다 고민하는 주제입니다. 낮에 틈틈이 써둔 게 있으면 편할 텐데 직장 생활을 하는 입장에 그러기는 쉽지 않죠. 밤 10시가 넘은 시각에 작가님의 숙제가 또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곤 (숙제 하자는 생각으로)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아는 베토벤이라... 음악의 성인이라는 의미로 악성(樂聖)이라 불리고 난청이 심해 청력을 잃은 아픔을 겪은 음악가. 나폴레옹이 자신처럼 비참한 신분의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가져다줄 것을 기대하며 '보나파르트 교향곡’을 만들었다가 황제로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망하여 제목을 '영웅’으로 바꿨다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성격이 괴팍한 천재라는 사실.

 더 이상 쓸 거리가 없어 멍하니 앉아 있다 과감하게 또 덮었습니다. 다른 주제나 찾자 싶어 모아둔 자료를 뒤적거렸습니다. 그러다 운명의 장난인지 메모에 저장된 베토벤과 관련된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베토벤은 이루어질 수 없는 러브 스토리가 여럿 있다고 전해집니다. 신분의 차이, 성격의 차이, 베토벤 자신이 눈도 높아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고요. 사랑하는 여인은 떠나고 더군다나 난청이 생겨 더 이상 음악을 할 수 없는 절망감에 빠집니다. 견디기 힘든 베토벤은 인근 수도원의 수사님을 찾아가 자신이 처한 절망에서 나아갈 길을 알려달라고 눈물로 호소합니다. 수사님은 베토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더니 아무 말없이 자리를 비웁니다. 잠시 후 여러 개의 유리구슬이 들어 있는 속이 깊고 향기 나는 나무 상자를 들고 나옵니다.

 그리곤 베토벤에게 상자 안에 손을 넣어 구슬 하나를 꺼내보라고 합니다. 베토벤이 검은색 구슬을 꺼냅니다. 수사님은 다시 한번 구슬을 꺼내 보라고 합니다. 이번에도 베토벤은 검은 구슬을 집었습니다. 그러자 수사님이 말했습니다.


 “이보게, 이 상자 안에는 열 개의 구슬이 들어 있네. 그중 여덟 개는 검은색, 나머지는 두 개만 흰색이지. 검은 구슬은 불행과 고통을, 흰 구슬은 행운과 희망을 의미한다네. 어떤 사람은 단 한 번에 흰 구슬을 뽑아서 행복과 성공을 움켜쥐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자네처럼 연속으로 검은 구슬을 뽑아 불행과 고통 속에 보내기도 하지. 그런데 말이지, 세상 이치란 참으로 묘한 법이라네. 굳건한 신념을 통해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검은 구슬을 내 삶에서 먼저 뽑아낼수록 나중에 흰 구슬을 집을 확률이 월등히 높아지지. 중요한 것은 저 향기 나는 나무상자 안에 아직 여덟 개의 구슬이 남았고, 그 속에는 분명히 흰 구슬이 들어 있다는 거야. 좌절하지 않고,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다 보면 반드시 하늘이 주시는 행운도 자네 편이 되어 흰 구슬을 머지않은 날에 잡을 걸세.”

 베토벤과 관련된 일화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럼 검은 구슬과 흰 구슬 다음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20대 후반에 약해진 청력은 이후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음악가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입니다. 베토벤은 보청기를 사용했지만 그 당시 기술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죠. 청력을 잃어 괴로워하는 베토벤을 위해 친구인 ‘멜첼 메트로놈’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박자 측정기를 만들어 냅니다. 바로 ‘메트로놈’입니다. 움직이는 시침을 이용해 박자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으로 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 베토벤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베토벤은 메트로놈을 사용해 이후에도 위대한 곡들을 작곡하게 됩니다.

 물론 베토벤은 절대음감이었기에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음을 악보로 옮기는 능력 또한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끈질긴 노력이 있었기에 장애를 극복하고 위대한 작곡자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검은 구슬 다음에 흰 구슬을 잡은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 않나요?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여명이 찾아오고 고생 뒤에 낙이 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제는 검은 구슬, 오늘도 검은 구슬로 한숨과 절망이 뒤섞여 있어도 내일은 흰 구슬을 잡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설령 내일도 검은 구슬일지라도 머지않아 흰 구슬을 잡는 날은 반드시 오게 될 거니까요.

 그러니 지금 지치고 힘들어하고 있다면 희망을 가져도 좋을 듯싶습니다. 불행과 고통의 검은 구슬을 먼저 여러 개 꺼냈으니 이제 행복과 성공을 가져다 줄 흰 구슬을 잡는 일만 남았을 테니까요.





P.S

저에게 숙제?를 내주신 작가님은 Dear Ciel이십니다. 작가님이 쓰신 지난 11월 6일 자 ‘1995 vs 2020’이라는 글과 사진을 보고, 그걸 토대로 제가 ‘20년 전 vs 20년 후’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때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해 죄송했음에도 이해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송구함이 있었는데 이제야 (제 생각에) 빚을 갚게 되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기분 좋은 숙제를 내주신  Dear Ciel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베토벤 음악을 듣고 싶으신 분은 멀리 가지 마시고 Dear Ciel 작가님 방에 들어가시면 무한 재생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주소는 여기로 찾아가시면 되고요.

https://brunch.co.kr/@dearc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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