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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18. 2020

소를 타시겠습니까? 말을 타시겠습니까? 우생마사

2021년 신축년, 소의 해를 맞이하며. 



 인간이 농경사회를 이루면서 가축을 키우기 시작합니다. 대표적으로 개가 있고요, 돼지, 닭, 염소, 고양이 같은 여러 가축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1세기 전만 해도 전쟁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가축이, 농사일에 꼭 필요한 가축이 있습니다. 말과 소입니다.

 말은 빠릅니다. 전쟁과 이동 수단으로 가치가 큽니다. 빨리 달리는 말은 천리마(千里馬)라고 불렀죠. 전쟁에서는 빠른 기동력을 앞세운 기마부대는 큰 위력을 발휘합니다. 몽골이 빠른 기마대를 앞세워 세계를 제패한 것처럼요. 

 반면 소는 우직합니다. 말과 함께 운송 수단으로 이용하지만 주로 무거운 짐을 잔뜩 지고 가거나 논과 밭을 가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소는 빠름이라고는 없습니다. 먹는 것도 여러 번 천천히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동물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헤엄을 잘 칩니다. 사람은 헤엄을 배우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비해 동물은 타고난 본능이라고 하죠. 

 말이 헤엄치는 고사는 삼국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날은 유비가 산적을 토벌하고 두목이 타던 적로마(的盧馬)를 얻었습니다. 적로마는 이마에 있는 흰 반점이 말의 얼굴을 가로질러 입 주위까지 내려와 있는 말을 가리킵니다. 이마에 흰 점이 박힌 말은 주인에게 화를 불러오는 흉마라며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비는 이 말을 애마로 삼았습니다. 하루는 유비가 자신을 죽이려는 무리에 쫓겨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잡으려는 무리들이 점점 다가오고 앞은 깊고 넓은 강물이 가로막아 낙심에 빠져들었죠. 그 순간 적로마가 강물을 단숨에 헤엄쳐 건넌 덕분에 추격자들을 따돌린 일화가 전해집니다. 


 소가 헤엄치는 장면은 여름이면 간간이 뉴스에 등장합니다.

 여름철 홍수가 나 마을이 물에 잠겼다는 방송이 나옵니다. 불어난 물에 빠져 떠내려가던 소가 지붕 위로 올라가 있다가 구조되거나 강으로 떠내려간 소가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마을에서 발견되는 장면을 보면서 생존본능이 대단하다 싶습니다. 마치 가슴 뭉클한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감동을 느낍니다. 


 이런 말과 소를 커다란 저수지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요? 둘 다 아무렇지도 않게 헤엄쳐서 뭍으로 나옵니다. 말이 소보다 헤엄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하죠. 두 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장마나 홍수가 나서 물살이 거센 경우라면 반전이 일어납니다.  


 빠르게 헤엄을 잘 치는 말답게 강한 물살이 떠내려오면 질주 본능이 발동합니다. 당장 급한 물살을 이기려고 강가를 향해 돌진합니다. 그러나 1미터 정도 강가에 가까워졌다 싶으면 거친 물살에 도로 1미터 밀리고, 다시 물을 거슬려 강가로 가다가 밀리는 후퇴를 반복합니다. 거침없는 물살을 이겨내려고 발버둥 치다 힘이 빠집니다. 결국엔 지쳐 제자리만 맴돌다 물만 잔뜩 마시고 익사하고 맙니다. 


 반면 소는 물살이 거세게 오면 강물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갑니다. 무작정 떠내려가 저러다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소는 10미터 떠내려가는 와중에 1미터 정도는 강가로, 또 10미터 떠내려가면서 1미터 정도를 조금씩 강가로 향합니다. 그렇게 몇십 킬로미터를 떠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소는 강가 근처에 와있습니다. 그러고는 엉금엉금 뭍으로 걸어 나온다고 합니다. 방송에 나오는 소들이 생존한 이유입니다.


헤엄을 두 배나 잘 치는 말은 자신의 능력만 믿고 거센 물살을 거슬려고만 하다 힘이 빠져 익사하고, 헤엄이 느린 소는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겨 조금씩 강가로 나와 목숨을 건지는 모습에서 나온 고사 성어가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라는 ''우생마사(牛生馬死)''입니다. 

 평상시 잔잔한 강이나 호수에 소와 말을 풀어놓으면 둘 다 헤엄쳐 살아 나오지만 물살이 거셀 때 강에 빠지면 헤엄이 느린 소는 살아남고 헤엄을 잘 치는 말은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일이 막힘없이 술술 풀릴 때도 있습니다. 누구든 어려움 없이 헤쳐 나갑니다.

 그러다 아무리 애써도 일이 꼬일 때가 있습니다. 잘못을 저질러 곤경에 처하기도 하고요, 때로는 자신의 잘못과는 무관하게 책임을 뒤집어쓰기도 있습니다. 억울하기 짝이 없는 황당한 경우도 있죠.

 이럴 때 자신의 능력이나 생각에만 집착하여 단번에 뒤집으려고 애쓰지 말고 소처럼 흐르는 물살에 몸을 맡겨 지켜보며 상황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않을까요?

 급한 마음에 이리저리 발버둥만 치다 지쳐 쓰러지지 말고요.  


 요즘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우직한 소처럼 흐름을 따르는 지혜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바삐 살아가는 삶을 앞으로만 가려고 하다 보면 지칩니다. 대신 잠시 돌아보며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을 살펴보는 여유를 가져보면 좋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올해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2021년 내년은 신축년(辛丑年), 때마침 소의 해입니다. 느릿느릿 소의 걸음이지만 우직하게 걷다 보면 만 리를 간다는 우보만리(牛步萬里)와 같은 마음이 필요한 요즘이 아닌가 합니다. 기나긴 인생의 여정에서 속도보다는 아무래도 방향이 중요하니까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막막한 요즘, 거세게 밀려오는 환란 속에 소나 말을 탈 수 있다면.

 소를 타시겠습니까? 말을 타시겠습니까?

 오늘만이라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소처럼 환란 같은 홍수 속에서 살아 나온 지혜를 곰곰이 생각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힘들어도 마음의 여유는 잃지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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