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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17. 2020

성공적인 노화, 밝고 건강하게 늙었으면 좋겠습니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다. - 키케르

                                                                                                                                                                                                                                                                                                                                                       

 코흘리개 어린 시절.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무서웠고 구부정한 할머니는 답답했습니다.

귀가 어두워 큰소리로 이야기해야 했고, 아까 했던 질문을 몇 번이고 하셨습니다.

노인에게서 나는 냄새는 인상을 찌푸리게 했고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은 내 어깨를 움츠리게 했습니다.

주름 깊게 파인 손으로 과자를 집어주시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고요.

눈치만 보다가 엄마한테 달려가기 일쑤였습니다.


노인을 공경하라는 교육을 받았지만 철은 여전히 들지 않았습니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계산기에 나온 숫자는 무시하고 본인 계산이 맞다고 고집을 피우는 할아버지,

횡단보도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고 차들은 경적을 울려대는대도 느릿느릿 뒤늦게 길을 건너는 할머니,

비좁은 골목길 한가운데를 늬엇 늬엇 걸으며 뒷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 노인분들이 답답했습니다.

바쁜 세상에 배려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철이 없던 약관 스무 살 적에도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중후한 멋을 지닌 노년의 신사는 멋있어 보였습니다.

나이 50이 될 때까지 열심히 일만 해서 돈을 왕창 벌어 은퇴하겠다, 나이 60이 될 때까지 즐길 것 다 즐기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 카피대로 멋지게 살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여행을 다니다 더 늙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기 전에 미련 없이 세상을 떠나겠노라고.

세상 물정이 뭔지도 몰랐던 철부지의 당돌한 희망이었습니다.


서른 즈음에는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부모님이 안쓰러우면서도 답답해했습니다.

어릴 때는 모르는 게 없는 것 같더니 쉬운 계산도 틀리고 며칠 전에 부탁했던 중요한 약속도 깜빡깜빡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저곳이 아프다 하고, 나이가 들수록 고집만 세진 것 같습니다.

보다 못해 한마디를 하면 잔뜩 인상을 구기며

"너도 나이 들어 늙어봐라"라며 쏘아붙이곤 했습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이 되었지만 욕심은 떠나지 않습니다.

세상사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이 흐려지고 하루에도 여러 번 변덕이 죽 끓듯 변하는 행동은 여전합니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이 되어도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난 일을 아쉬워합니다.

내일보다는 어제를 집착했고, 오늘은 내일 일을 걱정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임을.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세상사 순리가 있음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욕심이 감사보다 늘 앞서 나갑니다.   


불혹을 넘기며 나이 먹었다는 사실은 온몸이 말해줍니다.

파릇파릇 청춘이 부러워지고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체력이 저질임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급변하는 사회에 뒤처질까 봐, 소외될까 봐 걱정되고 막막한 미래에 잠을 설칩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자존심을 내세워보지만 영락없는 꼰대라는 소리만 들을 뿐입니다.

나이 50까지 왕창 돈을 벌겠다는 다짐은 철딱서니 없는 희망사항이었음을,

나이 60까지 즐기지 않아도 좋으니 그때까지 일이라도 할 수만 있다면 감지덕지입니다.

사회의 일원으로 일을 한다는 사실이 삶을 이어가는 원동력임을 실감합니다.  

철부지도 이제야 철이 드는 것일까요?




"행복한 삶이란 성공적인 노화"라고 미국의 정신과 의사 조지 베일런트가 말했습니다.

성공적인 노화란

질병이나 장애가 없이 건강하고,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신체적, 정신적 기능을 유지하고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적극적으로 인생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노화에 대한 사회 문화적 환경도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이건 우리 모두가 할 일이고요.

성공적인 노화, 즉 잘 늙어간다는 건 건강에 힘쓰고, 일하고, 모르는 건 배우고,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삶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이 되었습니다.

나이는 지천명인데 아직도 하늘의 뜻은커녕 내 앞길이 어찌 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인생의 절반이 훌쩍 지났고 앞으로의 인생 역시 쏜살같이 지나갈 거라는 사실이 자명한데

나이가 더 든다는 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까 생각하면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주름 많은 피부는 더 쭈글쭈글해져 있을 거고 찌푸린 인상에 황량한 이마를 쳐다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탓하고 있지나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곱게 늙었으면 좋겠습니다. 정확히는 밝고 건강하게 늙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유로운 마음, 중후한 멋을 잔잔하게 풍기면서 늙어가고 싶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찌푸렸던 얼굴이 온화한 미소로 평온해져 있으면 좋겠습니다.

늙어 빠질 나의 모습에 바라는 소원이 있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도 상관없으니 보는 이들이 '곱게 늙었다'라고 봐줄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남은 인생의 시작은 오늘입니다. 행복한 삶을 누리는 성공적인 노화를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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