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감의 기술 Dec 16. 2020

100일부터 100세까지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도 몰라서도 안될 것들이 있습니다. 말과 글이 그렇고요.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있죠. 바로 숫자입니다.

 사람은 숫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숫자부터 부여받습니다. 성별, 출신 지역을 숫자로 표기해 배열한 주민등록번호입니다. 이 번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의 신분을 확인시켜 줍니다. 숫자로 된 내 이름입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전환할 때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할 때가 있죠?

"어떤 숫자를 좋아하시나요?"라고.

 무슨 사연이 있든, 그냥 마음에 들었든 간에 다들 좋아하는 숫자가 있을 거니까요.


 넘버 원이라 뽐내는 1, 삼각형을 떠올리면 이해되는 안정적인 숫자 3, 행운의 숫자 lucky 7, 완전한 숫자라는 10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죽을 사(死)라고 해서 4는 기피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4를 지상의 숫자라 하여 반긴다고 하네요. 반면 13일의 금요일처럼 13이란 숫자를 싫어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8만 보면 돈이 들어온다며 엄청 좋아한다고 합니다. 화투 즐기시는 분은 3.8 광땡이라며 38을 좋아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사람 두 명이 함께 서있는 모습을 닮은 11을 좋다고 하고요. 같은 의미로 2도 좋아합니다.

 많은 숫자 중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라면 단연 7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행운의 숫자 7. 7이 두 개 붙은 77을 보면 괜히 기분 좋아지고요, 카지노에 있는 파친코는 777이 대박을 가져다주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포커의 끝판왕 세븐포커 7777.  7은 하나도 행운이고 둘도 행운이고 셋과 넷은 대박입니다. 7은 합치면 합칠수록 행운을 더 가져다주는 듯합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람과 동고동락하는 숫자가 있습니다.  그 숫자는 덧붙이지도 빼지도 않는 온전한 숫자 그대로입니다. 다름 아닌 100입니다.

 100,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일단 최초의 세 자릿수입니다. 100% 충전, 100점, 물은 100도에 끓는다처럼 완전, 완벽함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00을 고유어로 '온'이라 표현했습니다. 많다, 전부라는 의미로 온통, 온갖, 온 세상처럼 쓰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다며 큰 소리로 울어댑니다. 내가 주인공입니다. 사랑을 듬뿍 받고요. 울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밤낮이 뭔지 몰라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젖혀 부모님은 잠을 설칩니다. 그러다 100일. 100일이 지나면서 밤낮을 가리기 시작합니다. 100일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백일상을 차려줍니다. 내가 한 것은 그다지 없는데도 말이죠. 걸음마를 하며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잘 싸기만 해도 귀여움 받는 좋은 시절로 이어집니다. 어쩌면 인생의 최초 황금기가 아닐까 싶은데요, 아쉽게도 내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학교로 갑니다. 이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있습니다. "시험 100점 맞았나?"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0이란 숫자에서 벗어날 수 없고요, 늘 100을 향해 달려갑니다. 수학이 55점 만점이든, 영어가 40점 만점이든 상관없습니다. 모든 과목 점수가 더해져 100점 만점에 평균 몇 점으로 등수를 매겨 줄을 세웁니다. 이 줄을 순서대로 끊어 등수에 맞는 대학으로 보냅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체력을 측정하는 체력장이 있었습니다. 체력장뿐만 아니라 각종 체육대회에도 빠지지 않는 종목은 100미터 달리기입니다. 운동회의 꽃이자 마무리는 100미터 달리기였습니다. 100미터를 전력 질주하고 숨을 헉헉거리며 듣는 소리는 ’100미터, 몇 초 몇’입니다. 그 이후로 100미터를 뛸 일도, 뛸 수도 없기에 이 기록은 평생 기록으로 남습니다.

 100미터 달리기 1등을 하는 선수는 '지구 상에 가장 빠른 사나이'란 칭호도 얻습니다.  


 대학 입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내가 원하는 학교에 갈 수 있을까? 무슨 과에 갈까? 고민이 많습니다. 마음도 뒤숭숭합니다. 흔들리던 마음을 바로잡아주고 막판 스퍼트를 내게끔 격려해 주는 행사가 있습니다. '100일 주(酒)'입니다. 100일 주를 왜 마시는지 이유는 잘 모릅니다. 지금까지 선배들이 마셔왔으니까 따라 합니다. 이 날만은 술 한잔해도 나무라는 선생님도 없고요. 부모님도 그러려니 하십니다. 술맛도 모르면서 술을 마십니다. 100일 주를 마셔야 대학에 간다고 하니 안 마실 수도 없잖아요. 100일 주를 마신 선배들 중에 대학 못 간 사람들도 여럿 있는 걸 알면서도 마십니다. 인생의 첫 술이 100과 함께 시작됩니다.  


 연인과 만난 지 100일째 되는 날. 이날을 기념하며 데이트를 합니다. 99일도 아니고 101일도 아닌 100일입니다. 태어나서 100일 동안 살아남은 것을 추억하는 마냥 거의 매일 만나면서도 100일은 특별한 이벤트를 하며 기념합니다. 물론 100일을 지나 200, 300일, 1000일까지 가는 커플도 있지만 간혹 100일째 받은 선물이 마지막 선물인 커플도 없을 순 없겠죠.  


 골프가 한때 사치성 운동이라며 비난받은 적도 있었지만 요즘은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골프는 인생과 같다며 필드로 나갑니다. 경쾌한 드라이브, 정교한 아이언, 싱글의 필수인 퍼팅까지. 뭐든 스윙을 할 때 마음을 비우고 힘을 빼라고 합니다. 인생처럼 말이죠. 골프 초보자의 꿈은 100타 깨기입니다. 18홀을 모두를 더블보기를 하면 108타, 일명 108 번뇌에 빠져 회의를 느끼곤 합니다. 100타를 깨기 위해 오늘도 스윙을 멈추지 않습니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100과는 떼려야 뗄 수 없나 봅니다.  




 태어나자마자 부여받았던 주민등록번호는 요즘은 핸드폰 번호로 대처되었습니다. 핸드폰 번호를 이름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 현실입니다.

 내 아이의 100일을 기뻐했고 아이가 100점 맞기를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언젠가 손자 손녀의 100일을 감사하는 나이가 올 거고요. 근데 자식들이 결혼은 생각이 없다고 하네요.

 100미터는커녕 10미터도 안 되는 횡단보도를 힘껏 걸어만 가도 숨이 차오릅니다.

 우리나라 성인 1인당 1년 소주 소비량이 약 100병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100일 주를 경험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매년 소주 100병을 마셔댑니다. 소주 한 잔에 인생의 쓴맛을 달래나 봅니다.

 100점을 받고 싶었던 간절함은 이제 100타를 깨기 위한 노력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만난 지 100일을 자축하는 젊은 남녀의 청춘이 부럽기도 합니다. 사귀다가 헤어져 봐야 사람을 알게 되고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다고 조언해 주고 싶지만 그랬다간 따가운 눈초리만 받습니다.

 TV 예능 프로그램도 100회가 되면 특집 방송을 내보내고요, 1세기도 100년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100이 나타나 사람들을 잔뜩 흥분시킵니다.

 남은 날이 얼마인지 모르면서 요즘은 100세 시대라며 제2인생을 잘 살아야 한다고 연일 떠들어댑니다.

100세라는 시간이 축복일지, 재앙일지 모르니 미리부터 준비하라고 합니다만 제대로 준비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다들 지금도 먹고 사느라 빠듯한데 말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100점을 받으려고 애썼습니다.

 부자의 대명사로 불리는 100만 장자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100과 더불어 살아온 인생 여정은 이제 마지막 100을 채우는 일만 남았습니다.


 100세 시대에 나는 지금 몇 점 정도 되는 인생인지 궁금해집니다. 100점이라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남은 인생 동안이라도 최대한 점수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100세 시대에 100점 받는 인생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대도 해보면서요.

 모두들 100세 인생이 저주가 아닌 선물이기를 기원합니다.  




P.S

이 글이 브런치에 올리는 저의 100번째 글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올린 제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지만, 보다 세밀하게 퇴고 과정을 거치지 못한 글이라 송구함과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여러 작가님들의 응원과 격려가 브런치 시작과 함께 글 100편이 모일 때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겠다는 저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데 큰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내일부터는 어떻게 뭘 할지를 오늘 소주 한잔 하면서 고민해보고 싶네요.

작가의 이전글 오늘 행운(?)을 내 돈 주고 샀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