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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15. 2020

오늘 행운(?)을 내 돈 주고 샀습니다.

 행운(幸運), 좋은 운수나 행복한 운수를 뜻한다. 행운.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 뛴다.

 요즘 들어 되는 일이 없다. 하긴 지금까지 그리 잘 된 적도 없지만. 하루하루 그저 그냥 사는 게 전부이지 싶다.

 일상의 소소함을 감사하고, 가진 것을 감사하고, 살아있음에 감사하라고 하지만 뻔한 일상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떠올리면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은 돌고도는 인생에 깜짝 놀랄만한 행운이 찾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행운의 여신이 바쁘다면 행운의 자식새끼라도 보내주면 좋으련만.

 행운은 고사하고 재수라고는 없는 것 같은 내 인생에 행운이 있었는지 회상해 본다.  




 '행운'이란 단어를 내 인생에 처음 접한 건 의외로 빨랐다.

 초등학교 때였다. 행운보다 딱지치기에 관심이 많았고 만화책 보며 낄낄대기만 해도 세상 부러울 것 없던 코흘리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편지라곤 국군 아저씨에게 (강제로) 위문편지를 쓴 게 전부였던 나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되었으며~'로 쓰인 첫 문장을 읽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읽을수록 겁이 났다. 이 편지를 다른 사람에게 전파할 것이며 이를 따르면 행운이, 그렇지 않으면 불행이 온다는 협박 아닌 협박이었다. 케네디는 편지를 무시하자 며칠 뒤에 암살당했고, 어떤 사람은 편지를 썼더니 복권이 몇 십억 당첨됐다며 4일 내로 7명에게 전달하라는 일방적인 지시를 담은, 이른바 행운의 편지였다. 컴퓨터는커녕 타자기도 없었다. 혼자 끙끙 앓으며 7통을 써서 아무 집에 몰래 넣고는 행운이 찾아오기만을 (진짜로) 기다렸다. 같은 편지를 받았던 친구 녀석은 7통을 다 쓰자마자 다음날 행운을 또 받았다며 울었다. 기쁨에 겨워 우는 건 아닌 듯했다.  


 머리가 커지면서 행운을 부를 수 있다는 행동을 가지가지하고 살았다.

 새해 첫날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엄동설한 꼭두새벽, 동네 뒷산을 기다시피 올라가 일출을 보며 벌벌 떨었다. 이빨은 쉴 새 없이 부딪히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빌었건만 새해 소원은 평생소원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새해 첫날 새벽을 놓치면 정월 대보름에 보름달을 보며 빌었고, 그마저도 놓치면 패자부활전인 마냥 추석 한가위 보름달을 보며 빌었다. 신께서 기회를 여러 번 주시려고 애를 쓰신 듯하다. 일출을 보며 비는 태양도 정월 대보름, 8월 한가위 대보름달도 달랑 하나뿐이지 않은가. 소원을 비는 인간들은 한둘이 아닐 터, 내 소원이 이루어지려면 아직도 멀었단 말인가. 몇십 년을 기다렸는데 언제쯤 내 순서가 올까? 오기는 할랑가.


 기다리다 지친 몇몇 친구들과 의기투합하여 밤하늘의 별을 보며 빌기로 했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빌면 효험이 신통하다고 해서 눈에 불을 켜고 기다렸다. 별똥별을 보며 우와~ 아름다운 우주쇼에 할 말을 잃었고 소원 비는 것도 까먹었다. 다음 별똥별은 몇십 년 뒤에 온다는 말에 허탈했다.

 선선한 가을, 천고마비 계절의 절정에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려 한다. 떨어지는 첫 낙엽을 한 번에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에 점프만 수십 번을 하다 허리가 삐끗했다. 행운을 잡으려다 사람 잡을 뻔했다.

 올겨울 내리는 첫눈을 맞으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행운도 온다고 해서 일기예보에 귀를 쫑긋하며 기다렸다. 자고 일어나니 이미 세상은 하얀 눈으로 뒤덮였다. 젠장.


 대자연을 보며 숱하게 행운을 빌었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이런 말을 하면 아직까지 건강은 쓸만하고, 찌든 세상에 지금까지 버텨내고, 막막한 현실에 그래도 소원을 비는 희망이 있는 것만으로 괜찮지 않냐고 반문한다. 그럼 그렇게 사는 사람들은 더 큰 행운은 기대하지 말라는 말인가.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는 게 이럴진대 행운을 비는 것도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란 건지. 조용히 혼자 기다리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나 싶었다.

 어쨌든 일개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왜 소원도 안 들어주고 행운도 안 주느냐며 따져 물어본들 공허한 외침일 뿐, 시원한 해답을 들은 적은 없다. 달도 별도 태양도 조금은 미안하니 꿀리는 게 있겠지.  




 행운을 기다리다 지쳐 직접 찾아 나서기도 했다.

 행운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착한 일을 많이 하고 남에게 베풀고 겸손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면 복을 받는다고 한다. 어릴 때는 '그렇구나' 했지만 세상을 오래 살다 보니 나쁜 일만 하고 살아도 나보다 더 떵떵거리며 잘 살고, 갑질에 진상이라고 손가락질받는 인간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잘만 사는 걸 보고 도덕에 회의가 생겼다. 세상에는 분명 착한 사람이 훨씬 많은데 이론대로라면 착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내 눈엔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되려 호구 취급받을 때가 많으니 내가 배운 세상이 아니든지 아님 변했나 보다.


 액운을 막아준다는 부적도 삼재 때마다 붙이고,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목걸이는 한 번도 목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결혼반지를 서랍 속에 넣어두고 행운을 부른다는 반지도 끼어봤다. 그럼에도 행운은 개뿔. 오지도 않는 행운이 미워 배신을 때렸다. 홧김에 돈 반지로 바꿔 끼워도 봤지만 돈도 개뿔.

 행운 반지. 행운 목걸이만 있는 줄 알았는데 행운이라는 이름은 우리 주변에 흔하디 흔했다. 행운 고양이. 행운 소, 행운 돼지. 행운 용. 행운 코끼리. 웬만한 동물에 죄다 갖다 붙이는 게 행운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기엔 사랑도 아니고, 행복도 아닌 행운뿐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사람들이 행운에 목을 매단다는 의미 아니겠는가.


 돈 반지를 껴도 돈은 안 들어와 살기 팍팍하고 행운 목걸이를 걸고 행운을 기다리는 동안 목만 뻐근하고 아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정월과 팔월대보름만 바라볼 수 없고 언제 떨어질지 모를 유성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행운이 뭔지도 모르는 동물을 찾아가 붙잡고 행운을 달라고 조른다면 동물이나 나나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그런 나를 어떻게 보겠는가.

 인간이 행운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면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행운을 찾지 않았을까? 찾을 수 없으니 행운의 여신이니, 기적 같은 행운이니 하는 말들이 인간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 행운은 마음을 비우고 기다려야 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언젠가는 행운이 오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해 오늘 행운을 내 돈 주고 샀다. 행운을 줄 때까지 옆에 두고 행운 좀 달라고 조를 수 있다. 덤으로 건강도 지켜주는 행운이라고 하니 눈 딱 감고 이번 한 번만 믿어보기로 했다.  

 마침 이름도 행운(木), 뜻도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한다. 이 녀석이 언제 행운을 가져다주겠다는 말은 아직 없다. 녀석도 꽃을 피우기도 한다는데 7년에 한 번 정도, 그래서 언제 필지 모른단다. 지 꽃도 언제 필지 모르는 녀석한테 행운을 기대해도 될까 의심이 생긴다. 하지만 꽃이 먼저 필까? 행운을 먼저 가져다줄까? 내기하며 기다려도 꽤나 흥미진진할 것 같다.


 행운이 안 온다 싶으면 행운을 달라고 협박? 할 수도 있으니 스트레스는 덜 받겠다 싶다. 보기만 해도 은근 마음이 안정되고 기분도 좋아진다. 게다가 공기 정화는 물론 제습 효과도 있다고 하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듯싶다.

 행운을 가져다줄 때까지 내 옆에서 신선한 공기는 주야장천 줄 거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운을 기다려도 덜 억울할 것 같고.  

 여름을 좋아하는 녀석이라 한겨울에는 찬바람을 쐬면 안 되고, 그렇다고 여름엔 햇볕을 직접 받으면 잎이 노래지니 주의하란다. 자식, 행운을 주는데 뭐 이리 까탈스러운지. 하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데 그깟 게 무슨 대수랴.  


 이 글을 쓰는 지금 바로 옆에서 행운목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쳐다만 보지 말고 얼른 행운 좀 가져오라고 째려본다. 행운목. 근데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지금, 녀석은 행운은 몰라도 행복은 가져다준 건 아닌지 모르겠다.

 행운도 좋지만 너도 네 꽃을 활짝 피우렴. 그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줄 테니. (그렇다고 행운을 까먹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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