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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14. 2020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천 원짜리 마스크


 아침에 집을 나섭니다. 제법 쌀쌀한 찬 바람이 오늘따라 기분을 좋게 합니다. 늘 같은 시각에 나와 같은 곳을 가는데 바람이 이렇게나 상쾌했나 싶은 순간, 아차차 마스크를 깜빡했네요.

 회사로 들어가는 출입문, 평소와 달리 엘리베이터까지 손쉽게 갑니다. 늘 북적거리고 기다렸는데 오늘은 웬일? 인가 싶은 순간 뒤에서 나를 부릅니다. ”저기요, 열 재고 가세요.”

 마스크 없이는 어디도 다니지 못하고 열을 재지 않고서는 어디든 들어갈 수 없는 요즘입니다. 마스크는 필수품을 넘어 항상 하고 붙어있어야 하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어릴 때 재미있게 본 레슬링 만화가 생각납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선수가 등장했는데요, 마스크는 호랑이 얼굴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일명 ‘타이거 마스크’였죠. 우리나라 박치기의 왕 김일 선수와 붙으면 누가 이길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만화가 인기를 끌었고 만화 주제가도 히트를 쳤습니다. 아직도 멜로디가 귓가에 맴돕니다. 가사 대부분은 까먹었지만 마지막 끝부분만큼은 잊을 수 없습니다. ‘타.이.거. 마.스.크~’로 끝난 그 부분을요. 내 기억에 남아 있은 최초의 마스크입니다.


 철부지 꼬마 때는 감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코를 줄줄 흘리고 다녔던 애들이 꽤 있었고요. 그때는 왜 다들 그렇게 흘리고 다녔는지. 감기가 들어 기침을 콜록콜록,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어도 마스크를 쓰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라 마스크는 언감생심이었으니까요.


 중,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TV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시위, 집회로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였죠. 이른바 데모는 연일 계속되었고 시위를 하는 장면은 매일 방송되었습니다. 다들 마스크를 쓰고 구호를 외칩니다. 도망치는 시위자들도, 잡으러 가는 전경들도 마스크를 썼습니다. 최루탄이 여기저기 터지는 살벌한 데모 현장이었죠. 데모는 훗날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대학을 진학했지만 군사독재 타도라는 구호는 여전했습니다. 학교는 데모로 인해 휴업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죠. 대학 광장에는 시위를 나서는 학생들이 모이고 전경들은 교문 입구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시위가 과격해지면 전경들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전경들이 타고 온 버스에 학생들을 잡아 마구 실었습니다. 일명 '닭장차'라 불렀던 버스였습니다. 최루탄 가스가 독해서 마스크를 끼면 적극 가담자로 오해받아 끌려가기도 했고요. 우연히 지나가다 영문도 모른 채 붙들려 간 재수생들도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끼고 싶어도 낄 수 없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한동안 마스크는 잊고 살았습니다. 가끔 범법자들이 방송에 나올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는 게 마스크라고 생각했죠.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들이 카메라 앞에서 꼭 착용한 게 마스크와 모자였으니까요. 심지어 현금인출기는 마스크를 쓰고 돈을 찾으려면 인출이 안되게 만들었습니다. 마스크를 끼지 않아야 떳떳한 사람으로 봤고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혹시? 하는 의심을 품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이웃 나라 중국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그전까지는 기상청에서 건조, 바람, 홍수, 태풍에만 붙였던 주의보를 황사와 미세먼지까지 확대했습니다. 하필이면 놀러 가기 가장 좋은 봄과 가을에 몰려오는 황사,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렇다고 조그만 나라가 세계 1위를 넘보는 큰 나라를 보고 뭐라고 할 수도 없으니 힘없는 백성들은 그저 마스크 하나로 이겨낼 수밖에요.  

 

 그런 마스크가 올해는 한시라도 떼어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고생도 했습니다. 가격이 몇 배로 뛰어도 구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고 마스크 달랑 몇 장 사려고 몇 시간 동안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마스크가 없이는 대중교통을 탈 수가 없고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웬만한 건물에는 들어가지를 못합니다. 한여름에 땀이 비 오듯 흘려도 마스크만은 반드시 해야 했죠. 비에 맞아 눅눅한 마스크로 숨이 더 차오르기도 하고요, 잠시 풀어 한쪽 귀에만 걸었던 마스크가 그 틈에 불어온 세찬 바람에 날려가는 황당함도 겪었습니다. 결혼식장에서는 마스크를 낀 채 하객 사진을 찍는 진풍경도 연출했습니다.

일 년 내내 이 답답한 마스크 좀 벗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전 국민의 바램이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마스크는 사람들의 얼굴에 걸려 있습니다.  

 

 식당에서 밥 먹다가, 친구들과 수다 떨다, 지인끼리 여행하다 확진자로부터 감염이 되었다는 소식은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고 전국적으로 빠르게 번지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웃집에서,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니 불안함은 점점 커져만 갑니다.

 어떤 사업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확진자가 감염된 사실을 모른 채 하루 종일 근무를 했습니다. 확진자는 일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마스크를 풀지 않았고요. 하루 내내 같이 일하고 있었음에도 그 사업장은 확진자 외에 추가 확진 사례는 없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내버스 타고 가다, 전철 타고 이동하다 감염자가 생겼다는 뉴스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 없습니다. 손 씻는 것도, 사회적 거리 두기도 중요하지만 가장 강력한 방어수단은 마스크가 아닌가 싶습니다.   



 

 타이거 마스크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민주화 운동하면 빠질 수 없는 장면이 최루탄과 마스크가 아닐까 싶습니다. 누런 황사와 하늘을 뿌옇게 만드는 미세먼지로부터 건강을 지켜준 마스크가 지금은 바이러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답답하기만 한 마스크가 정말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잠시 물품 대란이 있어 품귀 현상도 빚었지만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착용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고요, 무겁지도 않은 마스크 하나로 건강을 지킬 수 있으니 말입니다.  


 답답함이 1년 동안 이어지지만 그동안 안심하며 지낼 수 있었던 건 마스크 덕분입니다. 마침 겨울이고 하니 보온에도 한몫합니다. 지긋지긋하다고는 생각은 그만하고 오늘도 건강을 위해, 내 주위 사람을 위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립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아름다운 대화도, 반가운 포옹도 아닌 천 원짜리 마스크라는 사실을.  



P.S 마스크의 장점 하나. 마스크만 쓰면 잠시 밖에 나갈 때 세수 안 했어도 부담이 훨씬 덜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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