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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11. 2020

이해는 Yes, 기대는 No.

남을 이해한다는 건

혼자 살면 외롭다고 합니다. 사랑도 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기대며 의지하고 싶습니다. 당연히 행복하게 살고 싶고요. 무엇보다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막상 둘이 살면 괴롭다고 합니다. 콩깍지가 씌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단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요. 살아온 환경, 사고방식이 다르니 둘이 맞춰 사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셋이 살면 나을 줄 알았는데 시끄럽다고 합니다. 말없이 새근새근 잘 때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지,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젖히고 놀아달라고 달라붙을 때는 두손두발 다 들게 합니다. 옆에서 수시로 해대는 잔소리도 한몫하고요.

넷이 살면 말할 기운도 없습니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으니까요. 아무리 가족이지만 여러 명이 부대끼는 게 귀찮고 번거롭고 피곤할 때가 많습니다. 먹여 살리려니 허리가 휘어지고요. 삶의 무게가 이리 무거운 줄 미처 몰랐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나를 이해해 주는 이가 없습니다. 항상 뒷전입니다.


가족이 이럴진대 타인과의 관계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눈만 뜨면 멈추지 않은 경쟁에 내몰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오늘도 이어집니다.

특출 나게 잘나지 않았다면 조용히 앞사람만 보고 따라가는 처세술이 가장 안전하다고 확신합니다.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아닌 이상 모나게 행동해서도 곤란하고요.

이러니 평소에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감정에 휘둘리며 타인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아주 가끔 반항을 합니다. 반항이라고 해봐야 인상 좀 찡그리고 말문을 닫는 정도죠.

그래 본들 "어휴, 왜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

또는 "속 시원하게 말 좀 해. 이래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

반항 같지도 않은 반항은 갖가지 간섭과 어쭙잖은 충고만 불러옵니다.

머릿수만 채우는 그저 그런 존재인가 싶고요, 이해받을 곳은 어디에도 없는 듯합니다.


부부나 부모 자식 간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얼굴 붉힐 때가 자주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의미 없는 말 하나가 사소한 오해를 불러오고요, 진심이 왜곡되어 곤란을 겪기도 합니다. 크나큰 실망으로 이어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지식은 얻을수록 교양이 되고 경험은 쌓을수록 지혜가 된다고 했는데

사람은 대할수록 이해는 멀어지고 사람을 겪을수록 오해만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저마다의 사람을 대하기가 쉽지 않고 이미 꼬인 갈등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고, 사람 때문에 가장 힘들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서로 이해하는 관계가 되면 관계는 끈끈해지고

서로 이해관계가 되는 순간 관계는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 우호적이지 못한 이유는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이해의 정의를 찾아보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남의 사정을 잘 헤아리려면 먼저 남을 자신처럼 바라보라고 합니다. 자신처럼 대해야 상대방의 사정을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서 말입니다. 자신처럼 보면 남들은 모두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상대에 대한 이해력이 풍부합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만, 사람들은 모두가 다르기에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환상 같은 건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모두를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입장에 따라 생각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행동은 천차만별입니다. 설령 입장이 같을지라도 생각은 다를 수 있고요, 대처 또한 제각각입니다.

그러니 모두가 내 마음 같을 거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하지 않는 게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자신과 꼭 같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할 줄 알아도 사람 대할 때 근거 없는 기대는 접을 수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죠.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추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은 아닌 듯합니다.


“이해하는 것이 먼저이고 이해받는 것은 나중이다.”라고 한 스티븐 코비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 이해입니다. 이해받는 것은 나중이지만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자신도 이해받게 될 거라 믿어봅니다. 당장 이해해 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서로 이해하는 관계는 이렇게 만들어지고 끈끈하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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