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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Dec 09. 2020

착하게만 살고 계십니까?

착하다는 의미

학교 갈 때 부모님이 하신 말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착한 사람이 되어라.'

혼잡한 버스 안에서 할아버지께 자리를 양보해 드리면

'거참, 착하네.'

집안일을 도와주면 엄마가 하는 말씀은

'아이고, 내 아들. 착하네.'

학급 일을 먼저 맡아서 하면 선생님의 칭찬.

'참 착한 학생이다. 다들 본받아라.'

회사에서 상냥하게 시키는 일을 잘하는 직원을 보고 하는 말.

'이번 신입은 정말 착하네.'

조폭들이 모여 서로를 격려하며 써 붙인 말.

'차카게 살자'


"착하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들어왔던 교훈이자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로부터 수없이 들었고 어른이 된 지금은 아이에게 수없이 되풀이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지는 말, ‘착하다.' 그 뜻은 무엇일까요?   




 '착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어질다',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나와있습니다. '마음씨가 곱다'라는 건 성질이나 태도가 까다롭지 않거나 고집스럽지 않다는 뜻이고요. '어질다'라는 의미는 ‘말과 행동이 부드럽고 바르고 모나지 않은 상냥함‘이라고 하네요.

 쉽게 풀이하자면 '착하다' 정의는 말을 하든 행동을 하든 부드럽게, 고집 피우지 않고, 성질부리지 말고 상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학교 다닐 때 오지게 야단 듣고 죽어라 벌을 서더라도 선생님 말씀이면 '네'하며 복종하고요, 친구들 사이에도 까다롭게 굴어서는 안 되고, 부모님께 고집부려도 안 되고, 사회생활할 때도 성질 죽이고 살면 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하다 보면, 살다 보면 불평불만이 없을 수 없을 텐데 말입니다.

 부당해 보여도, 불만이 생겨도 군말하지 않고 무조건 'YES'라고만 하고요. 자기 것은 뒤로 미루고 먼저 타인을 위해, 조직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고요. 순종적이고 순하고 조용히 있는  착한 거라면 성인군자나 가능하지, 평범한 보통 사람은 따라 하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자신의 사고는 철저히 배제해야 하니 스트레스만 쌓이고요, 자칫 마음의 병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어떤 점을 보고 착하다는 말을 쓸까요? 나는 언제 착하다는 말을 하는지 생각해봅니다.

 아이에게 착하다고 말할 때, 직장 동료나 후배에게 착하다고 칭찬할 때 나의 심리는 무엇인지 파악해 봅니다.

 아이가 장난감 가게 앞에서 사달라고 조르고 떼를 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 창피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아들. 착하지. 나중에 사줄게'라고 달랩니다. 무슨 심리인가요? 울고 떼쓰지 않고 내 말 잘 들으면 착하다는 의미겠죠.

 학교에서 성적을 우수하게 받아왔을 때 뭐라고 하십니까? '아이고, 착한 우리 딸, 수고 많았다'라고 합니다. 그럼 공부만 잘하면 착한 건가요? 공부 잘하기를 바라는 기대를 충족시켰으니 착하다는 칭찬이 절로 나온 거죠.

 직장 후배가 일을 알아서 척척해놓았습니다. 그러면 '00는 정말 착한 직원이다. 믿음이 간다.'라고 칭찬합니다. 일만 척척해놓으면 착한 건가요? 일을 잘하기를 바라는 기대대로 해냈을 뿐만 아니라 못한다고 내빼지 않고 무조건 ‘예’라고 대답하고 시키는 대로 일을 완수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착하다고 말할 때는 '나한테 이익이 된, 이익이 되는 사람'이라는 기대를 충족시켰을 경우입니다.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학생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에게, 말 잘 듣는 아이에게, 일 잘하는 직원에게 이 말을 건넵니다. 남에게 봉사하고 남을 배려하는 행동이니 아름다운 모습이자 당연히 착한 행동입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복종을 원하거나, 누군가를 이용하기 쉽다는 말을 착하다는 말로 포장하기도 합니다. 내 말이면 잘 따르니까, 내 부탁은 거절하지 않으니까, 나에게 도움이 되니까 그 사람을 착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야 다음에도 부탁하고 도움받을 수 있으니까요. 심하면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도 있고요.

 A에게 도움을 준 B는 착하지만 A에게 도움이 안 된 C는 착하다는 말을 듣지 못합니다. 누구나 착하다고 여기는 사람일지라도 상황에 따라서,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일관되게 듣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부드럽고, 상냥하게, 성질 죽이고, 까다롭지 않게 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착하게만 사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착한 척하며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인정받을 수 있으니까요.

 수업 시간에 장난치다가 선생님에게 걸리면 수업에 집중하는 척합니다.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니까요.

집안 문제로 아무리 마음이 심란해도 직장에선 괜찮은 척합니다. 괜한 성질을 부렸다간 기껏 쌓아놓은 좋은 평판이 날아갈까 싶어서요.

 회사에서 술 만취가 되어도 딱 한잔했다고, 어쩔 수 없이 끌려다녔다고 오리발을 내밉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한 착한 척하는 남편의 변명입니다.

 동료와 심하게 다투었다가도 곧 이은 고객 응대는 억지로 밝은 미소를 띠는 척합니다. 친절한 이미지, 착한 이미지를 지켜야 하니까요.

 상사에게 개무시를 당한 뒤에도 내 가족 앞에선 약한 척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도 걱정하는 부모 앞에선 안 그런 척합니다. 좋은 남편이자 착한 아들이니까요.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얼토당토않은 불만을 들어도 상사 앞에선 복종하는 척합니다. 착한 직원이니까요.  

 



 “사는 건 끊임없는 연기다.”라고 했습니다.

 착한 척도 해야 하고 착하다고 칭찬할 사람도 찾아야 하니까 연기도 필요합니다.

 “인간은 단 하루도 연기를 하지 않고 살 수 없다.”라는 말처럼 어쩌면 착하게 사는 건 착하다는 말을 듣기 위한 연기일지 모릅니다.

 착하다는 말은 반드시 칭찬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착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칭찬으로 합니다만 실제 이유는 착하다고 명명하는 마음에는 이기적인 욕심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욕심을 만족시켜주지 못하면 착하다는 말을 할 이유는 없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면 착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나 과도한 칭찬, 여기저기 칭찬하는 목소리를 많이 들을수록 자신을 위한 삶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 착한 이미지만 고집하지 마시고 힘들면 힘들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솔직히 표현하며 사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먼저 행복해지고 싶다면 착하다는 말을 칭찬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눈치도 좀 그만 보고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오늘도 착하게만 살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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