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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ul 01. 2021

버지니아 울프에게 한 수 배운 글쓰기의 비법

 글을 쓰고 싶습니다.

 무슨 글을 쓰고 싶냐면 누구나가 읽고 감동받는 글이면 좋겠습니다.

 내가 겪은 아픔과 슬픔이 글이 되어 다른 이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되고, 내가 쓴 재미있는 글이 읽는 이들에게 커다란 웃음을 선사하고요. 내가 상상으로 쓴 글이 보는 이들의 상상력도 자극해 감탄을 자아내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꿈이 너무 야무진가요? 그래도 꿈은 크게 가지라고 하잖아요. 


 글을 쓰려고 준비합니다.

 글 잘 쓰는 방법을 다룬 책은 기본으로 읽었습니다. 글쓰기 강의도 틈틈이 듣습니다. 글감을 모아야 하니까 글감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지난 일들은 기억을 더듬어 불러오고요,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밑줄을 그어가며 필사를 합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음악을 듣다가 번쩍, 이야기를 하다 이거다! 하며 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얼른 메모하는 건 필수이죠. 재미있게 들은 에피소드도 그 자리에서 바로 기록해야 합니다. 몇 분만 지나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까요. 


 글을 씁니다.

 메모해 둔 글감을 펼쳐 놓고, 머릿속에 들어있는 내용도 끄집어내면서 드디어 자판을 두드릴 준비를 마칩니다. 마음이 설렙니다. 왜냐고요? 내가 정성을 들이고 머리를 굴려서 쓴 만큼 한 문장 한 문장들이 소위 주옥같은 멋진 글로 탄생하는 순간이니까요.

 빛의 속도로 현란하게 움직이는 손가락, 고요한 사방에 들리는 소리라곤 잠시도 멈추지 않는 자판 두드리는 소리, 몇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몰입감, 한 편의 글이 완성된 그 순간의 뿌듯함. 생각만 해도 황홀하지 않나요? 


 다들 이 맛에 글을 쓰려고 합니다만 그런 적이 얼마나 되나요? 요즘은 언제 있기나 했는지 가물가물합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높은 이상을 가질수록 현실은 마치 비웃는 듯 냉정하기만 합니다. 글쓰기도 예외일 리 없습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간절합니다. 잘 써보겠다는 결심도 단단히 합니다만 준비부터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단단한 결심보다 답답한 마음이 부지기수죠.

 일상이 모두 글감이라며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고 겪는 일거수일투족이 글감이 된다고 합니다. 그 말 대로라면 세상천지에 글감이 널려 있다는 얘기인데 왜 나는 늘 글감 찾아 삼만 리를 헤매고 있을까요?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두 귀를 활짝 열어 정신 바짝 차려 세상을 두 발로 돌아다니고 있으면서도 뭘 써야 할지를 모르는 나는 무엇이 문제일까요?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어쩌다 문득 스치고, 번쩍 생각나고, 이거다! 하고 떠오른 아이디어를 신나게 기록했습니다. 근데 쓰려고 다시 들여다보면 왜 이리 시원찮게 보일까요?

 열정에 탄력을 받아 빛의 속도로 문단 하나를 완성했지만 그다음 문단부턴 왜 거북이걸음만도 못할까요?

 고요한 사방에 울려 퍼지는 소리라곤 팍팍 쉬는 내 한숨뿐일까요?

 무슨 연애편지 쓰는 것도, 비장한 출사표를 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몇 시간 동안 썼다 지웠다만 하고 있을까요? 


 글이 제대로 써지질 않아 고민합니다. 그래도 애써 한 편을 꾸역꾸역 다 쓰곤 합니다. 물론 즐겁게 쓴 적도 있습니다만 자고 일어나 다시 읽어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어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어디 잘 쓰는 방법이 없을까, 고수의 비법이 있다면 커닝도 불사할 태세입니다.

 그러다 우연히 한 소설가의 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한 세기 전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이자 비평가였습니다. 그 당시 여자라는 신분으로 글을 쓰기란 쉽지 않았던 시대였죠. 그럼에도 그녀는 제목만 들어도 익히 아는 명작들을 숱하게 남겼습니다. 그녀의 작품과 일상을 들여다보면 서평, 에세이, 편지, 일기, 강연할 것 없이 엄청나게 많은 작품을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써 내려갔다고 전해집니다. 그녀가 생전에 남긴 작품도 많지만 사후에도 끊임없이 발견되는 에세이, 논평, 자서전, 일기와 편지까지 그녀의 작품 규모를 보면 정말이지 어마 무시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주위에 따가운 시선과 편견, 그로 인한 심각한 우울증과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그녀는 매일 글 쓰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다름 아닌 버지니아 울프입니다.  




 그녀가 쓴 일기에 혹시나 놀라운 글쓰기의 비법이 있을까 싶어 일기를 펼쳤습니다.

 36살부터 59살까지 쓴 일기 중에서 1931년 그녀가 쉰 살에 쓴 일기를 펼치니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글을 쓴다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 


 일기를 써내려 온 연도만 따져도 10년은 훌쩍 넘게 써온 글일 텐데, 이 정도면 글이 술술 나오는 경지에 도달했을 법한데 대가도 글을 쓴다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고 하니 의외였습니다. 한편으론 위로와 용기가 되는 글이었습니다. 오히려 글쓰기를 어렵다고, 글감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투덜거린 나 자신이 글쓰기를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글 쓰는 게 점점 힘들어진다고 했는데 이후에는 어땠을까 싶어 2년 뒤의 일기를 펼칩니다.

 '머리가 제대로 작동할 때는 기운이 넘치는 걸 느낀다. 그러나 여기에는 부단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머리가 제대로 작동할 때는 당연히 기운이 넘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이 역시도 부단한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 말처럼 그녀의 글쓰기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고치고 또 고칩니다. 더 이상 고칠 수 없을 때까지 고쳐 쓰는 시간들이야말로 고뇌의 시간들이었을 겁니다. 고뇌의 시간은 끈기와 성실함으로 견뎌냈을 테고요. 


 어디 비단 글 쓰는 사람들만 그런가요? 이름을 남긴 유명인뿐만 아니라 음악 하는 사람도, 장사하는 사람, 살림하며 자식 뒷바라지에 여념 없는 사람, 자기 몸을 움직이면서 일하는 사람들 모두가 울프 같은 그런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살아가는 데 저절로 얻어지는 게 얼마나 있겠습니까?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만 뭐라도 이루려면 간절히 원함은 기본이고, 보다 더 많이 노력하고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문학사의 한 획을 그은 버지니아 울프도 글쓰기가 어렵다고, 글을 쓰고 고치고 또 고치는 끈기와 성실함으로 글을 썼는데 적어도 그만큼의 성실함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단히 노력이라도 하려는 의지는 있었는지 스스로를 반성하게 합니다. 


 '지혜가 부족해서 일에 실패하는 경우는 적다. 부족한 것은 성실이다'라고 한 디즈레일리의 말처럼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결실은 없다'라는 그라시안의 당연한 말처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이제부터는 성실한 습관부터 길러야겠습니다.

 공부 잘하는 비결은 엉덩이의 힘이라고 하듯이 한두 줄 쓰고 나서 안 써진다고 투덜대지 말고 그럼에도 눌러앉아 한두 줄 더 꾹꾹 써 내려가는 꾸준함을 가져야겠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없다고 하더라도 버지니아 울프처럼 그런 성실함이라면 세상에 아주 부끄럽지는 않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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