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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Jan 07. 2022

休, 브런치 잠시 휴무에 들어갑니다.

 검색을 해봤자 나오지 않는 허름한 가게이지만 이 동네 근방에서는 엄청 유명한 맛집이 있습니다. 입소문으로 사람이 끊이질 않는 동네 시장 끝에 있는 작은 갈비탕 집,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늘어섭니다. 조그만 식당이라 테이블도 몇 개 없습니다. 더군다나 요즘은 때가 때인 만큼 먹고 가는 손님은 받지 않고 포장만 가능한데도 사람들로 줄은 끊이질 않습니다.

 장사가 잘되어 예정보다 일찍 문을 닫으면 가게에서 주인이 나와 고개 숙여 사과를 하며 이런 문구를 붙이곤 합니다.

 '준비한 재료가 소진되어 더 이상 음식이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주인 백.'


 문을 연 지 몇 시간 만에 동네 맛집이 문을 닫는 이유, 하루 정해진 양 그 이상은 만들지 않겠다는 가게 사장님의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최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최선의 방법으로 정성을 다하는 일, 무리한 욕심은 버리고 프로페셔널 정신을 잊지 않는 마음가짐,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허다하더라도 그 가게 앞에 매일같이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입니다.  




 한때 인터넷에서는 이런 문구가 유행이었습니다.

 '준비한 체력이 소진되어 더 이상 일이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주인 백.'


 나이 들면 체력이 떨어져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아, 몸이 예전 같지 않다"라고요.   


 살면 살수록 체력이 뭔지를 알게 됩니다. 체력의 소중함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날밤을 샌다고요?' 나이 들면 힘듭니다.

 '미룬 일을 몰아서 밤새 한다고요?' 아, 그런 거 안됩니다.

 설령 날밤을 새더라도 다음날부터 며칠은 고생을 하니까 무리해봤자 도움이 안 됩니다.  


 비단 체력뿐만이 아닙니다. 기력, 박력, 활력, 동력 같은 몸을 지탱하는 압력이 하루가 다르게 뚝뚝 떨어지는 게 세월의 힘이겠죠. 그러니 체력이 소진되면 활력을 잃게 되니 기력을 회복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래야 살아갈 동력이 생기니까요.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하지만 체력은 다릅니다. 체력은 숫자가 늘어날수록 더 철저하게 관리를 해줘야 프로페셔널한 삶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날짜로 브런치 제 방은 잠시 휴무에 들어갑니다.

 평소 동경했던 해외로 몇 달 떠나는 여행도, 출판사에서 제안을 받아 책을 쓰는 작업도 아니고, 나라를 구하려 뛰어드는 건 더더욱 아닌 제 일신상의 이유입니다.


 짧게 말씀드리자면 그저께 추운 날씨에 계단에서 미끄러졌습니다. 4칸 밖에 안 되는 짧은 계단인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르내리는 계단인데 이런 황당한 일이 생기네요. 그리고 진짜 창피했습니다.

 호주머니에 두 손 넣고 있었던 게 화근, 넘어지면서 본능적으로 두 손을 뺐지만 낮은 높이라 손을 미처 펴지 못하고 몸은 육중하다 보니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골절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4주 동안 깁스를 해야 하고, 초반에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손가락이 고정되지 않으면 핀을 박는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하니 지금은 관리에만 신경을 쓰려합니다. 수술 여부는 조만간 결정될 예정입니다.


 그저께 오후부터 왼손으로 생활합니다.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네요. 밥도 왼손, 양치질도 왼손, 운전도 왼손. 타이핑도 주로 왼손만 하고 오른손은 거들뿐입니다. 깁스 한 사람을 보면 아프고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난생처음 골절을 당해보니 동병상련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 글감은 손으로 필기하고 이것저것 아무렇게나 메모하는 스타일이라 글감 모으는 작업도 일단 스톱, 예전에 작성한 글을 수정해서 몇 편 올려볼까 고민했습니다만 이틀 동안 여러 작가님들 댓글 달고, 주신 댓글에 답글을 달아보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왼손과 오른손 손가락 하나로는 감당이 안될 것 같습니다.

 손으로 쓰는 일이 많은 직업이라 브런치까지는 자칫 무리일 수 있겠다 싶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휴무를 하는 게 낫겠다는 판단입니다.


 그동안 소통해 온 여러 작가님 글은 열심히 읽을 생각입니다.

 다친 부위가 생각을 못하는 머리도 아니고 꼼짝도 못 하는 허리도 아닌 데다가 아직은 통증도 견딜만합니다. 손을 쓰지 못할 뿐, 심심해서라도 읽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의의 손가락 부상으로 일일이 댓글을 달지 못하더라도 이해해주시고 성심성의껏 읽겠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액땜했다'라고, '올해는 진짜 좋은 일이 있겠구나'라고 그렇게 위로하는 동료들의 말을 믿으며 불편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창의적이 되려면 안 쓰는 손을 많이 써라고 하던데, 이번 기회에 왼손만 쓰는 연습을 해서 창의력도 엄청 키웠으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생각도 합니다.


 역시 건강이 최고, 이 단순한 진리를 확인하는 사고로 인해 잠시 휴무를 하지만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 옛날 어머님이 늘 당부하셨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추워도 호주머니에 손 넣고 다니지 마라, 그러다 큰일 난다."  


 저를 걱정해주시는 작가님의 마음만은 꼭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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