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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Mar 18. 2022

집은 좁아도 살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산다

밴댕이 소갈딱지

 '속이 참 좁다'라는 말,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지나고 나면 별일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왜 그리 안달하며 집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어떤 상황에서든 다 이해하고 여유롭게 받아넘기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 그릇은 왜 이것밖에 안될까?'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합니다. 


 고집이 너무 세서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기분입니다. 게다가 속은 좁아터져서 말 한마디에 쉽게 토라집니다. 이런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속 좁은 나 자신도 '욱'하며 튀어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밴댕이 소갈딱지만 한 사람 같으니' 


 막무가내로 떼를 쓰고 속 좁은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어른들은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녀석"이라며 혀를 차곤 하셨습니다. 밴댕이가 뭔지도 몰랐기에 그 말 역시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밴댕이가 고기였다는 사실은 훨씬 후에 알았습니다. 밴댕이가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도 모르면서 밴댕이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너그럽지 못하고 참을성이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부르는 ‘밴댕이 소갈딱지’. ‘소갈딱지’는 상대방의 생각이나 행동거지를 아주 낮잡아 일컫는 말입니다. ‘밴댕이 소갈딱지’는 속 좁은 행동이나 생각을 하는 사람을 비하할 때 쓰는 비유입니다.

 쪼잔하고 쩨쩨한 사람을 가리키는 밴댕이는 대체 어떤 고기이길래 속 잡은 사람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을까요? 


 청어과에 속하는 밴댕이는 몸길이가 15cm 정도로, 5~6월 산란기가 되면 살이 토실하게 올라 몸집이 가장 크고 맛도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부들은 살아있는 밴댕이를 잡을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면 잡히자마자 죽어버리기 때문이죠 용케 산 채로 올라와도 몸을 이리저리 뒤집고 파르르 떨다가 이내 죽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런 밴댕이를 사람들은 그물에 걸리면 급한 성질을 주체 못 해 제풀에 죽어버리는 거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특성으로 밴댕이는 성질이 엄청 급하고 고약한 물고기로 생각했습니다. 


 물 밖을 나오자마자 죽어버리는 밴댕이는 내장도 쉽게 상해 버립니다. 그러니 잡은 즉시 하루가 지나기 전에 내장을 빼내고 젓갈로 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밴댕이의 배를 갈라 보면 같은 크기의 다른 물고기에 비해 내장이 70-80% 정도로 엄청 작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확연히 작은 밴댕이의 내장이 속 좁은 사람과 오버랩이 되었습니다. 그물에 잡히면 금세 죽거나 이리저리 뒤집고 떨다가 죽어버리는 밴댕이를 보며 성질 사나운 사람들의 말과 행동들이 다 속 좁은 탓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말만 앞세우는 상사가, 일처리가 깔끔하지 못한 후배가 마음에 안 듭니다.

 큰맘 먹고 산 물건이, 즐겨 마시던 커피 맛이 오늘따라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자식이 말 안 들으면, 했던 말 또 하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부모님이 마음에 안 듭니다.

 어떤 날은 가는 길을 가로막는 신호등이, 맑았다 흐렸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마음에 안들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불평을 하고 짜증을 냅니다. 비판이 나오고 그러다 관계가 틀어진 경험, 다들 있지 않습니까?

 마음에 안 든다고 투덜대지만 어쩌면 기대치가 높아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내 속이 좁아서 받아줄 여유가 없었던 건 아닐까요? 속이 좁으니 들어오기가 쉽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해도 번번이 마음에 걸리게 되니까요. 


 추운 겨울이 마음에 안 듭니다. 춥다고 투덜거려 본들 더 춥기만 합니다. 겨울은 이렇게 추운 거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추워도 그러려니 합니다. 무더운 여름, 비 오듯 땀이 쏟아져도 여름이 그런 거지, 여름이 겨울일 수는 없잖아?라고 생각하면 참을만합니다.

 주말이나 명절 고속도로, 메일 출퇴근 길. 급하지 않아도 차가 막히면 짜증이 납니다. 도로는 꽉 막히고 시간에 쫓기면 더 그렇습니다. 길이 막히면 당연히 막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수월해집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말이죠. 행여 길이 빨리 뚫리거나 덜 막히기라도 하면 감사하죠. 


 말 안 듣고 제 문을 쾅 닫고 반항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이제 제 갈 길을 가는구나' 쿨하게 받아들이면 아이를 이해하는 마음이 열립니다. '미리 마음을 단련시키는 연습이다' 이렇게 받아들이면서요. 어차피 곧 어른이 되면 제 살길 찾아갈 거니까요.

 사람과의 관계에 불만이 없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인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대놓고 두 손 싹싹 비는 아부가 아닌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 말이죠. 관계가 틀어지고 실망을 하지만 '저 사람은 원래 저래'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밴댕이 소갈딱지라며 무시당한 밴댕이는 역사적으로는 양반들이 즐겨 먹었다는 민어, 패류의 제왕 전복, 썩어도 준치 같은 생선과 어깨를 견주며 임금의 밥상에 오른 귀하신 몸이었다고 합니다.

 속 좁은 고기로 알았던 밴댕이는 우리가 알지 못한 속 사정이 있었습니다. 밴댕이는 내장이 작은 데다가 수압에 약해서 물 밖으로 나오면 잘 터진다고 합니다. 그물에 잡혀 물 밖으로 나온 밴댕이는 속 터지는 고통에 못 이겨 발버둥 치는 거였습니다. 속 좁은 행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밴댕이에게 오히려 속좁다고 무시한 우리가 더 속이 좁은 존재가 아닐까요?  




 '집은 좁아도 같이 살 수 있지만 사람 속이 좁으면 같이 못 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당연한 건 당연하게, 그러려니 받아들이면 마음이 한결 편해집니다.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도 어쩌면 내 속이 밴댕이보다 좁아 그랬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마음을 비우고 넓히면 받아들일 여유가 생겨납니다. 이해와 배려가 가능해집니다. 마음이 넓어 걸리는 게 없어질 테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서로를 향해 주고받고 있을지 모를 말, 밴댕이 소갈딱지.

 혹시나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면 밴댕이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임금님의 식탁에 올랐다는 귀한 밴댕이, 나의 아량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밴댕이의 속보다 좁은 건 아닌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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