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때가 되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살 껄', '팔 껄', '뺄 껄', '할 껄'.
할까 말까 망설이다 못하거나 남들 따라 하다 후회가 될 때 '~껄'이라는 말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비단 주식하는 사람뿐이겠습니까? 아침부터 밤까지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갑니다.
하지 말 껄, 사지 말 껄, 그냥 놔둘 껄, 먹지 말 껄, 가지 말 껄, 화내지 말 껄, 기타 등등등.
말할 때마다 껄을 붙여 '껄, 껄, 껄'을 앵무새처럼 무한 반복하는 사람을 가리켜 껄무새라고 합니다.
앵무새는 말을 하는 새로 유명합니다. 사람처럼 말하지만 앵무새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흉내만 낼뿐입니다. 그러니 앵무새 입장에서는 그저 무의미한 말만 반복하는 거겠죠.
껄무새는 앵무새처럼 뒤에 의미 없는 ‘껄’을 붙인다고 해서 탄생한 신조어입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껄,껄,껄 하며 후회한 게 한두 번은 아니었을 테죠.
심한 말을 해놓고는 그런 말 하지 말 껄,
고민하다 옮긴 행동이 시원찮으면 이렇게 행동하지 말 껄,
죽느냐, 사느냐 나라를 구하는 고민도 아니면서 미련이 남으면 이거 말고 저걸 선택할 껄.
지나고 나면 밀려오는 후회로 머리를 쥐어뜯고 이불킥을 날리기도 합니다.
그때 공부 열심히 할 껄, 그때 그 사람을 잡을 껄, 그때 그 회사에 지원할 껄.
사는 지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주 오래전 학창 시절의 게으름을 소환하고, 지금 옆에 소파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잔소리를 퍼붓고, 멀쩡한 회사를 보며 원망하고 한숨을 팍팍 내시곤 합니다.
그리고 보면 사람이라는 게 알다가도 모를 불가사의한 존재 같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는 왜 열었는지 기억도 못 하면서, 보일러를 끄고 왔는지 가물가물하면서 아쉽고 후회되는 기억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왜 이리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은 뭘까?' 이런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아 금방 잊어버리면서 껄, 껄, 껄. 이 생각에는 왜 그리 집중하는지, 그런 놀라운 집중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인간이 죽기 전에 가장 후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입으로는 죽겠다는 말을 달고 살면서 아직은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기에 선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요양원에서 말기 환자들을 돌보던 간병인이 쓴 책 『죽을 때 가장 후회하는 다섯 가지(The Top Five Regrets of the Dying)』에서 시한부 환자들이 가장 후회하는 게 무엇인지를 나열했습니다.
인생의 종착역을 앞둔 환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후회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껄.'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기대와 시선에 맞추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 게 가장 후회스럽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 껄'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대부분 남성 환자들이 호소했던 후회로 직장 생활 때문에 아내, 자녀들과 따뜻한 가정생활을 하지 못한 지난날을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많았던 후회는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살 껄'이라고 합니다.
타인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고 억눌렀던 감정이 쌓여 어쩌면 지금의 `병`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네 번째는 '친구들과 연락하고 살 껄', 옛 친구들의 소중함을 아쉬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오랜 친구들이 보고파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들의 연락처조차 알 수 없어 절망스러웠다고 후회합니다.
마지막은 '내 행복을 위해 노력할 껄'입니다.
많은 이들이 오래된 습관과 패턴에 머물러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지 못했다며 자책했다고 합니다.
살아가는 이상 사람은 후회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죽는 순간까지 후회를 하니까요. 어쩌면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합니다.
후회를 남기는 대부분은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마음을 비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죠. 능력이 모자라 살 수 없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욕심, 남들과 비교해서 하나 더 가지려는 마음도 욕심, 돈, 명예, 지위를 향해 욕심을 부릴 때도 있어야 하지만 사는 내내 욕심이 지나치면 삶이 피폐해집니다.
다들 기브 앤 테이크라고 하지만 어떻게 똑같이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내가 더 줄 수 있고 내가 덜 받을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욕심이란 녀석이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미련 때문에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욕심을 부려 지금을 즐기기는커녕 집착에 빠지기도 합니다.
물론 욕심이 있어 져줄 때는 '내가 왜?' 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손해 좀 봐도 되고 져도 된다는 태도를 가지면 빡빡한 삶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학교에서는 더하고 빼는 셈법은 배웠지만 살아가는 데는 계산서가 없어야 편안하니까요.
내가 좀 손해 봐도 되고, 내가 조금 덜 받아도 되고, 상대편이 더 받아도 된다는 생각, 얼핏 바보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평상시에는 잘 갖지 못합니다. 갖는 게 어렵기도 하고요.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자신을 바보라고 불려달라고 한 故 김수환 추기경님이 생전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진짜 바보처럼 살면 세상 사는 게 편하지 않습니까?"라고요.
죽는 순간까지 '껄, 껄, 껄'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면 때때로 바보처럼 살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지만 마음의 짐은 홀가분하게 털어낼 수 있을 거니까요. 그러다 보면 껄,껄,껄. 살아가는 내내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