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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21. 2022

나이테와 연륜

나이테가 그려지면서 나무는 더 단단해집니다.

 물과 영양분이 차고 넘치거나 햇볕이 적당하면 기분이 좋습니다. 다른 이들과 경쟁하거나 공격받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렇게 행복에 겨우면 무럭무럭 자라 넓은 원을 만듭니다.

 반면 가뭄이나 한파를 겪으면 몸을 한껏 움츠립니다. 태풍이 지나가거나 산불이 난 해에는 좁은 원을 겨우겨우 그립니다. 


 봄이 오면 새살은 둘레 쪽에서 돋아나 자랍니다. 여름내 옅고 부드러운 조직이 되며 활발하게 팽창을 합니다. 추운 겨울이 오면 성장을 멈추고 진하고 두꺼운 조직이 되어 굳어버립니다. 

 일 년 내내 안쪽에 있는 세포들은 제 몫을 다하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면서 원을 그려 나가는 삶, 가로로 잘랐을 때 다닥다닥 붙은 동심원이 짙게 그려진 나이테 이야기입니다.  




 일 년에 딱 한 살만 먹는 나이처럼 일 년에 하나씩만 만든다는 나이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쁘게 그려진 원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원은 안쪽 원보다 넓게, 그다음 원은 이전보다 좁게 찌그러져 있습니다. 바깥쪽으로 뜬금없이 툭 튀어나오거나 안쪽으로 기죽은 듯 엄청 쪼그라져 있기도 합니다. 

 원은 원이지만 모양도 가지가지, 짙고 옅은 색깔도 제각각입니다. 


 거센 장대비에 나뭇잎들이 떨어지면 슬픔을 그립니다.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흔들리고 꺾이면 아픔을 새깁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으며 희망을 담아내는가 하면, 때론 분노의 선을 깊게, 절망의 원을 거칠게 새기기도 합니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무너지는 산사태를, 세상을 쓸어버리는 폭풍우를 나무는 피할 재간이 없습니다. 통째로 뽑혀 나갈 듯한 무서운 날도, 적당한 햇빛에 기분이 좋은 날도 묵묵히 한 점 한 점 그려나갑니다. 삐뚤삐뚤하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말이죠. 


 나이테만 봐도 언제 비가 많이 내렸는지, 언제 가뭄이 들었는지, 언제 산불이 났는지 알 수 있다고 하죠. 얼마나 즐거웠는지,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무는 삶의 여정을 나이테에 매 순간 담아내니까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오늘도 조금씩 원을 그려나가는 나이테, 나이테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인내 끝에 생기는 내공입니다.  




 내 생애 가장 기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에 못지않게 눈물로 보낸 최악의 시간도 있었고요. 울고불고 웃고 떠들고 화내고 받아들이는 순간들이 모여 삶이 만들어집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말이죠.

 살아보니 오늘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행복에 겨워 날아갈 듯한 날도, 서 있을 기운조차 없는 힘겨운 날도 단지 살아가는 한순간일 뿐입니다. 오늘 잘 풀린다고 까불다가 내일 낭패를 보기도 합니다. 오늘은 눈조차 뜨기 싫은 날이어도 내일은 살아있음을 너무나 감사하게 여길 지 모릅니다. 그렇게 삶의 한 장면 한 장면 가슴에 새기며 살아갑니다. 


 여럿이 껴안아야 겨우 품을 수 있는 커다란, 최소 100년은 넘게 살았을 법한 몸집 좋은 나무를 마주합니다. 어린 묘목에서 지금의 고목으로 자라기까지 변화무쌍한 희로애락을 숱하게 겪었을 테죠. 웅장하고 당당한 겉모습만큼이나 속도 꽉 찼을 것 같지만 고목일수록 속은 빈 공간이 많습니다.

 늠름하게 서 있는 나무 뒤로 다람쥐가 고개를 빼꼼 내밀다 쏙 들어갑니다. 오가는 새들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재잘대며 쉬고 있습니다. 나무속으로 다람쥐가 드나들고 새들이 오고 가는 이유, 텅 빈 공간이 보금자리이기 때문이죠. 


 속이 텅 빈 고목, 비었다는 공허함보다는 뭐든 받아 주는 너그러움과 넉넉함입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정하고 완벽한 사람보다는 빈틈이 보이는 사람이 다가가기 훨씬 편하고 어울리기 한결 수월합니다. 사람도 빈틈을 내어주는 공간을 포근함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가며 인간적으로 변해가면서요.

 고통과 행복,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한발 한발 내딛는 삶의 여정, 그래서 나무를 보며 나이테라고 쓰듯이 사람은 이를 연륜(年輪)이라고 부릅니다.  




 나무든 사람이든 세파를 겪고 공간과 틈이 생겨나면서 더 포근한 존재로 성장합니다.

 빈틈이 있어도 포근함으로 채워줄 수 있는 사람, 나이가 들어 몸은 늙고 낡아 가지만 마음은 깊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포근한 존재가 되고 싶은데 계속 살만 쪄서 푸근해지는 게 아쉽지만 마음은 넉넉함으로 가득 담으면서요. 


 오늘도 나무는 동심원에 테를 두릅니다. 사람은 나이를 먹습니다.

 나이테가 그려지면서 나무는 더 단단해집니다. 연륜이 쌓이면서 사람도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포근함으로 채우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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