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 오선지 위에 빼곡히 서 있는 음표.
글자가 모여 술술 읽히는 문장이 되고, 음표가 어울려 귀에 쏙쏙 들어오는 음악이 되려면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읽다가 지치면 쉬어 가라는 쉼표, 글자 사이사이를 잠시 생각하라는 물음표, 글을 제대로 느껴보라는 느낌표가 잘 어우러져야 읽기 편하고 머리에 오래 남습니다.
음악도 다르지 않습니다. 숨 한번 고르라는 숨표와 높낮이가 다른 음표가 조화를 이뤄 리듬감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되고 가슴을 울리는 음악으로 탄생합니다.
띄어쓰기가 없는 글은 제대로 읽을 수 없고, 의미 파악도 되지 않습니다. 신경을 써서 읽는다 해도 빡빡해서 재미라곤 없습니다. 강약 없이 연주되는 음악은 음악이 아니라 소음이 되어 시끄럽기만 합니다. 더는 읽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을테죠.
모든 만물에는 저마다의 리듬이 있습니다.
바다는 밀려오고 나가는 밀물과 썰물이 반복적인 리듬을 만들어 냅니다.
동쪽 하늘에서 아침을 여는 태양은 중천에서 빛을 발하다 저녁이 오면 붉은 노을이 되어 낮과 밤을 연출해 냅니다.
파릇파릇 새싹을 다독거려 주는 따스한 바람, 소나기마저 끈적하게 만드는 습한 바람, 천고마비의 선선한 바람, 살을 에는 매서운 칼바람, 매번 불어오는 바람은 계절을 바꾸고 계절은 리듬감 있는 풍경을 선사합니다.
일 년 내내 해만 쨍쨍하거나, 365일 비만 내리고, 맨날 천날 바람만 세게 분다면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리듬이 필요한 건 우리 몸과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도 반복적인 삶의 리듬이 있습니다. 제때 일어나고 제때 먹고 제때 자는 일, 가장 기본적이면서 참 쉬워 보이는데 막상 지키려고 하면 꽤 어렵습니다.
'오늘 컨디션이 좋아', '지금 컨디션은 엉망이야'.
운동선수에게만 국한된 말이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이자 사람의 현재 상태를 일컫는 콩글리시인 컨디션, 컨디션은 생체 리듬에 따라 좌우됩니다.
모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도 리듬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리듬에 따라 숨을 쉬고, 피가 돌고, 노폐물을 제때 배출해야 건강하게 만물을 누릴 수 있다는 조물주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는 일에 괴로움이야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뜨거웠던 사랑도 식으면 지겨워지듯이 건조한 일을 계속하다 보면 사는 게 미지근해집니다.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라고 격려하지만 쉼이 없으면 얼마 못 가 지쳐 버립니다. 실패하기 싫어 몸을 사리면 흥미도 관심도 없는 일상으로 이어져 지루해지기 십상입니다.
인생의 쓴맛을 맛보다 보면 어느새 기대를 품지 않게 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웬만하면 입을 꾹 닫고 마음을 잠그곤 합니다. 마음 둘 곳이 없고, 세상이 내 마음 같지 않아 하루를 재미없게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리듬감이 없으니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무미건조하게 말이죠.
악기를 연주할 때 박자에 미묘한 변화를 주는 기술이 있습니다. '레가토'라고 하는데 화음을 흩뜨리지 않는 선에서 음표의 길이를 늘리기도 하고 줄이는 기술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연주가 새롭게 들린다고 합니다.
똑같은 악보를 두고 연주를 더 매력적으로 들리게 하는 이 기술을 우리 일상에도 가져와 보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미묘한 변화를 주며 색다른 리듬을 타는 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계절에 맞춰 옷을 정리하고, 제철에 나는 맛난 걸 챙겨 먹고, 철마다 변화하는 풍경을 만끽합니다. 문득 생각나는 이에게 안부를 전하고, 가까운 사람의 생일을 챙기고, 기념일을 기억하는 그런 일들, 무덤덤한 일상에 리듬과 강약을 가져와 생동감을 더합니다.
그럴 때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지 않습니다. 나로 하여금 시간을 쓰게 하는 주체가 되게 하죠. 늘 듣고 늘 하는 말이지만 사소한 것들을 감사하게 여기고 작은 활력을 준비하는 일이 살맛 나게 합니다. 삶에 리듬을 타는 기술은 시간을 그저 흘러가는 놔두는 게 아니라 기꺼이 내 편이 되어 즐거움을 건져 올리게 도와줄 거니까요.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인생 같다고, 매일매일이 돌아서면 제자리인 회전문 같은 일상이라고 푸념합니다. 한없이 반복되는 도돌이표를 만나서 돌고 도는 지겨운 오늘이 계속되곤 하는데요, 중간중간 새로운 박자도 끼워 넣고 또 어떤 건 들어내 보면 어떨까요? 일상이 다채로울 수 있을 테니까요. 다들 바라는 게 이런 삶 아니었나요?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바꿔 줄 색다른 리듬으로 새해에는 신나게 달려가 볼까요?
좋아하는 걸 좋아하면서 몸과 마음을 활기차게 하면서요.
P.S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로운 한 해, 계묘년에는 바라는 소망을 모두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