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나의 첫 번째유럽 여행 이야기 #2 밀라노
생애 첫 유럽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밀라노였다. 이번 여행이 이모의 유럽 출장에 동행하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로마가 아닌 밀라노로 가야 했지만 사실 큰 상관이 없었다. 인생의 첫 유럽 여행이라는 사실에 그저 밤잠 설치며 설레기 바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간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바로 '이탈리아는 거지들도 멋있대'였다. '에이, 설마'라고 손사래 쳤지만 사실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되었다. 거지들도 멋있는 나라가 있다니? 그때까지 제대로 된 남자 친구 하나 못 사귀어본 나를 흔들어 놓기 충분했다. '어쩌면 내가 남자 친구를 사귀지 못한 이유는 그곳에서 운명의 남자를 만나라는 뜻이 아닐까'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렇게 밀라노로 떠났다.
정말 신기하게도 밀라노에서 지낸 호텔 앞에 수련한 외모를 가진, 구걸하는 젊은 이탈리아 남자가 있었다. 구걸하는 남자도 멋있다는 가설이 이렇게 쉽게 증명될 줄이야. 김이 새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그가 신경 쓰였다. 그래서 호텔에 머무는 동안 그가 나왔나 안 나왔나 슬쩍 보거나 얼마 안 되는 잔돈을 털어 그에게 주기도 했다. 이름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물론 상대방은 모르겠지만. 며칠 후, 밀라노를 떠나면서 그렇게 나의 짧은 짝사랑은 자연스럽게 끝이 났다.
'이탈리아는 거지들도 멋있다'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단 내가 본 밀라노는 거지도 멋있었다. 하지만 거지뿐 아니라 모든 게 멋있는 곳이었다. 밀라노 곳곳에 잘 보존된 유서 깊은 건물들, 그 앞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밀라노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낸 세련된 문화까지. 모든 게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두오모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말 그대로 경이로웠다. 숨소리마저 방해가 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숨을 죽이며 천천히 둘러보았다. '경외심'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떤 존재에 대한 마음을 원하는 깊이만큼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축복이 있을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때때로 말로 내뱉기 힘들어하는 나에게 그들의 재능이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그 해 겨울, 눈을 거의 볼 수 없다는 밀라노에 폭설이 내렸다. 무척이나 추웠지만 덕분에 우리는 눈으로 뒤덮인 멋진 스포르체스코 성을 볼 수 있었다. 또 폭설을 뚫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러 갔었다. 당시 어린 마음에 '추운데 여기까지 가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최후의 만찬'을 본 순간 곧바로 그 생각을 후회했다. 두오모와는 또 다른 엄숙함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섬세함, 정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밀라노를 패션의 도시라고만 말하기에는 아깝다. 화려한 패션 거리와 유구한 르네상스의 흔적이 공존하며 깊고 묵직한 에스프레소와 투박해 보이지만 정말 맛있는 화덕 피자를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어쩌면 모든 게 멋진 밀라노였기 때문에 호텔 앞 구걸하는 남자가 내 눈에 더 멋있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밀라노로 한껏 부풀어진 가슴을 앉은 채,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피렌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