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이번 달 우수사원은… 구필태 사원입니다."
입사한 지 세 달밖에 안된 신입사원이 벌써 두 번째 ‘월간 우수사원’에 올랐다. 주임·대리급도 1년에 한번 오를까 말까 치열한 사내 경쟁에서 신입사원이 두 번 연속으로 ‘우수사원’이 된다는 건 적어도 창립 50주년이 된 중견급 회사에선 없었던 일이다. 감히 단언해 보건데 미래에도 없지 않을까. 구 사원이 속한 영업1팀의 강 팀장은 이름이 불리자마자 세상을 다 가진듯한 표정으로 "브라보!!"를 연신 외쳐댔다. 이번 분기에는 아마 저 팀이 영업왕을 가져가겠지. 반면 영업2팀과 3팀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보였다. 팀장급들은 억지 박수를 치면서 날이 잔뜩 선 눈으로 자신의 직원들을 쏘아봤다. ‘너넨 뭐하고 있었냐’, ‘잘리고 싶냐’ 탓하는 듯한 눈빛. 나는 인사팀이지만 괜히 두 영업팀 팀장의 눈길을 피하려 고개를 돌렸다.
구필태 사원은 면접부터 남달랐다. 경력사항이나 자격증은 남들과 비슷했지만 자기소개서가 유난히 돋보인 사람이었다. 신입사원들이 으레 많이 쓰곤 하는 ‘저는 어디에서 태어나~’로 시작하는 상투적 문장은 찾아볼 수 없었고, 어디서 본 적 없는 독특한 문체를 사용했다. 30년간 이 회사에서 면접을 담당했다는 우리 팀장마저도 ‘이런 직원이 들어와야 하는데’하고 눈독 들일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구 사원(그땐 지원자였겠지만)은 면접장에 들어와서도 호쾌한 답변으로 면접자들의 마음을 샀다. 긴장해서 그런지 약간 엉뚱한 대답을 내놓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1시간 내내 릴레이로 이어진 면접에서 면접관들의 비위를 잘 맞추니 합격은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면접 인도자로 참석해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그가 면담자들의 비위를 맞추러온 전문요원은 아닐까 생각했다.
구 사원이 영업1부에 배치되면서 그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 실수 많은 팀장님이 놓친 일을 후다닥 해온다거나, 타 부서 협업 업무를 잘 구슬려서 따온다거나. 말로 하는 일이면 구필태 사원을 따라올 자가 없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그가 때때로 해오는 거짓말도 믿음직스럽게 들려 팀장은 그 말이 거짓말인 줄도 몰랐다. 오죽하면 요즘 영업1팀의 말버릇은 “구사원한테 물어봐”, “구 사원한테 물어봤는데~”였다. 입사 2~3개월 만에 구 사원은 영업1부에 없어선 안될 인물을 넘어 그냥 영업1팀 그 자체가 됐다. 옆팀에서는 “우리 팀에도 구필태 하나 데려와!”하는 소리도 간간이 파티션 너머 들린적도 허다했다. 이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린 직원들은 실제로 그만두기도 했는데, 문제는 타팀 뿐만 아니라 ‘구필태만 있으면 돼’ 마인드로 운영하던 팀장에 질려 퇴사한 영업1팀 팀원도 벌써 둘이나 됐다.
하지만 나는 구필태 사원의 비밀을 알고 있다.
지난달 중순쯤, 자료때문에 저녁 늦게 잠시 들렀던 회사에서 야근하고 퇴근하던 구필태 사원을 만났다. 그때가 8시 46분 정도였나. 눈이 마주쳐 가볍게 목례를 하곤 잡아놓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직원들은 진즉 퇴근해서 둘만 타게된 엘리베이터는 과할 정도로 적막했다. 괜한 긴장감을 타파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려 스몰토크라도 해야했다. 그러다 겨우 “지난달 영업 실적 관련해서 자료 요청한 건이 있는데 그거 혹시 언제 받을 수 있을까요?”라고 내일 있을 일까지 꺼내 말을 걸었다. 하지만 한 발짝 뒤에 서있던 구 사원에게선 답변이 돌아오지 않았다. 잘 못들었나? 원래였음 호쾌하게 말도 안되는 칭찬까지 덧붙이면서 설명해줬을텐데. 의아한 마음에 몸을 돌려 구 사원을 보니 그는 답변할 마음이 없다는 듯 로봇같이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그러다 폰 화면을 한번, 내 얼굴을 한번 빤히 보곤 입을 뻐끔거렸다.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뭔가 기괴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구필태는 폰 화면을 내 쪽으로 들어 올렸다. 살짝 놀랐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궁금해 과하게 밝은 폰 화면을 눈살까지 찌푸려가며 읽었다. 너무 작아 잘 보이진 않았지만 <플랜 한도에 도달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언뜻 보인듯했다. 난 몇초뒤에 그가 말하지 못한 이유를 깨달았다.
그 이후로 나는 구필태 사원과 사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 무슨 칭찬을 해도 들은척 만척했다. 진짜 구필태는 현실에 없으므로. 나는 신나게 박수를 치고 있는 영업1팀 팀장 옆을 지나쳐 이번 ‘월간 우수사원’ 공지 게시판 앞에 섰다. 지난달에도 우수사원이었던 구필태 사원의 증명사진이, 진실을 알게된 나를 몰아세우기라도 하려는 듯 정면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괜시리 등골이 으스스 해졌다. 만약 구필태 씨가 인사 업무도 알게 되면 내 자리도 위협하게 될까. 게시판 위 묘하게 비뚤어져있는 구필태(G.P.T) 금색 이름표를 고쳐잡고는 아직 내 분야는 아니겠지 안도하며 내 사무실로 향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