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별을 보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의미는 아니야"

어린왕자의 별이 그랬던 것처럼, 나의 눈이 당신에게 그러길 바라며

by 한소리

2021년 12월 18일, 눈 예보가 있었다. 몇 차례 첫눈이 올 거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기대와 달리 하늘은 잠잠했다. 이번에도 혹시 일기예보가 또 틀리진 않겠지 라는 마음으로 영어 스피치 모임에 가서도 창문으로 흐린 하늘을 몇 번이나 쳐다봤다. 그때마다 다들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왜 그렇게 눈을 기다리냐'고 웃었다.


난 당시 유행했던 오리 모양 집게를 내가 좋아하는 빨간색으로 골라 사둔 지 일주일이 지났고, 눈을 만질 때 손이 시리지 않게 장갑도 일찌감치 챙겨뒀다. 지리적으로 눈이 익숙하지 않은 부산에 태어난 나는 무려 3년 만에 보게 되는 눈이었다. 기대감이 만만치 않았다.


동생에게 고양에 눈이 온다는 소식을 전하며 마지막으로 본 눈(특히 쌓인)이 언제냐 물었다. 동생은 2016년 친할머니가 나주에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에서가 마지막이라 했다. 다른 부산 친구는 코로나 이전 삿포로에 갔을 때라고 했고, 친한 선배는 n년 전 서울에서 일했을 때라고 했다. 반면 고양에 살던 지인들은 눈이 왜 좋으냐 녹으면 더럽다 했고, 전라도가 고향인 회사 동기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내 반응에 고개를 젓기도 했다. 역시나 익숙함은 모든 걸 지루하게 만든다.


그날 오후엔 예보대로 눈이 왔다. 내가 눈을 기다린다는 것을 안다는 모든 이들에게 연락이 왔다.

좋겠네

나의 기분을 물어준 그 사람들에게도 그날만큼은 익숙하지 않은 눈이었으면 했다.



그리고 2023년 1월 1일. 서른이 된 기념으로 책을 하나 사볼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떠오른 책이 「어린왕자」였다. 어렸을 쯤엔 누구나 으레 한 번씩 읽어봤을 법한 필독서였고,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90년 대생들은 타자 검정을 연습하면서 두어 번은 훑어봤을 흔하디 흔한 책. 그 책이 그날따라 왜 그렇게 떠올랐는지 모를 일이다. 다른 걸 고를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머릿속에서 그 책이 떠나지 않기에 결국 운명이다 싶어 한 권을 서점에서 데려왔다.


그날 밤 잠들기 전 책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어린왕자」는 나이에 따라 마주하는 게 달라지는 책이라 하더니 서른 살의 첫날밤에 읽은 그 책은 나에게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더 이상 어린왕자에 완전히 감정을 이입하지 못하는 내가 있었고, 주인공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내가 있었다. 1월 1일의 마무리라고 하기엔 꽤나 서글픈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책의 한 부분을 마주했다.

생텍쥐베리 「어린왕자」 中

어린왕자가 자신이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지 말라며, 아저씨에게 특별한 별이 생기는 것이라 위로하는 장면이었다. 어린왕자를 알게 됨으로써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존재가 새롭게 보이는 것,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당신이 마음을 쏟은 만큼 어떤 것이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


나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나 보다. 시간을 쏟을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어느 순간에도 나를 떠올리길 바라서.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싶어 그렇게 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다녔나 보다. 나에게서 일말의 어린왕자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때로는 어린왕자 같지만, n번째 별에 있는 무의미한 어른 같기도 하다. 성인은 되었지만 어른은 되지 못한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여전하다. 이 글을 읽는 사람, 그리고 이 글을 읽어주는 나의 지인들에게 언제나 의미 있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한다는 것. 그래서 또 눈이 내리면 내 생각을 떠올려주면 좋겠다. 그 언제든!



이번 글은 독서모임에서 쓴 글을 바탕으로 했다.「어린왕자」의 첫머리처럼, 이 글을 독서모임 친구들에게 바치는 데에 대해 다른 독자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함께 글을 써준, 함께 책을 사러 가준, 그 책을 선물한, 어린왕자를 떠올려 사진을 찍어준 나의 지인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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