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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저 일기 Jul 15. 2023

좋아한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마음껏 표현해도 괜찮은지 처음 알았습니다

 조그만 일에도 상처받는 성격의 아이가, 자라나면서 받았던 상처를 모아 모아 방패막을 만들었다. 7살 때 유치원에서 소풍으로 간 놀이동산에서 2명씩 줄을 서서 걸어갔다. 아무도 내 옆에 서주지 않았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태어나서 처음 맛본 거절이었다. 혼자서 회전그네를 타야 했다. 선생님이 어떤 아이의 손을 이끌어 내 옆에 서라고 했다. 그 아이는 싫다고 도망갔다. 그 이후로 몇 번의 거절이 켜켜이 쌓여가면서 방패막을 만들었다. 거절당하는 기분은 정말이지, 별로였다.


 학창 시절, 거절당할까 무서워서 좋아한다는 감정을 숨기기 시작했다. 이 친구가 너무 좋아서 같이 놀고 싶은 데 어딘가에 같이 가자고 제안할 수 없었다. 같이 놀자고 말할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거절의 기분이 어떤 건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름 아주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친구에게만 놀러 가자고 말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학창 시절 나의 친구는 2명밖에 없었다. 가고 싶은 데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나이에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딱 2명이었다니.


 내 전부였던 친구들도 가끔 나를 거절했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친구들은, 꼭 거절을 해도 티가 났다. 선약이 있거나 다른 일이 있었으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저 같이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의 거절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허술해졌던 나의 방패막은 견고해져 갔다.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그렇게 보냈다. 거절할까 봐 먼저 다가가지 못하면서.


 성인이 되었다. 나의 거절공포는 여전했고 사실 그게 거절공포인지조차 몰랐다. 좋지 않은 일로 어떤 선생님을 알게 되었다. 그 선생님이 말해주었다. 거절당할까 봐 무서워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고. 선생님은 주변을 너무 가까운 사람들로만 채울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냥 안부나 묻고 날씨얘기나 하는 시시콜콜한 사이가 필요하다고 했다.


  "별 거 아닌 사이"를 만들어보려고 아무 동호회에 나갔다. 놀랍게도 어렵지 않게, 친하지는 않지만 같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를 만들 수 있었다.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사실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도화지가 되어 처음부터 나를 그려갔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의외로 여러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었다. 그제야 내 마음이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나 사실 거절공포가 있어. 그래서 먼저 어디 가자고, 뭐 하자고 말하는 게 힘들어.. 내가 먼저 하지 않아도 너희를 좋아한다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어."

  렇게 솔직해도 된다는 걸 서른이 다 되어서야 알았다. 친구들은 고맙게도 내가 용기 내어 어디 가자, 하면 그날은 안돼 이날은 어때? 하고 되물어주었다.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의 작은 배려가 눈물 나게 고마웠다.


  사람을 잘 모으던 어떤 오빠를 내가 부러워하자 그 오빠는, "나도 거절 많이 당해. 지금 너한테 제안하는 게 15번째 제안이야. 14명이 깠거든" 하고 웃었다. 머리가 띵했다.  나는 내가 당한 작은 거절을 눈덩이처럼 크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1년을 보내고서야 거절공포를 없애고 누군가에게 네가 좋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는 걸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때 나는 서른한 살이었다.


  너무 늦게 알아버렸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 이후로는 사람들을 대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 그 사실을 마음속에 항상 품고 살아간다.


  세상 어딘가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아직 못 만났을 수도 있지만. 먼저 좋아한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용기 있고 멋진 일이다. 그리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더 금방 알아챌 수 있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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